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위한 필수조건

by 코붱

무려 반년만에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그 충격적인 일을 잊지 않고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글이 뭐 쓰기만 하면 나오는 거지 뭐. 내가 그동안 쓸 시간이 없어서 못 썼지, 썼다 하면 아주 그냥 술술술 나올걸?이라고 자신하고 있던 내 뒤통수를 한대 딱! 때리고 싶어 질 때까지는 단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몇 번이고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를 해봐도 좀처럼 단 한 문장을 시작하기조차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서야 깨달았다. 아, 지금 내가 너무 욕심이 많구나, 하고.


뭐든 시작하면 일단 잘하고 싶은 욕심이 앞선다. 물론 이 욕심이 어떤 일을 해도 중간 이상은 할 수 있게 만든다는 큰 장점으로 작용되기도 하지만 이렇게 오랜만에 글을 다시 쓰게 되는 입장에서 '잘하고 싶은 욕심'이란 글을 잘 쓰게 만드는 플러스 요인이 아닌, 글이 시작조차 되지 못하게 만드는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래선 안 돼. 애기가 낮잠 자고 있는 이 시간에 어떻게든 써야 한다고.


가만히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번 후, 내쉬었다. 이제부터 나는 그냥 아무 말 대잔치를 할 것이다. 일단 생각나는 대로 쓰고 그 뒤에 고치든 말든 하자. 지금 내 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완성도가 아니라 진척도다.


그런 생각을 하며 손이 가는 대로 마음이 흐르는 대로 일단 뭐든 쓰고 봤더니 글을 쓰기 시작한 지 30분이 지나자 어느덧 A4 반 페이지 분량의 짧은 글이 완성되었다. 심지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는 제법 읽을만한 완성도로.


다음날 아침인 지금. 오늘은 오후에 일정이 있어서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원래는 어제 썼던 에세이를 이어서 써야 하는데 또 그놈의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앞서서 지금 이 글 먼저 쓰는 중이다.


브레인스토밍을 하듯 지금의 생각과 마음을 떠오르는 대로 휘갈겨 썼다. '붓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는 수필(에세이)의 뜻을 담아 그렇게 내 마음대로 휘뚜루마뚜루 적었다.


그러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쓰는 글인 에세이를 쓰기 위한 필수조건은 특별한 경험도 엄청난 통찰도 아닌 그 글을 쓰는 작가 본인의 '잘 쓰고 싶은 마음'을 최대한 내려놓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다소 뻔하지만 끝내 반박할 수 없는 그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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