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백된 세계에서 맺는 관계란 얼마나 무상한가

시리즈 <월간 남친>을 보고

by SUM

현대 사회에 연애는 사치다. 연애에 드는 감정 노동부터 꾸밈 노동, 그리고 데이트 비용까지. 어쩌면 연애는 중노동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데이트 구독 서비스인 ‘월간 남친’의 등장은 연애 시장의 판도를 뒤흔든다. ‘월간 남친’은 연애가 제공하는 위험 부담은 소거한 채, 오직 연애의 좋은 점만을 남긴 서비스이다. 월마다 구독료만 지불하면 나를 사랑하는 남자가 인생에 나타난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치 않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만을 사랑하는 남자다. ‘월간 남친’은 연애 회의론자이던 미래의 삶에도 침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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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남친’의 설정은 흥미롭다. 월 구독료를 지불하면 900명의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캐릭터와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서비스. 업무 상 미팅으로 프로토타입의 제품을 제공받은 미래는 호기심에 ‘월간 남친’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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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하게 등장하는 인물은 상반된 매력을 가진 두 인물 최시우(이수혁)와 서은호(서강준). 외모도 성격도 정반대인 두 사람의 매력을 즐기며 미래는 가상 현실의 로맨스에 빠져든다. 그저 각본에 따라 흘러가는 ‘연애 놀이’에 회의감을 느낄 때쯤 서비스 속 데이트 매니저는 미래만을 위해 준비된 비장의 카드를 공개한다. ‘월간 남친’ 서비스에는 개별 이용자의 특성에 맞춰 커스터마이징 된 캐릭터가 있다. 901번째 남자라는 의미로 그의 이름은 ‘구영일’이다.

구영일은 외모부터 성격까지 미래만을 위해 만들어진 남자다. 기대감에 차 구영일을 마주하는 미래. 그러나 그의 외관이 자신의 회사 동료인 경남과 똑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며 미래는 혼란에 빠진다. 이제 가상현실과 현실이 혼재되기 시작한다. 나의 취향부터 결핍까지 모든 것을 아는 존재인 구영일이 가상현실에 있는가하면, 미래에게 사랑을 고백한 경남이 현실에 있다. 선택의 기로에 놓인 미래. 미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월간 남친>은 예상할 수 있는 결론을 제공한다. 미래는 현실의 변수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선택하는 용기를 낸다. ‘월간 남친’의 세계는 안온하기 그지 없다. 가상 현실 속 캐릭터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 정해진 결론으로 주어져있고, 캐릭터와의 관계에 질리면 클릭 한 번으로 이별이 가능하다. ‘월간 남친’의 세계는 온갖 변수가 제거된 표백된 세계이다. 반면, 현실 세계는 변수로 가득하다. 내가 사랑하는 이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서로의 마음이 맞는다고 그것이 영원하지도 않다. ‘우리’라고 묶이던 서로가 일순간에 남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미래는 왜 이토록 위험한 현실의 사랑을 선택했을까. 그토록 차갑던 사람이 나에게만 연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신경이 쓰이고, 시작도 전에 이별이 두려워 밀어낸 마음에 또다시 차가운 모습을 내비치는 것이 아프다. 통제할 수 없는 타자의 감정은 나를 불안하게 하고 그 순간 우리는 사랑을 느낀다. 미래는 표백된 세계의 안정감보다 현실의 불안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바보처럼 사랑을 한다.


사실 <월간 남친>은 나에게 기대 이상의 작품이었다. 단순히 킬링 타임용 콘텐츠로 볼 생각이었으나, <월간 남친>은 흡인력이 좋은 작품이었다. 미래와 이용자를 매혹시키기 위한 900개의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남자 캐릭터는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데도 유효하게 기능한다. 이수혁과 서강준을 비롯해 외모도 연기력도 주연급의 배우들이 대거로 등장하며 우스갯말로 “이중에 취향 하나쯤은 있겠지?”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눈을 즐겁게 하는 시간이 이어진다. 결국 미래가 선택하는 경남(서인국)의 매력도 못지 않다.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다. 미래가 자신도 몰랐던 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한 장치가 아쉬웠다. ‘구영일’ 캐릭터와 경남의 외모를 동일하게 설정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경남과의 ‘혐관’ 속에 사랑을 시작할만한 요소는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상처받고 부대끼는 감정 속에 자라난 현실의 사랑만이 가지는 힘이 있다. 외모가 같지 않더라도 월간 남친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들키며 갈등을 빚게 되는 구조 정도로 구성되어도 충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뒷맛이 깔끔한 로맨틱 코미디를 만났다. 사랑에 지쳤다면, 또는 여전히 사랑을 꿈꾸는 이라면 <월간 남친>을 일람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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