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 먹는 밥이 제일 맛있어.

-엄마에게 나물무침을 해달라고 해야겠다. 이번엔 맛있게 먹어야지.

by 코알라

직장인 시절의 나는 '요리'와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나 스스로 요리를 해서 밥을 먹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으며, 늘 엄마가 차려주는 밥만 먹었다.

나물을 주재료로 만든 무침이나 국만 반찬으로 상에 올라오는 날도 있었다.


어렸을 땐 다른 반찬 없냐며 반찬투정했다.

끊어 오르는 화와 귀찮음을 꾹꾹 눌러 담으며, 다시 부엌으로 가 소시지를 굽던 엄마의 뒷모습을 몇 번 보다 보니 '아, 내가 잘못했구나.' 싶어 졌고, 대학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절대 반찬투정을 하지 않았다.

다만, 입맛이 없다며 밥때를 일부러 놓치고 방으로 들어와 과자를 몰래 먹곤 했다.


용돈이 생기고 무언갈 사 먹을 수 있는 형편이 된 나는 늘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먹거리를 사 왔다.

"그게 밥이 되니... 살만 찌지... 집 밥을 먹어야지~"

포장해 온 치킨, 족발, 돈가스, 햄버거, 떡볶이를 보고 엄마는 늘 나의 건강과 살을 걱정하며 물었다.


"엄마, 나는 사 먹는 게 제일 맛있어."

기껏 차려서 먹여놨더니 사 먹는 게 제일 맛있다고 말하는 나에게 엄마는 서운하면서도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정말 사 먹는 게 제일 맛나던 시절도 있긴 했지만, 매일 '오늘은 뭘 먹나'를 고민하며 끼니때마다 부엌에 서 있던 엄마가 이제는 '상차림'에서 벗어났음 하는 마음에 내뱉는 말이기도 했다.

참... 듣기 좋은 말은 할 줄 모르는 경상도 츤데레 딸다운 대답이지 않은가?




아! 물론 나의 소울푸드가 엄마가 해주는 '매운 낙지볶음'일 정도로 엄마의 음식을 사랑지만, 매 끼니를 집밥으로 해결해야 하는 한식파가 아니므로 치킨, 족발, 돈가스, 햄버거, 떡볶이로도 만족스러운 배부름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런 나와는 달리 내 남동생은 절대적인 한식파, 집밥파이다.

대학 졸업 후 타 지역에서 쭉 근무를 하다 보니, 집에 오는 주말마다 어디 나가지도 않고 삼시 세끼를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싶어 했다.

제일 이해되지 않고 신기한 건 남동생은 나와는 달리 치킨, 피자를 시켜 먹어도 무조권 밥을 먹어줘야 하는 아이였다는 거다.

엄마 입장에선 밥 대신으로 시켜 준 특식일 텐데... 돈만 날리는 기분이 들 수도 있겠다 싶다.


엄마도 처음에는 바깥에서 먹는 밥은 헛배만 부르다며 집밥만 찾는 남동생을 짠하게 여겨 온갖 진수성찬을 차려주곤 했지만 몇 년 동안 주말마다 삼시 세끼를 다 차려내다 보니 힘에 부쳐했다.


"쟤는 여자친구도 안 만나나.... 나가서 밥 좀 먹고 오지... 어휴 또 뭘 해주나~"


방에서 무한도전을 보며 낄낄대는 남동생의 웃음소리에, 끝내 엄마는 본인도 모르게 속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버렸다. 나만 들은 엄마의 속마음에 웃음이 터졌고, 엄마는 절대 남동생에게 얘기하지 마라고 신신당부했다.


원조 삼식이 아빠의 생활 리듬에 맞게 몇십 년 동안 아침 7시, 점심 12시, 저녁 6시 식사 챙기랴.

웬만한 반찬엔 흥미를 못 느끼는 까탈스러운 딸내미 입맛 맞추랴.

신흥강자 삼식이 아들놈 식사 챙기랴.(결혼했는데도 가끔 밥 먹으러 집에 온다.)


정년 없는 식모살이에 엄마에겐 고된 하루들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나이 먹는 것의 몇 배의 속도로 엄마의 나이도 빠르게 먹어가고 있으니 체력도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엄마는 혼자 밥 먹을 때면, 늘 몇 가지나물들을 설렁설렁 대충대충 조물조물 참기름에 깨소금 팍팍 넣고 무쳐선 앉은자리에서 밥 한 그릇을 뚝딱하곤 했다. 다른 반찬 없이... 오직 나물 무침으로만.


"엄마, 그걸로 반찬이 되나?"


"야야~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한 그릇 더 먹고 싶은 거 살찔까 봐 참는 거야."


별 거 없이 무치기만 한 나물이 뭐가 그래 맛이 있는지 한 움큼 젓가락으로 집어 들어 입안 가득 넣어 먹던 엄마가 그저 귀찮아서 대충 먹는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남아도는 게 시간이라 작년부터 조금씩 요리를 해보게 되었다.

버는 돈이 없으니 집에서 만들어 먹어보자고 시작된 게 어느새 볶음밥은 기본이고 김치찌개, 된장찌개, 무조림도 하고 밀푀유나베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다 요즘 시금치가 제철이라며 시금치 무침이 먹고 싶다는 남자친구의 말에 한 번 도전해 볼까 싶어 마트에서 시금치 한 단을 사서 집에 왔다.


시금치 무침 레시피는 까다롭거나 복잡하진 않았다.

잘 씻고 잘 다듬고 잘 데쳐서 잘 무치면 되는 간단한 무침이지만,

설렁설렁 씻으면 흙이 씹히고,

대충대충 다듬으면 덜 제거된 뿌리 부분 때문에 부드러운 식감을 흩트려 트리기도 하고,

데치는 몇 초의 시간을 우습게 봤다가 질겨지기도 하고,

양념의 한 두 방울 정도 가볍게 봤다가 짜지기도 했다.


그렇게 1초의 딴짓 없이 온전히 시금치만 주시하며 만든 시금치 무침을 드디어 식탁에 올려놓았다.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으니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정말 엄마처럼 이 나물무침만으로도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낼 수 있겠다 싶었다.

나물무침이 원래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던가?



이렇게 맛있는 나물을 잘 씻고 잘 다듬고 잘 데쳐서 잘 무쳐 식탁에 내었지만, 딸내미로부터 환대받지 못한 자신의 시금치 무침을 혼자 다 먹었던 엄마가 생각났다.

나는 왜 그렇게 반찬투정을 했었는지... 철없던 내 모습과 그 맞은편에 앉아있던 엄마의 모습이 시금치 무침을 먹는 내내 자꾸 생각나 차라리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요즘 들어해보지 않던 요리에 취미가 붙어 그런지 자꾸 엄마 생각이 난다.
그 생각의 끝은 늘 마음이 편치 못하고 자꾸 부끄럽다.

미안(未安) 명사 1. 남에게 대하여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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