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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Jan 09. 2020

일본의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하다.

일본 생활기록부의 시작

일본의 소도시로 이사하다


일본에 온 지 일 년도 안 돼서 또 이사를 했다. 그것도 시골로. 반경 2km 이내에 장 볼 수 있는 마트가 2개, 100엔 샵이 1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잡화점 1개와 중국집 2개, 덮밥집 1개, 우동가게 1개가 전부인 미에현의 어느 작은 마을에 이틀 전에 도착했다.


남편의 현장실습 때문에 한 이사였다. 남편이 다니는 회사는 대졸 신입사원의 경우 입사 후 3개월간 생산라인에서 근무하는 현장실습을 의무화하고 있는데, 우리 남편의 경우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현장실습을 하게 됐다. 그것도 본사가 아닌 지방 공장에서.


사택으로 이동 중에 탄 전철. 열림(Open) 버튼이 따로 있는 전철은 또 처음 타 봄. (그 정도로 이용자가 많지 않은 걸까...?)


대학생 시절, 그 흔한 워킹홀리데이 한번 다녀와 본 적 없는 내가 결혼 후 남편 덕분에 일본에 나와 살기 시작했고, 그것도 모자라 1년 사이에 2번이나 이사를 하게 됐다. 내 인생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던 역마살은 삼십이 훌쩍 넘은 지금에서야 활기를 띠고 있나 보다.


원래는 남편 혼자 현장실습을 갔다 와도 됐었는데, 내가 따라가겠다고 했다. 몇 달 전 나는 가벼운 우울증을 겪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친구는커녕 말 상대할 사람도 없이 혼자 덜렁 남겨져 있는 시간이 많았고, 이는 내가 우울감을 느끼는 주된 원인 중 하나였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적적한 마음을 달래 보긴 했지만 그마저도 한계가 왔다. 그런데 3개월씩이나 떨어져 살라니. 아니 될 소리다.  


다행히 회사에서 사택을 제공해준다고 했다. 세탁기, 냉장고, 전자레인지, 가스레인지 같은 기본적인 가전들은 구비되어 있어서 옷가지들과 청소기, 이불 같은 가재도구들만 챙겨 가면 되겠거니 했다.


아이도 없는 신혼부부인데 짐이야 얼마나 되겠나 싶었지만 막상 싸다 보니 한 짐이었다. 웬만한 건 택배로 미리 부친다고 부쳤는데도 기내 반입 캐리어 2개에 30인치 캐리어에 백팩에 에코백까지 동원하여 겨우 짐을 다 챙겼다.


30인치 캐리어 뒤에 기내수화물 캐리어가, 이 사진을 찍던 내 어깨에 에코백과 백팩이 있었다는건 안 비밀


사택에 막 도착해서는 청소도 하고 필요한 물품들을 사느라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갖고 온 짐도 이틀에 걸쳐 겨우 정리하고, 첫날에 다 못 산 물품들을 어제 2차로 또 사들고 왔다.


그렇게 정리하고 치우고, 사고, 정리하고의 반복 속에서 글은커녕 책 한 줄도 눈에 담을 시간이 없었다. 이사한 뒤 3일째가 되는 오늘에서야 제법 사람 사는 집다워진 집안 풍경을 보며 이제야 한글 창을 켤 수 있었다.


그동안의 근황을 잠깐 보고하자면 제7회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는 낙선했고, 12월 30일과 31일에 걸쳐 이틀간 내 글과 결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출판사 몇 군데에 원고를 투고했다. 아직까지 회신이 온 곳은 없지만 결과에 따라 추가로 원고 투고를 진행할지, 출간 계약을 할지는 모를 일이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이제 막 자리 잡은 이 손바닥만 한 동네의 지리를 익히고 한 사람의 부인이자 한 가정을 책임지는 주부로써의 소임에 좀 더 집중해야 할 것 같다.


일본 생활기록부의 시작


그래서 아예 매거진을 새로 만들었다. 이름하야 <일본 생활기록부>. 초등학생 때 선생님이 적어주신 학교 생활기록부처럼 일본에서 주부이자 글 쓰는 백수로 살아가는 나의 일상들을 적어보려고 지은 이름이다.


그동안은 미리 콘셉트를 잡고 기획한 글들을 주로 써왔다면, 당분간은 그저 내 삶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다. 계속 각 잡고 뛰기만 하면 또다시 금방 지쳐서 글을 멀리 할 수도 있으니까. 글쓰기라는 장거리 레이스를 단거리 달리기처럼 허겁지겁 소비하고 싶지는 않다.



전보다는 좀 더 내려놓은, 편안한 모습으로 나의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일본 생활기록부>를 시작하는 첫 마음가짐이다. 이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기록으로 남겼다.


지금 이 시국(!)에 일본에서 생활하는 이야기를 쓴다는 게 하나도 걱정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나라를 선택해서 온 것도 아니고,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남편 따라 일본에 온 나를 비난할 사람은 굳이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나를 비난할 것이고, 비난하지 않는 사람은 내가 일본에서 살든 미국에서 살든 상관없이 그저 받아들여주시리라 믿는다.


나는 무조건적인 일본에 대한 찬양도, 비하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저 외국인이자 주부이자 글 쓰는 백수로서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나의 모습과 그로 인해 느끼는 순간의 감정들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싶다.


그렇게 남편 따라온 일본이 그저 ‘따라온 것’에 그치지 않고, 시간이 흘러 들춰봤을 때 내 인생에서 놓칠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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