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냐의 낭독 걷기 3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도 책은 숙제나 시험 때문에 마지못해 펼치는 존재였죠. 내용을 즐기기보다는 ‘이걸 언제 다 읽지?’하며 억지로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결혼하고, 미국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일하면서 바쁘게 살다 보니 책과는 더욱더 멀어졌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스케줄에 따라 정신없이 살다 보니, 책 읽을 시간은커녕 책을 읽어야 한다는 필요성조차 못 느꼈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작은 목표들을 달성하며 사는 것에 만족했습니다. ‘나는 아주 잘 살고 있어!’하고 맘 속으로 우쭐대기까지 했죠.
그런데 코로나 19로 세상이 잠시 멈춤 버튼을 누른 것처럼 되자, 문득 제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제대로 된 ‘쉼’ 없이 무언가에 늘 쫓기듯 살아온 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쳇바퀴 돌듯 바쁜 일상에 파묻혀 정작 제 마음의 소리는 듣지 못하고 살았던 거죠.
그렇게 텅 빈 저를 마주한 후,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책에 집중하는 시간만큼은 답답했던 현실을 잊을 수가 있었습니다. 몰랐던 세상 이야기에 눈이 번쩍 뜨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좀 창피한 이야기지만, 저는 그때까지 ‘인스타그램’ 같은 게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저에게 유일한 SNS는 가끔 쓰는 카카오톡 정도였죠.
세상을 더 알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잠까지 줄여가며 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마치 예전에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것처럼, 독서도 ‘빨리’, ‘많이’ 읽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속독’과 ‘다독’에 온 신경을 쏟았습니다. 글자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읽는 묵독은 뒷전이었죠. 하물며 시간도 오래 걸리고 소리까지 내야 하는 낭독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1년 넘게 그렇게 열심히 읽고 쌓아 올린 책 더미만큼, 제 머릿속이나 가슴속에는 깊이 새겨진 문장이나 감동은 의외로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요. 많이 읽었는데 남은 게 없는,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부었던 기분이랄까요? 저는 ‘양’에만 집착하고 ‘내용의 깊이’를 놓치는 실수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 무렵, 우연한 기회로 낭독을 만났습니다. 낭독은 분명 느리고 시간이 더 걸리는 일이었지만, 그 안에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바로 ‘나만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오롯이 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낭독을 만나기 전, 제 목소리는 학생들과 찬양대원들을 가르치느라 너무도 과하게 사용되는 도구였는데, 책을 낭독할 때만큼은, 제 목소리가 오직 나에게만 들려주는 귀한 울림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낭독은 제가 평생 해 온 음악과 너무나 닮았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제가 왜 낭독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가장 놀라운 발견은 ‘쉼(Pause)’의 역할이었습니다. 저는 성우님들의 낭독 강의를 들으며 제가 음악을 가르칠 때 건네는 똑같은 조언을 들었습니다.
성우님은 늘 말씀하셨습니다.
“포즈~! 다음 문장을 먼저 눈으로 보세요.”
“낭독하기 전에 내용에 맞게 끊어 읽기와 발음을 체크하세요.”
“텍스트를 완전히 이해한 나로서 낭독해 보세요.”
저도 찬양대원들에게 늘 말했습니다.
“잠깐요~! 가사를 먼저 음미하세요.”
“쉴 곳에 쉬지 않으면 호흡을 운영할 수 없어요. 쉼도 음악이에요.”
“온 마음을 다해 노래를 부르세요.”
음악에서 쉼표는 단순한 침묵이 아닙니다. 쉼이 시간은 다음에 이어질 선율이 더 깊이 있게 연결되도록 준비하는 시간이며, 결과적으로 노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낭독에서의 쉼도 마찬가지입니다. 쉼이 없다면 호흡이 급해져 여유 있는 의미 전달이 힘들어집니다. 결국 쉼이야말로 낭독과 음악을 관통하는 가장 근본적인 공통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낭독과 음악 둘 다 소리를 매개로 하는 예술입니다. 음악이 음표와 쉼표의 조화로 완성되듯이, 낭독 또한 소리의 높낮이와 쉼의 적절한 변주가 필수적입니다. 연주자가 악보에 담긴 작곡가의 마음을 자신만의 해석을 실어 하나의 음악을 만들 듯이, 낭독자 역시 작가의 글을 하나의 악보로 삼아 온 마음을 담아 체화하고 청자에게 이야기해 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낭독은 제가 오십 평생 해온 음악과 너무도 닮았습니다.
왠지 불안할 때,
혼자 있고 싶을 때,
내면의 나를 찾고 싶을 때,
뭔가 막막하거나 답답할 때,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
내가 읽는 책을 더 깊이 느끼고 싶을 때...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
복잡한 세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