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Redsmupet Jan 22. 2021
그녀의 아버지는 폐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어머니 역시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말하며 그녀는 동네 사람들 중에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분들 얘기를 꽤 많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아랫집 아저씨도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옆집 아들내미도 암으로 죽었다고 한다. 암으로 죽는 이가 많은 세상이라지만 이 작은 동네에 이렇게 암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은 게 정상인 건가?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2018년 4월, 정부의 미세먼지 저감 조치로 1973년에 건설된 영동화력발전소가 한 달간 가동을 중단한 적이 있었다. 이때 화력발전소를 중단하는 게 미세먼지 농도 감소에 얼마나 효과적인지 연구한 자료가 있다. 한국 조세재정 연구원과 한국 농촌경제연구원에서 실시한 연구였는데, 결과를 보니 발전소 가동을 멈춘 지 한 달 만에 강릉시의 초미세먼지가 3.7㎍/㎥ 감소했다. 화력발전소가 정상적으로 가동되던 바로 전 달에 비해 미세먼지 농도가 13~15%가량 줄어든 것이었다. 딱 한 달이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화력발전소는 멈추지 않았다.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강릉에 사는 우리는 항상 화력발전소 덕분에 13~15%의 미세먼지를 추가로 마시며 살고 있다.
강릉시의 미세먼지 측정소는 옥천동에 있다. 영동화력발전소와 옥천동의 거리는 7km, 공기 중에 확산되는 미세먼지가 가까운 지역 주민들에게는 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화력발전소 인근에 사는 이들의 건강문제에 대한 연구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작년 8월 하동시 화력발전소 인근 지역 주민들의 건강 실태 조사 결과 몸속 중금속과 발암물질 농도가 심각하다는 보도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화력발전소 인근 지역의 대기 중 중금속 농도가 인구가 밀집한 전국 7대 광역시의 평균 농도보다 높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사실 인터뷰를 하면서 안인에 사는 분들 중에 암으로 돌아가신 분들이 유독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흘려버렸다.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자료를 찾아보면서 근거가 있어야 하는 일에 근거를 만들지 않은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화력발전소 인근 주민들에 대한 건강 실태조사를 하고, 건강지원사업을 실시하는 지자체에 대한 기사를 발견했다. '영동화력발전소'라는 이름을 열심히 찾아봤다. 기사를 찾을 수 없어 '강릉'이라는 이름을 다시 한번 찾아봤다. 없었다. 영동화력발전소 인근 주민의 건강 문제에 대한 자료는 없는 건가? 실망스러웠다. 70년대에 지어져 말 그대로 '노후한' 화력발전소라면 그 어느 지역의 발전소 못지않게 오염물질이 배출되고 있을 텐데, 다른 지역에는 시끌벅적한 건강문제가 유독 이 동네 사람들에게만 없는 걸까, 그 오랜 세월 왜 이리 조용했을까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예전에 인터뷰한 여성, 부모님이 모두 암으로 돌아가신, 안인이 고향인 그분의 인터뷰가 생각난 건 며칠 전 새롭게 한 인터뷰 때문이었다. 강릉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환경운동을 해오신 분을 인터뷰했더랬다. 이런 분 덕분에 강릉의 자연이 그나마 이 정도로 보존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참 고마운 사람, 이런 사람들이 강릉에 있다는 게 든든했다. 그런데 그분의 한마디가 목에 탁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결국은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깨어 있느냐가 가장 중요해요. 자기 땅 자기가 팔고 나가겠다는데 옆에서 말린다고 되나요? 주민들이 의식이 있으니까 구정리 골프장은 막을 수 있었던 거잖아요."
맞는 말이다. 어차피 사유재산의 처분권은 소유주에게 있으니 그 땅을 가진 자가 화력발전소 부지로 땅을 팔겠다면 그걸 막을 방법은 없다. 수긍이 가는 말인데 이상하게 목에서 넘어가질 않았다.
내가 그 마을의 주민이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화력발전소가 있는 동네, 기회만 있다면 혹은 능력만 된다면 나는 그곳의 집을 팔고 딴 데로 이사를 가고 싶었을 것 같다. 시가보다 높은 돈을 준다며 땅을 팔고 딴 데로 이사 가라는 걸 거부할 재간이 있을까? 난 자신이 없다. 안 그래도 더 쾌적한 곳에 가서 살고 싶은 참에 그런 유혹을 버틸 재간은 없을 것 같다.
목에 탁 걸리는 느낌, 내가 그 마을 주민이 된다고 상상하니 그건 서운함이었다. 화력발전소 하나만 있을 때 진작에 그 하나도 문제라고 소리 좀 높이지, 그건 화력발전소 인근에 사는 사람들 문제라고 관심 밖이었던 것 아닌가, 그런 서운함이었다. 하나 있는 영동화력발전소도 가동을 중단하라고, 그 발전소로 인한 강릉시민들의 건강영향에 대해 조사하라고, 그건 우리 모두의 건강권에 관한 문제라고 목소리를 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었다.
세상 편하게 살려면 한쪽 말만 들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쪽저쪽 말을 다 듣고나니 속만 시끄러워진다.
내 속이야 어쨌든 영동화력발전소는 오늘도 돌아간다. 안인 화력발전소도 여전히 건설 중이다. 발전소 옆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오늘도 우리는 영동화력발전소가 없었으면 마시지 않아도 될 미세먼지를 13~15%는 더 마시며 살아간다.
사진 : 홍윤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