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내편인 든든한 친구

스테파냐의 낭독 걷기 2

by 한희정

우리 가족은 늘 멀리 떨어져 지냈습니다. 심지어 제가 영국으로 유학 가 있을 때, 동생들은 미국 메릴랜드, 캘리포니아, 그리고 캐나다에 흩어져 산 적도 있었죠. 그렇다보니 우리 남매에게 함께 북적거리던 어린 시절은 가끔 떠오르는 추억일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가깝게 지내는 이웃보다도 더 멀리서 늘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9년 전, 펜실베이니아에 살던 동생네 가족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제가 살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뒤 우울증으로 고생하시던 엄마도 한국에서의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두 딸이 있는 이곳으로 오셨습니다. 오랜 시간 곁에 있어 드리지 못했던 죄송함과 함께 이제라도 함께할 수 있다는 기쁨이 교차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이야기가 잘 통하던 친구 같은 동생을 매일 볼 수 있어서 좋았고, 너무 멀어 늘 마음뿐이었던 엄마도 옆에 계시니 한시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우리는 함께 살아갈 미래의 그림을 그려 보았습니다. 편안한 노후를 위해 우리도 비즈니스를 해 보자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전혀 비즈니스의 경험이 없었지만 그 당시 학생들을 가르치며 피아노 앞에서만 살아온 단조로운 삶에서 벗어나보고 싶었던 시기라 기꺼이 동의했습니다. 조금은 두렵기도 했지만, 비즈니스 경험이 많은 엄마, 그리고 동생과 함께라면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날마다 피트니스 센터에서 만나 아침 운동을 한 후, 점심을 먹으며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후에는 이곳저곳 여러 장소를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고 다니다가, 마침내 마음에 쏙 드는 곳을 발견했습니다. 공사를 꼼꼼하게 진행해 줄 경험많고 믿음직해 보이는 컨트랙터(contractor)도 만났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밝은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는 것 같아 가슴이 설레였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험당한다고 하더니, 우리는 믿었던 컨트랙터에게 그만 큰 사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공사가 겨우 30% 진행되었을 때, 그는 돌연히 연락을 끊고 잠적해 버렸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져 한동안 넋 놓고 지냈습니다. 남의 이야기로만 여겼던 사기 사건이 우리에게 현실로 닥치니, 그 상황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 평온한 일상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편안한 노후는커녕 감당하기 어려운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민사소송은 물론 형사 사건에까지 얽히면서 몸과 마음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후, 우리의 삶은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눈을 뜨면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켜 가게로 향해야 했습니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뛰어다니기 일쑤였습니다. 자정이 가까워져서야 비로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손님 앞에서는 속으로는 웃고 싶지 않지만 겉으로는 억지웃음 가면을 써야 했습니다. 속에서는 천불이나도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반복했고, 익숙하지 않은 일에서 실수가 생길 때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고개를 숙여야 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치다보니 가족들과도 생각의 차이와 성격의 괴리로 부딪히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다시 학생들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가족이 함께 시작한 일에 차마 등을 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 음악과 함께 한 삶이 점점 멀어지며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도 평탄했던 지난날을 감사할 줄 모르고 당연하게만 여긴 것에 대한 벌을 받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렇게 3 년이란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그 와중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까지 만났지만, 다행히도 비즈니스는 점차 자리를 잡아갔고, 버겁기만 하던 빚도 서서히 정리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예전의 평탄했던 음악가의 생활로는 되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비즈니스가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섰더라도, 아직은 가족을 떠나 저만의 길을 가기에는 시기상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모든 힘든 시간 동안 저를 버티게 해 준 것은 낭독이었습니다. 낭독을 알기 전엔, 그저 소리 내어 글을 읽는 단순한 행위일 뿐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챰으로 신기하게도, 소리를 내어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깊숙이 응어리져 있던 마음이 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화가 날 때 책을 읽으면 들끓던 마음의 불길이 차분히 가라앉았고, 속상한 마음으로 읽으면 글자들이 마치 따스한 위로의 손길이 되어 다가왔습니다. 또 우울한 날엔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속삭이며 제 어깨를 다독여주기도 했습니다.


늦은 밤, 잠자리에 들기전, 단 10분이라도 책을 펼치고 소리 내어 읽는 그 시간은 ‘진정한 나’와 대면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세상 누구도 아닌, 오직 책과 나만이 교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제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듯이, 낭독은 언제나 제 곁에서 저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다시 웃을 수 있었고, 다음 날을 살아낼 힘을 얻었습니다.

낭독은 제 마음을 비추는 맑은 거울이자, 제 곁을 지켜주는 가장 든든한 친구였습니다. 가족과의 동행이 현실의 삶을 지탱해 주었다면, 낭독은 지친 저의 영혼을 붙들어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다정하게 눈물을 닦아주고, 때로는 환하게 웃게 해 주면서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제 자신이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기에 앞으로도 저는 이 든든한 친구와 변함없이 함께 걸어갈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생애 첫 취미, 낭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