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건강을 걱정하다 1.
첫딸은 아빠를 닮아야 잘 산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나 빼고 다 잘 사는 건가?
모지리같은 내 인생이 엄마를 빼다 박은 내 얼굴 때문이라 탓해본다.
한편으론 아빠에겐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얼굴은 엄마를 닮아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긴 얼굴형에 튀어나온 광대의 아빠 얼굴보다는 달덩이 같이 동그란 엄마 얼굴이 낫다.
게다가 두 분 다 쌍꺼풀이 없어 대대적인 보수 공사가 필요할 뻔했으나, 무쌍이지만 큰 눈을 가진 엄마의 눈을 닮은 것이 천운임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넌 정말, 저 멀리서 봐도 네 엄마가 오는 것 같다."
외할머니도, 이모들도, 삼촌들도, 우리 엄마를 한두 번밖에 본 적 없는 친구들과 회사 동료들도 굳이 아빠 얼굴까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나는 얼굴뿐만 아니라 체형까지도 엄마 판박이기 때문이다.
이번엔 엄마에게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체형은 엄마를 닮고 싶지 않았다.
밥은 당연하고, 식후 간식까지 즐기는 엄마는 친구들로부터 보톡스 시술을 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자주 받을 정도로 볼살이 통통하고, 전반적으로 포동포동한 체형이다.
밥 먹고 디저트로 빵을 즐기는 나 또한 둥글둥글 모난 곳이 하나 없는 포동포동한 체형을 40년째 유지하고 있다.
엄마는 '딸과 판박이시네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40대 초반까지 걸어가는 뒷모습이 너무 예뻐 20대인 줄 알고 총각들의 대시를 받았었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말인즉슨 지금의 이 포동함은 온전히 나잇살 때문일 뿐, 나의 젊은 시절은 통실한 내 딸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는 뜻이다.
그말을 옆에서 듣고 있는 나는 속으로 콧방귀 뀐다.
직접 보지 않은 사실은 믿지 않는다. 엄마의 기억의 오류라 치고 넘어갈 뿐.
엄마가 지난주 내내 속이 좋지 않다며 소화제를 먹었다.
당연히 입맛없어 죽을 먹고 있을 줄 알았는데 점심으로 갈비를 구워 먹고, 간식으로 찐빵을 3개나 먹고, 그래도 입이 심심해 쥐포를 먹었다 한다.
"엄마, 속 안 좋다며 뭘 그렇게 많이 먹어? 요 근래 홈쇼핑에서 갈비찜이며 게장에, 찐빵, 떡까지 많이도 사더니만... 엄마 많이 먹어서 탈 난 거야."
"내가 뭘 많이 먹어! 아니야! 너 잔소리 그만해!"
우리 가족 중에 제일 몸이 약하고, 가족력 질환으로 입원 경험이 많은 엄마이기에 '건강'에 대한 잔소리를 많이 하는 편인데, 그럴때마다 엄마는 엄청 듣기 싫어하며 짜증을 내곤 했다.
최대한 심기에 덜 거슬리도록 부드러운 목소리로 오늘은 꼭 병원에 다녀오라 신신당부 하지만,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될 때마다 따분하다는 듯 초점 잃은 표정을 짓던 나처럼 엄마도 딱 그 표정으로 대꾸 없이 출근 준비만 할 뿐이었다.
오후 3시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병원 갔다가 약 처방받아 집에 가는 길이야. 어휴, 아픈 건 아픈 거고, 피자도 먹고 싶고 장어도 먹고 싶고 먹고 싶은 게 왜 이렇게 많은지..."
"희한하네. 속은 안 좋은데 입맛은 돌다니."
"너도 그렇잖아. 사돈 남 말은..."
소오름, 그러고보니 나도 그랬다.
박대리에게 옮아 신종플루에 걸렸을 때도 박대리는 3일 내내 겨우 죽만 먹었다는데, 나는 반나절만 끙끙 앓다 떡볶이를 시켜 먹었던 기억,
(박대리는 신종플루로 앓은 동안 3Kg가 빠졌다 했고, 나는 2Kg가 쪘었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고도 독감에 걸려 열과 오한으로 반나절만 끙끙 앓다 햄버거와 소보루빵이 먹고 싶어 퇴근하고 오는 엄마에게 사다 달라 부탁했던 기억,
굴 먹고 탈이 나 설사와 배앓이로 이틀 고생고생해 놓고 물회가 먹고 싶어 물회 사 먹으러 횟집에 갔던 기억...
아파도 전혀 줄지 않았던 먹성, 건강회복은 둘째치고 아픈 와중에 쪄버린 살 때문에 더 스트레스받았던 그 기억들이 생각나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동의하지 않는 심통 맞은 엄마의 말투에서도 내가 느껴졌다.
아픈 와중에 배까지 고파서 서럽다는 엄마에게 위에도 좋고 포만감도 느낄 수 있는 양배추를 삶아 먹는 건 어떠냐고 추천했다.
엄마는 삶은 양배추에 보글보글 끊인 강된장을 한 숟갈 얹혀 밥이랑 먹으면 맛있겠다며 입맛을 다시며 마트 들렀다 집에 가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5분 뒤 차례로 울리는 카드사용 알림 문자를 보고 하고 싶은 건 하고 보고, 먹고 싶은 건 먹고 보는 나는 엄마의 미니미 버전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oo마트 18,210원
- ooo 정육점 39,000원
- oo 젓갈 17,000원
그나저나 이상하게 엄마도 내가 엄마 닮은 것이 싫은가 보다.
남들이 딸이 어쩜 이렇게 엄마를 닮았냐 하면 한번도 좋아하지를 않았다. 왜일까? 내가 못 생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