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밤 - 첫 번째 밤
안녕하세요, 글쓰는 백수, 백수라이터. 코붱입니다.
썸네일 보고 조금 놀라셨죠? [말하는 밤] 이라니. 이건 무슨 컨텐츠지? 싶으셨을 것 같아요.
인스타를 보고 눈치 채신 분들도 계실 것 같지만 말하는 밤은 기존에 운영해오던 [부엉이 상담소]의 유튜브 버전이에요.
[말 하는 밤]은 부엉이 상담소에 접수된 사연을 읽고, 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서 말씀드리는 코너인데요, 수, 일 밤 9시로 고정되어있는 기존 [글 읽는 밤]과는 달리 [말 하는 밤]은 굳이 요일을 정하지 않고 사연이 접수되면 그때그때 제작해서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운영해보려고 합니다.
오늘의 사연은 33살의 백수. 리윤 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12월에 권고사직으로 퇴사 후 쭉 쉬다가 최근 다시 같은 직종인 출판사로 경력을 살려 취업하고자 이력서를 넣어보고 있습니다. 두 곳에 면접을 보고 붙지 못한 이후부터는 뭔가 이력서가 다시 써지지 않고 의욕이 없어졌습니다. 퇴사 후 벌써 4개월이 지났고, 5월이 되어가면서 퇴직금으로 받은 금액과 실업급여는 끝나 생활비는 떨어져 가고 마음은 조급한데, 기존 경력을 살려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불안감도 듭니다.
그러다 보니 이 일이 제 적성에 맞는지도 의심이 듭니다. 오랫동안 관련 학과와 관련 일을 하고자 노력해왔지만, 사실 제 자신이 책을 읽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일을 하지 않은 4개월 동안에 독서량이 10권이 채 안 되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일 외에는 딱히 좋아하거나 떠오르는 일도 없습니다.
부모님이나 남편 모두 취업에 대해 재촉하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 혼자 일하지 않고 있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죄책감도 듭니다. 두 번의 면접을 통해 제게 어떤 역량이 부족한지 알게 되었지만, 그것에 대해 공부하고 준비하는 일이 막막하기만 하고 조급함만 자꾸 듭니다.
앞으로의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이미 4개월 이상 까먹었네,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올해의 절반이 날아가 버렸다' 이런 생각이 먼저 들어서 의욕이 생기지 않습니다.
하루를 그냥 물처럼 흘려보내고 있는 것 같아 스스로도 속상합니다. 아이를 빨리 낳아서 기르는 게 낫지 않겠냐는 말을 들을 때는 뭔가 더 조급한 생각이 듭니다. 여자 나이 35세가 노산의 기점이라고 생각하니 적극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이런 생각도 듭니다.
생각은 많은데 비해 행동하지 않고,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은데 소비만 하며 잉여스러운 삶을 사는 스스로가 한심하다고 생각됩니다.
주변에 자기 계발을 하면서 균형 있게 사는 사람을 보고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 계발을 해 인생계획을 짜고 계획대로 움직여볼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요 며칠 그와 관련된 정보를 찾아 헤맸지만, 해본 적 없는 자기 계발도 낯설고 수많은 정보들에 초점을 맞추기 힘듭니다. 오히려 혼란만 가중되는 것 같습니다. 의욕도 없이 집에 있는 요즘 답답하고 고민이 되는 날들이 이어지네요. 우연히 이 상담소로 흘러들어와 고민 글을 남겨봅니다.
리윤 님의 사연은 여기까지입니다.
우선, 리윤 님.
사연 속에서도 몇 번씩 반복해서 말씀해주셨는데... 지금... 마음이 많이 조급하신가 봐요.
사실 저도 리윤 님이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조급해하시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긴 해요. 저는 작년 3월 말에 남편과 함께 일본에 왔는데요, 생각처럼 바로 취업이 안 됐어요.
아니 막, 뉴스 같은데 보면 일본은 일자리가 막 넘쳐난다고 하잖아요. 근데 저는 계속 취업이 안 되는 거예요. 그때 알았어요. 아, 그건 그냥 일본인. 혹은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에 한한 얘기였구나. 저 같은 외국인은 여기에선 그냥 외국인 노동자일 뿐인 거예요.
저를 정식 직원으로 쓰려면 회사에서 제대로 된 노동비자를 내줘야 하는데, 이게 또 돈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 돈으로 한 120만 원 정도? 그렇게까지 큰 비용을 내면서까지 저를 쓰겠다는 회사가 단 한 군데도 없었어요.
그런데 이런 속사정을 모르는 주변 사람들은 저한테 막 이래요. 왜 아직도 놀고 있냐고. 일본은 일자리도 많을 텐데 왜 계속 놀고만 있냐고. 남편이 뭐라고 안 하냐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도 너무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막 혼자 우울해하고 있으니까 어느 날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어차피 취업 안 되는 거 그냥 돈 생각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한 번 해보라고.
올해 말까지는 당신 일 안 해도 나 혼자 어떻게든 할 수 있으니까 그냥 한 번 해보고 싶은 거 해보라고. 그렇게 말해 준 게 아마... 작년 8월 중순쯤의 일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잠시 손을 놓고 있었던 브런치를 다시 시작하게 됐어요.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가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져오게 됐고요. 그때 만약 제가 다시 글을 안 썼다면,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라는 저의 첫 책은 계약은커녕 원고조차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제가 왜 이렇게 구구절절 제 얘기를 길게 하고 있냐면요,
자기 계발하면서 균형 있게 사는 사람들의 인생은 그들의 인생이니까 그냥 신경 쓰지 마시고요,
리윤 님 스스로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게 뭘까... 사연을 읽으면서 저는 이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떠나질 않더라고요.
좀 더 쉬고 싶으신 건지... 아니면 취업을 빨리 하고 싶으신 건지.. 혹은 뭔가 생산적인 활동들이 더 하고 싶으신 건지... 아니면 더 늦기 전에 아이를 가지고 싶으신 건지... 대체 어떤 것이 리윤 님께서 지금 가장 하고 싶고 원하는 일인지가 잘 파악이 안 되더라고요.
다른 사람의 말에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면 리윤 님의 중심이 잡힐 수가 없습니다.
지금 리윤 님은 2번의 취업 실패로 자존감이 많이 낮아진 상태이신 것 같아요. 그래서 자꾸 다른 사람의 말이 내 마음의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고, 다른 사람의 행동들이 실제보다 더 대단하게 보이고, 그러신 것 같거든요?
리윤 님께서 현재 고민 중인 부분들. 취업과 자기 계발과 출산. 이중에 어떤 것이 지금의 리윤 님께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인가에 대해서 먼저 정리를 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리윤 님도 잘 아시겠죠. 아는데, 다 중요해 보이고, 뭐하나 포기할 수 없고, 뭐부터 선택해서 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 심정. 모르는 바가 절대 아니에요.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우선순위를 매겨봐야 합니다.
취업과, 출산, 자기 계발 중에서 1,2,3 뭐 이렇게 순서를 매겨보는 거예요. 무엇이 지금의 리윤 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지 순차적으로 번호를 매겨가면서 일의 우선순위를 따져보는 거죠.
그 후에 할 일은 데드라인을 정하는 건데요, 만약에 리윤 님의 최우선 순위가 지금 <취업>이라고 생각해볼게요. 그럼 앞으로 취업에만 올인해 보는 거예요. 대신 데드라인을 딱 정해두고 시작하는 거죠. 한 달이면 한 달, 두 달이면 두 달. 세 달이면 세 달.
딱 그때까지는 출산이든 자기 계발이든 전혀 생각하지 말고, 돈 못 버는 나 자신에 대한 답답함도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무조건 이력서 쓰고 면접보고 이력서 쓰고 면접보고 그러는 거예요.
그렇게 해도 안 됐다? 그럼 이제 다음 우선순위의 일로 넘어가 보는 거죠. 이렇게 한꺼번에 다하려고 하지 말고, 리윤 님만의 우선순위에 따라서 하나씩 데드라인을 정한 뒤에 한 번에 딱 한 가지씩만 집중해서 해보시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사연을 읽어보니까 리윤 님께서 지금 이렇게 자꾸 조급한 마음이 드는 건 현실적인 부분. 바로 <돈> 때문이신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부모님이나 남편은 모두 취업에 대해서 재촉은 하지 않으신다고 하신걸 보면 제가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하지만 지금 당장 리윤 님이 돈을 벌지 않으셔도 가계에 큰 부담이 가는 상황은 아닌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언제까지 내가 돈을 안 벌어도 괜찮은지를 모르니까, 리윤 님이 자꾸 조급한 마음이 드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만간 남편분이랑 같이 허심탄회하게 한 번 얘기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내가 언제까지 일을 안 하고 돈을 못 벌어도 괜찮을 것 같냐고. 삼 개월이면 삼 개월, 6개월이면 6개월. 연말이면 연말. 딱 정확히 한 번 정해보자고.
그렇게 애매하고 불분명한 부분들을 하나씩 없애 나가시다 보면 지금의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해소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또 남편분이랑 얘기하다 보면 남편분은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어요. 언제가 되든 상관없다고. 아니면, 그냥 돈 벌지 말고 우리 이참에 아이 갖자고 할 수도 있고요.
그럴 땐 이제 리윤 님이 또 생각을 해보셔야겠죠. 나는 지금 이렇게 일을 관두고 임신과 출산이라는 선택을 하게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겠는가에 대해서요.
모든 선택들에는 후회가 안 따를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남들의 말과 부추김에 떠밀리듯 한 선택보다는 내가 심사숙고해서 내린 선택들이 후회가 적습니다. 이건 제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러니까 리윤 님. 지금의 혼란스러운 마음. 이해가 가요. 당연합니다. 저도 그랬어요. 저에 대한 정립이 끝나지 않았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이고, 뭘 가장 원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한 정리가 아직 되지 않았을 때, 그때는 저도 참 많이 답답하고 우울하고, 조급해했거든요.
하지만, 그러한 답답한 상황을 리윤 님께서 벗어나고 싶으신 거라면
이렇게 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 답변이 리윤 님께 막 충분한 답변이 되셨을 것 같지는 않아요. 어떻게 보면 참.. 누구나 할 수 있는 원론적인 이야기들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 원론적인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었어요. 취업에 대한 조언 같은 거는 사실 저보다도 더 전문가들이 많으니까 그분들의 도움을 받으시는 게 리윤 님께도 더 도움이 될 것 같았고요.
대신 저는 3번씩이나 백수로 살아봤고, 현재 4번째의 백수생활을 하고 있는 백수 선배로써 백수가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어떻게 해야 나만의 중심을 잡고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다른 얘기는 다 잊어버리셔도 되는데요, 이 한마디만은 꼭 기억해주세요.
남들이 아닌 리윤 님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세요.
그래야 후회를 해도 적게 합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리윤 님이 읽으시면 좋을만한 책이 하나 떠올라서 한 권 추천해드릴게요.
우리나라 최초의 인지과학 박사이자 인간의 마음의 성장을 위한 연구들을 지금도 꾸준히 해오고 계시는 박경숙 작가님의 <문제는 저항력이다.>라는 책인데요,
전작인 <문제는 무기력이다.>라는 책도 참 좋은데, 지금 리윤 님께서는 굳이 전작까지는 읽으실 필요가 없으실 것 같고, 그다음 작품인 <문제는 저항력이다.>를 읽으시면 많은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책에 대한 소개는 굳이 하지 않을게요. 대신에 영상 설명란에 네이버 책정보 링크를 걸어 둘 테니까요, 한 번 읽어보시고 도움이 될 것 같으시면 구입을 하시거나 도서관 같은 데서 빌려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 이 책은 밀리의 서재에도 있어요. 그래서 혹시 구독 중이시라면 밀리의 서재에서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지난번 [글 읽는 밤]에서 읽은 브런치 작가 구이년생 조대리님의 글 중에 이런 말이 있었어요.
네가 가진 문제의 답은 너 스스로 알고 있어.
코붱이었습니다.
리윤 님, 그리고 구독자분들. 좋은 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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