-속옷 선물의 유래
엄마의 직업은 보험 설계사이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힘들진 않을까 하는 나와 남동생의 걱정과는 달리, 엄마는 70세가 넘어서도 계속 이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2021년 코로나19로 인해 3개월 동안 강제 휴직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회사를 '놀이터'라 표현할 정도로 출근하는 것을 즐거워했던 엄마는 너무 심심해서 우울해진다며, 얼른 출근하고 싶다고 울기까지 했다.
뜬금없는 엄마의 눈물에 공감은커녕, 황당하기만 해서 웃음이 났다.
지금은 휴대폰에 깔린 은행 앱을 통해 간편하게 월급을 확인하지만, 예전의 엄마는 월급날이 되면 시간 날 때마다 은행 ARS의 통장잔고 조회 서비스를 통해 월급이 들어왔는지 확인했다.
보험 설계사의 월급은 고정 금액이 아니라 실적에 따라 매월 금액이 달랐기에 엄마는 로또 번호가 불리는 순간처럼 기대를 잔뜩 머금은 얼굴로 수화기 너머 AI안내원의 통장잔고 숫자를 듣곤 했다.
그러다 월급이 많이 들어오는 월이면 늘 나에게 들뜬 목소리로 쇼핑을 제안했다.
"선아~ 속옷 사줄까?"
내가 대학생 때도, 직장인일 때도, 백수인 지금도 엄마는 2~3개월에 한 번씩 월급날이면 속옷을 사주었다.
품목 변경은 절대 불가.
친구들이 가성비 좋은 속옷을 검색하고 여러 쿠폰을 먹여가며 인터넷 쇼핑으로 구입할 때도 나는 한 번도 친구들 따라 내 돈으로 속옷을 사본 적이 없다.
아! 정정한다. 필라테스를 위해 스포츠 브라 2개를 내 돈으로 구입해 본 적이 있다. 이게 전부이다.
2022년 3월 번아웃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집순이로 지내면서, 오후 2시에 퇴근하고 집에 오는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부쩍 늘어났다.
장성한 딸이 집에만 있는 게 걱정되면서도 좋은지, 퇴근 후 곧장 집으로 온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하루 일과를 재잘거렸고, 그런 엄마가 좋으면서도 이따금씩 귀찮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엄마의 월급날이 되었다.
"심심한데 속옷 사러 갈까?"
"속옷 말고 그냥 돈으로 주면 안 돼?"
"응, 그건 안 돼."
늘 가던 집 근처 아웃렛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엄마가 갑자기 옛날이야기를 시작했다.
"너 5학년 때였던가? 그때 첫 생리 시작했잖아."
"아? 내가 5학년 때 생리를 시작했어? 빨리도 시작했네. 근데 갑자기 왜?"
"그때 친하게 지내던 아진이랑 주영이 기억나? 걔들도 아마 너랑 비슷하게 5학년 때 생리 시작했을 거야."
"나보다 기억력 더 좋네? 난 내가 언제 첫 생리를 시작했는지 기억나지도 않아."
"나중에 들어보니 아진이랑 주영이는 생리 시작한 날 가족끼리 축하 파티했대. 난 그냥 너한테 생리대만 사줬는데."
"엥~? 가족끼리? 아빠랑 다 같이? 주영이는 남동생도 있잖아! 부끄러울 거 같은데."
"엄마도 처음엔 뭐 그런 걸로 파티를 하나 싶었거든. 근데 그때쯤 학부모 모임을 갔는데, 다른 엄마들도 딸의 첫 생리를 축하해 주는 초경파티를 했다는 거야. 딸의 첫 생리를 좋은 기억으로 남겨주고 싶대나 어쨌대나.
엄마는 그런 생각하지도 못했거든. 너한테 미안 해지더라. 봐봐 지금 너 생리 언제 시작했었는지도 기억 못 하잖아. 파티해 줬으면 기억할 텐데... 그래서 그 뒤로 네 속옷은 이쁜 걸로 아끼지 말고 사주자고 다짐했어."
담담하게 시작한 엄마의 캐캐 묵은 옛날이야기는 꽤 묵직한 여운을 남겼다.
"...... 뭐 그런 걸 가슴에 담아두고 살아."
"원래 엄마들이란 자식에게 못 해줬던 것들이 가슴에 담기는 법이야."
신상 휴대폰 안 사준다고 떼쓰고, 친구들 다 받아보는 학습지 나만 신청 안 했다고 칭얼대고, 친구들은 수학여행으로 일본 가는데 나만 경주 간다고 투덜대던 지난날이 생각났다.
지금 내가 기억나는 건 몇 개이지만, 도대체 엄마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나의 철없던 요구들을 들어주지 못한 '기억'은 몇 개나 될까?
"엄마도 참... 엄마가 신이야? 내가 원하는 걸 어떻게 다 해줘! 그럼 나도 엄마 소원대로 교사가 돼
지 못한 걸 계속 엄마한테 미안해하며 살아야 되는 거야? "
"아니~ 교사가 되면 네가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 거니까 널 위해 그런 거지. 네가 미안해할 일은 아니지."
"아니지? 거봐~ 그러니 엄마도 초경 파티니 뭐니 이제 생각하지 마. 다 지난 일이야. 앞으로 서로 잘하면 되지! 나한테 더 잘해줘. 알겠지?"
"엄마가 너한테 못하는 건 또 뭐냐!"
"그런 기억은 잊어버리되, 속옷은 계속 엄마가 사 줘."
"그래! 엄마가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엄마 돈 잘 벌잖아~"
"오예~"
엄마는 수다스러운 편이다.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해서 나에게 잔소리 듣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또 하고 또 하는 말들은 대부분 가십거리들 뿐, 엄마의 걱정거리나 속마음은 나에게 잘 털어놓지는 않는다.
나는 분명 엄마에 대해 잘 모르는 딸임이 확실하다.
성인이 되고 엄마와 대화를 하다 보면 싸우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서로에게 공감 얻고 싶어 시작한 대화였을텐데, 대화의 끝에는 결국 상처 주는 말들을 언성 높여하고 있었다.
그런 일이 빈번해지자 가벼운 이야기만 하게 되었고, 논쟁이 될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면 대화를 끊고 자리를 피했다.
아마 엄마도 내가 '엄마와의 대화'를 피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엄마'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죄책감'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아마 이 죄책감을 완벽히 떨쳐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좋다가도 밉다.
좋다가도 밉다가도 짠한 엄마를 생각하다 문득 의문이 생긴다.
그러는 엄마는 자식이라고 마냥 내가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