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났지만 '조금만 더'의 마음으로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눈만 감고 있는 아침 8시였다.
엄마는 안방 화장대에 앉아 출근 준비를 하며, 건넌방에 있는 나에게 오늘은 '감자채 볶음'을 해두었으니 거르지 말고 꼭 밥 챙겨 먹으라 당부했다.
엄마는 내가 일어났는지 자고 있는지 늘 확인은 건너뛴 채 냅다 본인 할 말을 한다.
예전 같으면 자고 있는데 말 시키면 어떡하냐면서 짜증부터 냈을 버릇없는 자식이지만, 지금은 나에게 일용할 양식까지 베풀어주신 엄마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끼며 자다가도 고분고분 대답한다.
아침엔 잘 울리지 않는 엄마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엄마는 발신인을 확인한 뒤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고, 짧은 안부 인사 후 오늘 퇴근시간에 맞춰 커피 한 잔 하자는 약속을 잡았다.
"누구야?"
웬만해선 '커피 한 잔 하자'는 말을 상대방에게 먼저 꺼내지 않는 엄마인데 신기해서 물었다.
"그 왜 재작년에 카페 차렸다던 희자 아줌마, 기억나? 엄마가 개업일에 화분 사서 갔다 왔다고 했잖아."
"아~ 코로나 막 시작할 때 카페 차렸던?"
"그래, 엄마 회사 근처에 볼 일 있다고 온다길래 퇴근하고 차 한 잔 하기로 했어."
엄마는 나와 달리 자립심이 매우 강하다.
새로운 무리에 적응도 잘하고, 혼자여도 무엇이든 씩씩하게 해낸다.
본인의 확신만 있다면, 남들이 뭐라 해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원래부터 있던 강단인지, 세월로부터 얻은 강단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엄마 자신만 믿는다.
쓸데없는 모임이나 번개 약속에 나가는 것을 돈 낭비, 시간낭비라며 싫어하고 웬만해선 그런 자리에 가지도 않는 엄마는 집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나와 같은 '집순이'이다.
그런 엄마가 적극적으로 약속을 잡는 걸 보니, 희자 아줌마를 어지간히 좋아하는가 보다 싶었다.
예상대로 평소보다 조금 늦게 귀가한 엄마의 얼굴이 마냥 밝지가 않다.
"희자 아줌마 잘 만나고 왔어?"
"어... 잘 만나고 왔는데... 에휴..."
"왜? 돈 빌려달래?"
(희자 아줌마, 이렇게밖에 되묻지 못하는 속세에 찌들 대로 찌들어버린 못난 저를 용서해 주세요.)
"아니, 무슨 돈을 빌려달래... 그게 아니라, 카페가 잘 안 되나 봐... 혹시 나 다니는 곳에 자기도 일할 수 없냐고 묻더라고."
"아... 하긴 개업하실 때도 코로나 때문에 힘들다고 하시더니, 계속 안 좋은가 보네..."
"그러게... 카페 개업할 거라고 신나서는 열심히 공부해서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고, 인테리어 소품 하나하나 자기가 다 알아보고 구입하고 배치하고... 얼마나 설레어했는데... 커피도 맛있었는데 거참..."
"엄마 회사에서 일은 할 수 있어?"
"어, 팀장한테 물어보니 일단 금요일에 면접 보러 회사 와보라고 하더라고. 이 일을 해 본 경력이 있으니, 하면 잘 하긴 할 거야."
"엄마는 희자 아줌마가 왜 좋아?"
원래 남 일엔 별 관심 없는 엄마가 본인의 일인 것처럼 걱정하는 엄마에게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고상해서."
"응? 희자 아줌마 고상해?"
"어, 말도 조용히 조곤조곤하고, 그림 좋아해서 그런지 안목도 높고... 고상하고 우아해.
그래서 좋아."
내가 엄마를 놀릴 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엄마, 나 바로 옆에 있는데 왜 이렇게 크게 말해~ 어휴 기차 지나가네, 기차 지나가."
신이 나면 엄마는 웃음소리가 커진다. 목소리도 커진다. 행동도 커진다.
화가 나도 엄마는 목소리가 커진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지금의 감정이라면 누구나 목소리가 커지지 않겠느냐며 본인의 감정표현에 왈가왈부하는 내가 잘못된 것이라며 더 화를 냈다.
그런데 조용히 조곤조곤 말하는 희자 아줌마가 좋다는 말에 갑자기 미안해졌다.
왜 감정 있지 않는가? 나도 한 번쯤 가져본 그런 마음...
내가 갖고 있지 않는 것을 갖고 있는 상대방이 부럽고, 같이 있으면 닮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계속 '친구'하고 싶은 마음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내 동생은 분명 '누나 생각이 또 지나치게 멀리 갔네'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겠지만, 단순하기 그지없는 그깟 녀석이 심오한 '인간의 감정'을 알기나 하랴.
설령 나의 생각이 지나치게 멀리 간 것이라 해도 앞으로는 엄마에게 '작게 말해도 다 들려'라는 말은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진짜 진짜.
"안목이야 오여사 따라갈 사람 없지~ 난 아직도 엄마가 안 어울린다고 하는 옷은 절대 안 입잖아. 안경 하나 맞추러 가는 것도 꼭 엄마랑 가고. 엄마 보는 눈이 보통 눈이야~ 안 그래?"
"뭔 얘기가 그리로 가? 아휴, 암튼 희자도 맘고생했나 보더라. 돈 걱정 안 하던 애가 돈 걱정을 다 하고..."
"백수인 나도 돈 걱정 안 한다고, 사람은 다~ 벌어먹고 살 재주는 한 개씩 있다고 위로해 줘."
"백수가 자랑이냐! 넌 그리고 왜 돈 걱정을 안 해? 해야 되는 거 아냐?"
엄마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이게 엄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