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처럼 남은 기억

강릉에 갈 자신이 없어요.

by Redsmupet

"강릉에 갈 자신이 없어요."


안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20년을 살다 서울로 떠난 이와 인터뷰를 했다.

그녀는 떠났지만 부모님은 그곳에 계셨다. 그래서 그녀는 언제든 그곳에 갈 수 있었다.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곳, 고향.

그런 고향에 그녀는 이제 갈 자신이 없단다.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겹치잖아요. 부모님도 돌아가셨는데 가 볼 고향도 없어졌다는 게 이렇게까지 마음을 후벼 팔 줄은 몰랐어요. 20년 동안 지내던 고향이 사라지니까 집도 없고 부모님도 안 계시고, 고향 자체가 사라진 거잖아요. 많이 힘들더라고요."


고향은 그녀에게 어린 시절 자체였다.

지금은 발전소 공사가 한창인 곳, 예전에는 논밭이었던 그 땅은 안인리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논 사이사이 흐르는 도랑이 겨울이면 꽁꽁 얼어 신나는 썰매터가 되었다. 눈이 소복이 쌓이는 날이면 한바탕 눈싸움이 벌어졌다.


화력발전소 공사가 시작되기 전, 우리 아이들은 꽁꽁 언 군선강에서 썰매를 탔다.

봄, 가을에는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를 들고 도랑에 갔다. 미끌미끌한 미꾸라지를 한 바구니 가득 잡아오는 것, 그 계절의 놀이였다. 군선강 하구, 염전 바다와 만나는 물가로 나가면 가시고기가 많았다. 고기 잡는 재미에 푹 빠져 종아리에 시커먼 거머리가 붙어있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 여름이면 강가에서 제법 큰 돌멩이들을 주워다가 쫙 펼쳐놓고 햇볕에 달궜단다. 물에서 한참 놀다 추워지면 얼른 그 돌 위에 누워 몸을 덥히고 또 물로 들어가 고기를 잡던 시절, 그 시절로 돌아간 그녀의 목소리가 아이 같았다. 지금은 모래가 많이 유실되어 아이들이 놀기에는 위험한 곳이 되어버린 군선강 하구, 그녀가 어린 시절에는 모래가 많았다고 한다.


안인리를 감싸고 있는 야트막한 동산, 어린 시절 그녀는 아이들과 포대자루를 들고 그곳을 올랐다.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눈이 없는 계절에는 푹신한 풀을 눈 삼아 포대자루 썰매를 타고 놀았다. 동산으로 난 길은 학교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했다. 학교로 가는 길은 수십 가지였지만 놀거리도 많고 먹을거리도 풍부한 산 길이 최고였다. 진달래가 피면 진달래를 가지고 놀고, 가을이면 산에 빽빽하게 들어선 감나무와 밤나무에서 감과 밤을 따오는 게 낙이었다.



그녀가 어린 시절, 안인리에 상수도가 들어오기 전에는 마을에서 삼거리로 나오는 길을 따라 난 도랑에 빨래터가 있었다. 거기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빨래도 하고 물놀이도 했다. 그녀의 말을 듣는데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의 고향에도 빨래터가 있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던 길 중간쯤이었다. 하굣길에 엄마를 보면 신이 나서 물로 뛰어들었었다. 빨래터가 된 도랑에는 작은 다리가 있었다. 국민학교 1학년 때였던가, 담임선생님은 개나리가 활짝 필 무렵 우리를 그 빨래터 다리 밑으로 데려가 야외 수업을 했었다. 나의 추억이 어린 장소도 대부분이 그렇듯 많이 변했다. 하지만 그곳은 여전히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다. 그녀와 나의 추억은 비슷하지만 추억의 공간이 변하는 모습은 많이 달랐다.


감수성이 한창 절정에 달하던 중‧고등학교 시절, 그녀는 강릉 시내에 있는 학교에 다녔다. 그녀의 집이 언덕배기에 있어서 저 멀리 안인진 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안인 약국 앞 정류장에 버스가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녀가 버스를 타는 곳이 바로 다음 정류장이었다. 집에서 망을 보다 안인 약국 앞에 버스가 보이면 삼거리까지 꽤 먼길을 냅따 달려갔다. 정신없는 등굣길, 하지만 하굣길은 달랐다. 느긋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의 눈길은 드넓은 논에 가 있었다.


"거기 논이 엄청 컸잖아요. 봄에는 완전 초록빛으로 뒤덮여서 일렁이고 가을에는 말 그대로 황금물결이었어요. 겨울에는 특히 밤에 보는 논이 압권이었어요. 달빛에 흰 눈이 반짝이는 광경이 얼마나 황홀하던지. 그런 정경들이 제 기억에는 사진처럼 남아있어요."


그녀의 기억은 안인의 과거였을 뿐만 아니라 비교적 최근까지 현재이기도 했다. 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여름


가을


겨울


기억이 사진처럼 남아있어서 그녀는 사라진 마을을 보러 올 자신이 없다고 한다.


그녀의 친구는 아직 고향에 살고 있다. 친구네 동네는 안인진 해수욕장 근처다. 통화를 하는 내내 친구가 무섭다는 말을 연발했단다. 평야처럼 뻥 뚫려있던 곳에 시커먼 구조물들이 들어서고 거대한 건물로 막혀버리니 무섭다는 친구의 말에 그녀는 키보다 높은 펜스가 둘러싸버린 고향의 모습을 떠올다. 그게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고향의 모습이었다. 그때 그녀는 공사 현장에 걸려있는 화력발전소 전개도를 보고서도 믿기지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석탄 발전소를 없애는 추세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엄청난 규모의 화력발전소가 들어선다는 게 현실로 와 닿지 않았어요. 막연하게 그냥 저건 안될 거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상상할 수 없어서 믿을 수 없던 일, 사진으로 공사현장을 보고 나서야 그녀는 친구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고향이 없어질 줄 몰라서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어두지 못했다고 후회하고 있었다. 언제 가도 고향은 그저 거기에 있을 줄 알았단다.

궁금해서 위성사진으로 고향집을 찾아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녀의 집이 보였단다. 하지만 얼마 후 다시 위성사진을 찾아보았을 때 집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고 한다.


지금은 사라진 그녀의 고향집


"고마워요."

사라지기 전 마을 사진, 그녀의 집을 보며 그녀가 고맙다고 말한다.

고맙다는 말 앞에서 괜스레 미안해지는 마음은 뭔지.

고민 없이 전기를 쓰는 나도 어떻게 보면 공범이기 때문일까?



사진 : 홍윤성

인터뷰 :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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