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각역 직장인의 제기동으로 가는 퇴근길. 게이트를 통과하며 청량리행 열차가 온다는 안내음이 들리면 기분이 좋다. 기분 좋은 포인트는 2가지이다. 첫째, 청량리보다 북쪽인 회기~소요산에 사시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열차에 사람이 적고 덕분에 퇴근 길이 쾌적하다. 둘째, 역에 도착하자마자 열차를 타기 때문에 낭비되는 시간이 적다. 수도권에서 뚜벅이로 살면 한 달에 50번은 타게 되는 이 지하철에서, 나는 매일 작은 운빨에 나의 기분을 맡긴다.
종각에서 북쪽으로 가는 열차는 동묘앞행/청량리행/광운대행/의정부행/양주행/동두천행/소요산행이 있다.
하지만 매일 퇴근 직후 청량리행 열차가 오지는 않는다. 보통은 조금 기다리면 광운대행이나 소요산행 열차를 탈 수 있다. 재수가 없는 날이면 눈앞에서 청량리행 열차를 놓치고, 다음으로 우리 집에는 가지 않는 동묘행 열차를 그냥 보내며, 이후 사람이 꽉꽉 들어찬 소요산행 열차를 탄다. 하필 비가 온 날이면 사람이 가득한 열차 내 불쾌지수가 n배쯤은 높아지는데, 체감 상 나의 짜증지수는 n의 제곱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오늘은 퇴근길은 아니었지만 또 지하철에서 짜증이 잔뜩 나버렸다. 텅텅 비어있는 앞 열차를 눈앞에서 놓치고 나니 사람이 가득한 인천행 1호선이 도착했다. 날이 좀 추워서 따뜻하게 입고 우산까지 들고 나왔건만, 열차 안은 덥고 습하며, 공간도 부족했다. 오피스텔 엘리베이터가 중간에 1번만 덜 멈췄더라면, 제기동 역 앞에서 길을 막는 할아버지가 없었더라면부터 주말 아침인데 외출준비 할 때 걸려온 거래처의 전화에까지 원망의 화살이 미쳤다. 작은 불행이 이전에 있었던 아무것도 아닌 사건을 불행한 기억으로 왜곡시키고 있었다.
잠깐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짜증이 나 버린 걸까? 나는 저 지하철을 놓쳐도 약속에 늦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앞에 지하철을 탔더라도 얻는 것이 크지 않음도 알고 있다.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2가지였다. 약 6분 정도 빠른 도착 그리고 15분 정도 이동을 조금 더 쾌적하게 할 수 있다는 것. 평소 10분 먼저 가려다가 몇십 년 먼저 가니까 조심하라는 과속/졸음운전 슬로건에는 그토록 공감하면서, 6분 늦게 가는 것에 나는 왜 이렇게 화딱지가 난 걸까? 어차피 잠깐이면 다 마를 땀인데, 지옥철 한번 타서 더웠다고 왜 이렇게 짜증을 내고 있는 거지? 이런 생각을 잠시하고 나니 조금은 참을성이 생겼다. 별거 아니었다. 작은 불운일 뿐이었다.
간혹 매일 눈앞에서 지하철을 놓친다며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이 있다. 뭐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그게 사실일 수도 있다. 근데 아마 보통은 아닐 것이다. 한 100번쯤 타면 결국 행운과 불행의 비율은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매일 눈앞에서 지하철을 놓친다'라는 불행은 누군가 만들어낸 가짜 불행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가짜 불행이 다른 기억마저도 왜곡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 있으니 가급적 가짜 불행도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을 나가는 1호선 안에서 말이다.
네가 남의 불행에 대해 뭘 알아라고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이 아니라 할 말은 없다. 그래서 지하철이나 타고 편하게 통근하는 사무직 나부랭이가 깊은 슬픔을 가진 분들께 훈수를 두려는 것 아니다. 다만 주위를 둘러봐도, 뉴스 속의 사회를 보아도 마음을 다쳐서 작은 불행하나에도 큰 타격을 받는 사람이 많아 보였다. 그래서 그냥 나 같은 사람은 이런 식으로 불행을 흘려보내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