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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봉주 변호사 Sep 18. 2022

영화 <리플리> 리뷰 (2)

줄거리와 법률 쟁점: 톰 리플리의 독백

*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6. 신분을 속이는 톰 리플리


디키의 아버지가 처음에 톰한테 망나니 아들 디키를 이탈리아에서 뉴욕으로 데려오는 일을 시킨 이유는, 디키의 아버지는 톰을 프린스턴 대학교를 졸업한 디키의 동창생이라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톰은 피아노 조율사인데, 디키의 아버지가 마련한 행사에서 예정되어 있던 피아노 연주자 대타로 급하게 피아노를 연주하게 되면서 그 피아노 연주자의 프린스턴 대학교 재킷을 빌려 입은 것이 모든 비극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디키의 아버지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톰을 좋게 봤고, 먼저 톰한테 다가와 인사를 하면서 아들의 동창생으로 오인한 것이다. 톰은 얼결에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그냥 디키의 아버지와 헤어졌는데, 그 후 디키의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되고, 디키의 아버지는 거액을 줄 테니 아들을 데려오라는 제안을 한 것이다. 톰은 이때 진실을 말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고, 결국 이탈리아에 가서 디키한테 자신이 프린스턴 대학 동창생인 것처럼 접근한다. 그러나 톰이 디키한테 자신이 프린스턴 대학 졸업생인 것처럼 신분을 속였어도, 디키를 뉴욕에 데려가려고 설득하긴 했고, 뉴욕에 가지 않은 것은 디키가 그 설득을 단칼에 거절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톰이 디키의 아버지한테 프린스턴 대학 졸업생이라고 속이고 거액의 제안을 받은 것이 사기죄가 될까. 즉, 톰은 처음에 신분을 적극적으로 속인 것이 아니고 상대방이 이미 착오에 빠진 상태에 있었던 것인데 이것도 톰이 기망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그러나 톰이 디키의 아버지와 거액을 받는 거래관계를 체결하게 된 경우에는, 톰한테는 디키의 아버지한테 사실을 고지할 법률상 의무가 있다고 봐야 한다. 일반 거래의 경험칙상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당해 법률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신의칙에 비추어 그 사실을 고지할 법률상 의무가 인정되기 때문이다 



7. 디키의 유언장을 위조한 톰 리플리


톰이 디키의 시신과 함께 돌멩이를 넣은 보트를 바다에 가라앉게 만들었기 때문에 디키는 실종 상태가 된다. 그러나 디키의 프린스턴 대학 동창인 프레디가 디키의 실종에 대해 톰을 의심하자, 톰은 프레디까지 죽인다. 그 후 프레디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미국의 부유한 집안 자녀들의 실종과 살인 사건은 곧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경찰은 실종된 디키와 마지막까지 여행을 하면서 같이 있었던 마지막 목격자 톰을 의심한다. 톰은 디키가 죽은 후, 디키의 서명을 위조하고 디키의 신분증을 이용해서 디키 행세를 하고 다녔지만, 디키의 친구들과 디키를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톰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톰과 디키를 오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사실이 들통날 위기를 여러 번 겪은 톰은 이 상황을 마무리하기 위해, 디키가 프레디를 살인하고 죄책감에 자살하겠다는 암시를 하는 유서 편지를 톰한테 남긴 것으로 꾸민다. 그리고 톰은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으면서 톰한테 남긴 디키의 유서 편지를 제출하고, 그렇게 디키는 프레디의 살인범 누명을 쓰고 자살한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된다. 


톰이 디키 명의의 유서 편지를 만들어서 경찰에 제출한 행위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가 될 수 있다. 판례는 원칙적으로 수사기관은 범죄 수사를 해서 그 진위를 밝힐 의무가 있기 때문에, 피의자나 참고인이 허위진술을 하거나 허위증거를 제출해서 잘못된 결론을 내려도 그것은 수사기관의 불충분한 수사에 의한 것이지 피의자 등의 위계에 의한 수사방해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피의자 등이 적극적으로 허위 증거를 조작하여 제출해서 수사기관이 나름대로 충실한 수사를 했어도 증거가 허위임을 발견하지 못할 정도에 이르렀다면 이것은 위계로 수사행위를 적극적으로 방해한 것이고 위계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한다고 본다. 


톰은 그동안 디키의 서명을 위조하여 은행에서 돈을 찾을 정도로 디키의 서명을 정교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톰이 디키의 유서 편지를 위조해서 경찰에 제출하는 행위는 적극적으로 증거를 조작한 것이므로 위계로 범죄 수사 행위를 방해한 것이다. 따라서 위계공무집행방해죄가 된다. 



8. 영화 감상


리플리 증후군?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상습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의미하는 유사과학 용어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톰은 자신이 디키라고 믿는 것이 아니고, 그저 사기꾼에 불과하다. 이 영화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 이 용어는 영화 내용을 잘못 인용한 사례가 아닌가 싶다. 


맷 데이먼이 부른 마이 퍼니 밸런타인

이 영화는 1999년 작품인데, 이렇게 오래전에 만들어진 영화는 정말 오랜만에 본다. 과거를 배경으로 하는 최근에 만들어진 영화는 익숙하지만, 작품 자체가 20세기에 만들어진 영화는 아무래도 지금 영화와 비교하면 조금 촌스럽거나 어색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미가 세련되고 음악도 정말 잘 사용되었다. 디키가 재즈광이라서 재즈가 많이 나오는데, 톰을 연기한 멧 데이먼이 부른 ‘마이 퍼니 밸런타인’이 영화 속 톰의 어둡고 불안정한 심리를 느끼게 해 준다. 


톰 리플리의 독백에 대한 의문

마지막에 톰은, 디키나 프레디와 달리 자신을 인간적으로 대해준 디키의 친구 피터까지 자신의 범행이 발각될까 봐 죽인다. 솔직히 톰이 피터까지 살해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말을 보고 영화의 끝 맛이 더 우울했다. 톰의 행동은 도저히 변명할 여지가 없다. 인간이 삶에서 어떤 마지막 선을 넘게 되면, 비극은 점점 커지다가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게 되고, 결국에는 자신도 파괴되고 마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영화 시작이 영화 마지막에 피터까지 살해한 톰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독백을 하는 장면이다. 만약 내가 과거로 되돌아가서 모든 것을 지울 수 있다면 그 쟈켓을 빌려 입은 것부터 지우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톰이 쟈켓을 빌려 입은 게 비극의 단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후에도 톰은 멈출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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