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이드 바이 사이드>를 보고
영화 <사이드 바이 사이드>는 촬영의 매체가 필름에서 디지털로 변화하면서 그것이 영화 산업에 미친 영향을 논한다. 작품 속에서 감독은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각계 각층의 인사를 인터뷰한다. 이를 통해 필름 촬영에서 디지털 촬영으로의 변화가 산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지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필름통을 이고 지고 다니며 일정 시간이 흐르면 필름을 교체하며 촬영을 이어가던 시대의 이야기. 디지털 촬영의 시대에 배우의 ng는 촬영 시간을 지체시키는 수준의 실수이며, 가끔은 비하인드에서 프로 배우의 인간성을 보여주는 귀여운 순간으로 소비되기도 한다. 하지만 필름 시대에는 ng는 물성을 지닌 필름을 낭비하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다. 무거운 필름은 야외 촬영의 이동성 또한 제한해왔다. 그렇기에 디지털 촬영의 등장은 가히 혁명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이 변화를 반긴 것은 아니었다. 디지털 카메라가 처음 등장했을 때, 그것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이미지는 ‘싸구려’ 이미지였다. 영화 발명 이후 100년 정도의 발전을 거친 필름 카메라가 정점을 찍은 이미지들을 생산해낼 때, 이제 갓 시장에 나온 디지털 카메라가 구현하는 이미지의 퀄리티는 그것을 당연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랬기에 당시 영화 산업의 종사자들은 대부분 디지털 카메라는 홈비디오나 찍을 수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일찍이 발전의 가능성을 알아챈 몇 감독을 빼고는.
그 흐름을 따른 감독의 대표주자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창시자인 조지 루카스였다. 조지 루카스는 고화질카메라로 찍은 최초의 대형영화사 장편 영화를 찍는 도전을 했고, 그것이 <클론의 습격>이었다. <클론의 습격>은 기획 단계부터 소니와 계약을 통해 디지털 촬영의 발전을 도모한 것이었고 이는 성공적이었다. 조지 루카스가 여전히 필름을 찬양하던 이들에게 이 영화는 필름으로 찍고 디지털이라고 속이는 것이라는 비난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이 성공을 방증한다.
이런 상업적인 영화의 성공만 아니라, 예술 영화에도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은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전보다 저렴해지고 가벼워진 장비는 영화계의 접근성을 낮췄고, 이전보다 다양한 주제를 담은 영화들의 탄생을 도왔다. 이런 측면은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카메라로 밥벌이를 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해주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디지털로의 변환이 이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필름 시대에 권력을 가지고 있던 관계자들의 말이긴 하지만, 영화에 등장한 한 촬영 감독이 기억에 남았다. 이전의 필름을 이용한 촬영은 촬영 감독만이 미래에 나올 결과물을 알 수 있었으나, 이제는 모두가 모니터를 통해 촬영본을 볼 수 있어졌다는 말. 물론 이것은 감독과 스태프, 배우와의 소통을 돕는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촬영 감독의 역할이 점차 줄어드는 듯 하다는 것이 그의 말이었다. 이제 카메라는 마술상자가 아니다.
연출과 촬영에 관심이 많아 관련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이 작품은 영화의 제작 과정에 관여하는 스태프들의 이야기도 충분히 담아낸다. 일단 인터뷰어가 놀랍게도 키아누 리브스이며, 지금은 감독으로 더 잘 알려진 그레타 거윅도 나온다. 배우들의 입장도 꽤나 잘 담겨있다는 말이다. 그 외에도 후반 작업에 관여하는 스태프들도 여럿 등장하는데, 그들은 디지털 촬영을 다른 이들보다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았다. <사이드 바이 사이드>가 나온지 어느덧 10년이 지난 지금 이들의 이야기를 생각하면, 후반 작업의 영역은 점차 넓어지고 있다고 느껴진다. vfx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는 촬영을 마친 뒤, 색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들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때 메타 데이터가 섬세하게 담긴 디지털 촬영은 필수적인 과정이다.
물론 여전히 필름의 힘을 믿는 이들이 있다. 나 또한 필름으로 영상을 촬영해본적은 없으나, 언젠가 필름으로 상영하는 작품을 보고 필름이 영사기에서 돌아가는 소리부터 필름 영상만이 낼 수 있는 질감에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더불어 필름은 물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매력적인 매체다. 디지털 촬영이 아무리 편리하고 매력적이라 해도, 아카이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사라지기 십상이다. 내가 살면서 촬영한 영상들의 푸티지만해도 몇 년 전의 것들은 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어디있는지 모르는게 다수이다. 이것은 사실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영상을 저장하는 매체는 계속 변해왔다. dv 테이프, vhs 비디오 등등… 아직까지 이것들의 변환을 돕는 업체들은 있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우리는 모른다. 플랫폼에 올라와있는 영상들도 마찬가지다. 플랫폼이 죽으면 영상도 죽는다. 이 말인 즉슨, 지금의 디지털 영상들의 존속은 우리는 장담할 수 없다. 그렇기에 필름이 가진 물성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결국 이 영화는 필름과 디지털 두 가지의 매체가 가진 장단점에 대해 논한다. 필름이 가진 매력과 디지털이 가진 매력은 다르다. 그러나 어쨌든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필름과 디지털은 모두 수단에 불과하며, 무엇을 찍고 이야기하고자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영화사, 촬영, 그에 관련된 기술 등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밌게 볼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나라서 난 정말 재밌게 봤다. 물론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다. 촬영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인 영화인데, 영화의 촬영은 밋밋하기 그지 없었다는 점. 출연진들이 화려하긴 하지만, 평범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처럼 유명인들 앉혀놓고 이야기 듣는게 전부라는게 좀 아쉽긴 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재밌었기에 큰 불만은 없었다. 정말 큰 불만은 EIDF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다큐멘터리 같은데, 영상 싱크가 조금씩 밀리는 느낌이고 전문영역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인데 나도 알만한 용어들의 해석이 틀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점. 촬영 이야기하면서 다이내믹 레인지 이야기하시는데, 냅다 오디오 관련 용어로 해석을 이해를 돕는다고 달아놨던데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이런… 단점만 감수하면 이 작품은 최고의 작품입니다. 저와 관심사가 비슷하신 분, 필람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