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사랑하다, 우연주의 작품세계

by SUM

우연주의 작품 세계에서 매듭의 형상은 주요한 모티브로 쓰인다. 매듭은 실이나 끈 등을 묶어 맺은 자리를 뜻하며, 주로 작게 뭉쳐진 덩어리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가 표현하는 매듭은 보편의 양상과는 다르다. 그는 끈의 양 끝을 묶되, 그것을 온전히 맺어내지 않고 리본의 형상을 닮은 매듭을 만든다. 이러한 형상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대다수의 매듭은 쉬이 풀리지 않는 결속을 표하나, 작가가 표현하는 리본의 형질은 연약하디 연약하다. 얼핏 보면 견고하기 그지없는 두 개의 가닥을 누구라도 당기는 순간, 그 매듭은 쉽게 풀리고 만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엔 결속에 대한 갈망과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한다. 손을 맞잡고, 눈을 맞추어보아도 하나가 될 수 없는 관계로 인한 불안은 작가의 작품 세계 전반에 내재한다.


반드시 실패하는 결속의 욕망

Tie us!, 2024, 판넬에 유화와 오일파스텔, 34.8 x 72

누군가에게 사랑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수많은 대답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이들이 서로의 곁에 머물고자 하는 마음을 품는 것만은 틀림없다. 단순한 공존만으로 해소되지 않는 감정도 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손을 맞잡고 살결을 맞대본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하나라는 착각에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서로 다른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일이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결속의 욕망을 품는 우리. 작가의 불가능한 꿈은 엉성한 매듭으로 표현된다. 미완의 형상이 언제 풀릴지 모르듯, 우리의 결속 또한 그저 한순간의 환상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나가 될 수 없어 좌절하던 와중, 멀리서 우리를 바라본다. 예견된 실패를 매번 마주함에도 찰나의 결속이 맺어낸 꽃과 열매가 보인다. 오직 우리였기에, 우리만의 모양으로 피워낼 수 있었던 사랑의 흔적을 잠시 관조해 본다.


찰나의 결속부터 상실의 불안까지

Sequences of wishes, 2025, 판넬에 유화와 오일파스텔, 162.2 x 130.3

영화에서 ‘시퀀스’란 몇 개의 연속적인 장면이 결합되어 하나의 스토리를 구성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점에 착안해 봤을 때, <Sequences of wishes>는 작가가 품는 소원들의 연속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상상케 하는 작품이다.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요소는 돌탑이다. 돌탑은 소원의 결정체이다. 하나하나의 돌에 담긴 미래에 대한 수많은 바람들. 작가는 자신의 돌탑을 리본의 형상으로 감싸며, 돌탑의 형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돕는다. 눈여겨볼 점은 돌탑의 위에 촛불을 둔 점이다. 조금이라도 바람이 불면 돌탑을 지키는 매듭의 형상이 불타 없어지고 말 텐데, 그에 대한 불안은 잠시 잊은 듯하다. 자신의 빛나는 소원의 가능성을 실험해 보려는 것인지, 이 희망을 타인에게도 선연히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 촛불은 돌탑의 정중앙에서 고요히 빛을 발한다.

돌탑의 좌측에는 분수가 자리한다. 작품에서 분수는 미적 요소를 넘어, 오랜 시간 축적된 자신을 비롯한 타자의 수많은 소원을 표현하는 장치로 쓰인다. 분수를 향해 던져진 각기 다른 소원이 녹아든 동전들. 물속에는 이미 녹이 슬고 만 누군가의 소원이 담긴 동전이 자리하고, 그 위에 또 다른 소원이 담긴 동전을 던진다. 과거 작가가 품었을 수많은 바람뿐만 아니라, 우리가 품었던 바람들이 작품 안에 존재한다.

작품이 아름다운 소원의 시간만을 담은 것만은 아니다. 차근히 화면을 살피다 보면, 작은 가위를 발견하게 된다. 가장 큰 리본 형상의 곁에 자리한 가위는 우리에게 질문을 품게 한다. 가위를 들 주체는 타자일까, 아니면 자신일까. 아름다운 이 시간이 언젠가는 끝날까 두려워, 클라이맥스의 순간에 먼저 관계를 끊어내려 하는 욕망의 표현일까.

이같은 관점으로 작품을 관찰하면, 주변부 곳곳에 자리한 결속의 갈망을 표하는 매듭의 형상 또한 달리 읽힌다. 작가가 인생 전반에 걸쳐 품었을 크고 작은 결속의 욕망, 뒤집힌 매듭의 형상으로 표현되는 아픔의 기억. 단단한 결속을 꿈꾸며 커다란 매듭으로 돌탑을 감싸면서도, 촛불을 피우고 가위를 놓는 행위까지. 작품은 단순히 상징을 드러내는 장치들의 배치에 멈추지 않고, 그 의미들이 연결되며 하나의 유려한 내러티브를 구축한다.


그 순간의 마음만은 진심이기에

메리 크리스마스, 트리 맨, 2025, 캔버스에 유화와 오일파스텔, 45.5 x 37.9

<메리 크리스마스, 트리 맨>은 상실에 대한 불안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크리스마스를 사랑하는 이들은 그날만을 기다리며 트리를 꾸민다. 그리고 트리를 빛내는 장식에 그보다 영롱한 자신들의 사랑을 비춰보기도 한다.

그러나 트리의 쓰임은 길지 않다. 12월 25일이 지나고 나면, 새해는 밝아온다. 새해를 축하하는 불꽃놀이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즈음, 트리는 수명을 다한다. 크리스마스만을 위해 살아낸 트리는 어느새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만다. 작가는 그런 트리에 발을 달아주었다. 언제든 도망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주기 위해서일까.

그러나 트리는 쉽게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을 곁에 두고 오가는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그는 들었을 테다. 그 말의 진심과 사랑을 그는 안다. 다음 해 자신이 듣게 될 ‘메리 크리스마스’를, 자신이 다시 빛날 순간을 기다리며 바보처럼 트리는 그 자리에 머무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이따금 작가는 작품을 통해 상실에 대한 불안을 표현한다. 이는 영원한 결속을 바람에도 그것을 믿지 못하는 그의 습관이고 버릇인 동시에 현실이다. 그러나 그는 그저 불안에 침잠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에게 또다시 사랑이 찾아온다면, 상실의 아픔 따위는 잊은 듯 그는 사랑을 선택할 것이다. 사랑을 사랑하는 작가는 또다시 사랑을 꿈꾼다. 그의 작품 세계에는 언제나 실패에 대한 불안을 넘어, 예견된 실패를 선택할 용기가 자리한다. 이같은 서사는 그의 작품들이 가진 형식과도 조응한다. 작가가 구현하는 추상과 구상의 경계에 놓여있는 화면은 결속과 상실의 경계에 놓인 우리의 불확실한 관계와 닮아있다. 불확실해서 유약하고, 유한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사랑이 만드는 그만의 세계. 그 세계의 찬란한 편린이 우리를 또다시 반길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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