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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는야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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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독가 한희정 Sep 07. 2023

내 인생은 늘 양다리가 문제였다

나는야 60! 

오늘 나의 알바 첫날이다!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갈 땐 좀 어색했다. 괜한 일을 벌였나 싶었다. 어쨌든 약속은 약속이니까 문을 밀고 들어갔다. 요거트와 스무디를 파는 YoPop (요팝) 가게이다. 빨간 앞치마를 입고 트레이닝을 받았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처음이라 이것저것 자질구레하게 알려주는 사항들을 머릿속에 집어넣으며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가게문은 11시 반에 시작되지만 30분 전인 11시에 도착해서 문 열기, 컴퓨터 켜기, Hot Fudge, Safety, 그리고 모든 요거트 기계 켜기, 36가지 타핑 셋업 한 후 요거트기계들이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TV와 음악 켜기, 원리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천장에 달린 물도 틀기가 손님을 맞이하기 전 내가 할 일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싫은 일이 있었다. POS기계다. 참으로 OLD다! 요즘은 저절로 카드만 갖다 대면 자동적으로 일사천리 아닌가? 손님이 저울에 요거트 컵을 올려 가격이 뜨면, 그 가격을 옆에 있는 작은 기계에 손가락으로 눌러 입력한 후 손님의 카드를 스캔해야 한다. 거기에서 끝이 아니다. 또다시 컴퓨터에 비자인지 마스터인지 카드의 종류를 클릭해야 계산이 끝난다. 이럴 수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도구였다!!! 내 것도 아니니 막 만져볼 수도 없고!!! 


게다가!!! 

주인아주머니는 설명을 주르륵하더니 가버렸다. 부딪치며 배우란다. 헛!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4팀이 거의 동시에 들어왔다. 가슴이 쿵쾅쿵쾅 되기 시작했다. 


첫 손님이 크레딧카드가 아니라 현금을 주었다.

으악! 돈을 거슬러 주어야 하는데 POS가 배운 데로 작동이 되지 않았다. 뒤에는 다른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나의 얼굴은 화끈거렸다. 진땀이 났다. 이것저것 마구 눌러댔다. POS에 달린 현금서랍이 다행히 열려 거스름돈을 건네줄 수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손님이 낸 20불짜리 지폐가 테이블 위에 그대로 있었다. 다시 열려고 해 보았지만 작동이 되지 않아 옆에 모셔둘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손님은 크레딧카드로 페이 한다고 해서 안심을 했다. 그런데 그것도 순간이었다. 프린터가 작동하지 않았다. 당황했다. 눈치 빠른 손님은 영수증이 필요 없다고 했다. 


나의 6시간 알바는 주인아주머니가 원하는 대로 좌충우돌이었다. 일이 끝나갈 무렵 손님이 갑자기 뚝 끊겼다. 유리문 밖을 쳐다보았다. 거리에는 사람도 없었다. '양다리'라는 단어가 문득 떠올랐다.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생각해 보면 그다지 큰 손해도 아닌데 두 길을 다 택하는 피곤한 삶! 때론 맘과 몸이 따로가 되는 일상! 마음은 싫다고 말하면서 몸은 움직이고 있는, 바로 내가 자처한 '양다리 삶!' 


물론 오늘의 알바는 내가 해보고자 했던 것이다. 집안에만 거의 틀어박혀 고귀한 척 앉아 학생들에게 머리 아픈 잔소리를 해대야만 하는, 특히 매년 치러지는 오디션을 앞두고서는 학생들을 날마다 연습한 녹음파일을 들으며 피드백을 주는, 학생들에게 부담을 주는 만큼 나 자신도 스트레스를 받는, 뭐 그런 생활에서 탈피를 시도한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미루어도 되는 일이다. 여러 가지 벌려놓은 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끝내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일 하나를 더 추가한 느낌이다.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의 순서를 정해야 했었다. 조금 나중에 해도 될 일도 포기하지 못하는 나란 사람! 늘 양다리 인생이다. 


집에 오자마자 주인아주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많이 많이 미안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고. 그런데 아주머니는 6시간만이라도 도와달라고 한다. 내 잘못된 욕심의 결과라 사람을 구할 때까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집중하자! 한 가지 일에. 

벌려놓은 일들을 먼저 줄여 나자가.  

더 이상 양다리로 살지 말자. 

먼저 비운 다음에 추가해도 괜찮다. 

내 나이 60 임도 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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