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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Mar 06. 2024

나만의 특별한 생일축하 의식

엄마는 나도 처음이라서

아침 일찍 어머님한테서 카톡이 한 통 왔다.


“우리 며느리~ 생일 축하해!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렴~”


그걸 보고 나서야 알았다. 아, 오늘 내 생일이었지 참. 얼마 전 친구들이 과일이다 선물이다 이것저것 보내줘서 곧 내 생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작 오늘이 바로 그날인지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기를 낳은 뒤론 하루하루가 무슨 요일인지도 모를 정도로 날짜 개념이 없어졌다. 오늘도 어머님의 카톡을 받기 전까지는 그저 이틀 전에 똑떨어진 이유식용 시금치 큐브를 만들어야 하는 날에 지나지 않았다.


아마 근사한 레스토랑을 간다거나 경치 좋은 곳에 구경을 가는 등, 생일을 기념할만한 특별한 이벤트가 없었기에 더 모르고 지나칠뻔한 걸지도 모른다.


예전 같으면 이럴 때 괜히 남편한테 서운하고 하루종일 우울해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딱히 그렇지도 않다. 아마 ‘생일’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어서 그런 듯하다.


예전에는 나 역시 생일이라고 하면 으레 남들에게 내가 축하받아야 하는 날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아기를 낳아보니 생일은 내가 축하를 받는 날이라기보다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부모님(특히 엄마)에게 감사를 표해야 하는 날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은 이렇게 해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사실 몇 년 되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면서 이런저런 몸의 변화를 겪고, 아내이자 엄마로 사는 삶의 고단함까지 직접 경험해 보고 나서야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 지금껏 내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으며 태어났고 자라났는지를.


물론 나이 마흔이 다 되어 엄마에게 ‘고맙다’라는 말을 하는 게 여간 쑥스러운 게 아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엄마는 내가 생일 때마다 ‘낳아줘서 고맙다’라고 말하면 늘 멋쩍은 웃음을 지으신다.


나와 엄마는 사실 그렇게 사이가 좋은 모녀지간은 아니다. 서로 취향도 다르고 관심사도 달랐으며 결정적으로 나는 엄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는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남 탓을 했다. 내가 한 거 아니야, 네가 그렇게 하니까 내가 그런 거지. 저 사람이 잘못한 거야. 나는 아무 잘못 없어. 입만 열면 변명에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 듯한 그 뻔뻔한 태도가 나는 너무 싫었다. 그랬던 내가 더 이상 예전만큼 엄마를 싫어하지 않게 된 건 내가 아이를 갖고 나서부터였다.


엄마와 나는 딱 스물네 살 차이가 난다. 스물넷. 가장 꽃다운 나이에 엄마는 나를 낳았고 엄마가 되었다. 내 위론 두 살 위인 오빠까지 있으니 엄마 입장에선 스물 두 살 때부터 여자가 아닌 ‘엄마’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나는 서른여섯에 아이를 낳았다. 엄마보다 14년이나 더 늦게 아이를 낳은 건데도 여전히 모르는 게 많고 모든 것에 서툴다. 스물두 살에 엄마가 된 우리 엄마는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그렇게 겨우 말도 하고 제 발로 걸어 다닐 정도로 첫째를 키워놨을 때 둘째인 내가 생겼을 것이다.


아빠는 뱃사람이었다. 한 번 바다에 나가면 두 달이든 세 달이든 집에 들어오지 못했다. 오직 엄마 혼자서 오빠와 나를 온전히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엄마에게 고맙다고 하진 못할망정 나는 왜 자꾸 남 탓을 하냐고 그건 잘못된 거라고 엄마를 나무라기만 했을까.


남 탓을 하는 엄마의 나쁜 버릇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지만 나는 이제 예전만큼 엄마를 싫어하진 않는다. 닮고 싶지 않은 엄마의 모습보다 어린 나이에 나와 오빠를 홀로 키워내느라 고생했을 엄마의 모습에 더 눈길이 가고 마음이 머물기에.


시어머니에게 축하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카톡을 보내고 나서 바로 엄마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엄마는 일하는 중이었는지 통화하는 동안 가끔씩 주변을 살폈다.


“일하고 있었구나. 나중에 내가 다시 걸게.”

“아니야, 지금은 안 바빠서 괜찮아. 왜? 무슨 일이야?”

“어, 나 생일이라서 전화했어.”

“생일? 너 생일 아직 며칠 남았는데?”


엄마는 내 생일을 음력으로 쇤다. 내가 성인이 된 이후로 이제부터 내 생일은 음력 말고 양력으로 챙기겠다고 입이 닳도록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


이렇게 이상한 데서(?) 고집을 부리는 엄마의 모습도 내가 싫어했던 모습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그래. 이래야 우리 엄마지. 한결같이 고집스러운 엄마의 모습에서 나는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엄마, 낳아줘서 고마워.”


화면을 향해있던 엄마의 눈동자가 화면 밖으로 급히 돌려진다. ‘아아, 일본에 있는 우리 딸.’ 동료로 보이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나와 똑 닮은 그 눈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엄마에게 고맙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전히 고맙다고 말하는 건 참 부끄럽고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나중엔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는 때가 올 것이다. 


그전까진 마음껏 얘기해야지. 마, 나를 낳아줘서 고마워. 이때까지 잘 키워줘서 고마워. 엄마가 내 엄마여서 정말 고마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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