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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봉꾼처럼
새참
막걸리 배달 사고
by
노란 보석
Jul 29. 2016
농촌에서는 정시 식사 이외에 중간에 일하다 쉬면서 먹는 새참이란 것이 있다.
오전에는 10시경에 먹고, 오후에는 3시경에 먹는다.
땡볕에 열심히 일하다 보면 땀도 많이 흘리고 금방 배가 고프다.
허리 또한 끊어질 듯 아프니 잠시 쉬어야 한다.
우리 어릴 적엔 막걸리가 새참의 주 메뉴였다.
시간이 여유 있고 하면 부침개나 술빵 정도가 곁들여진다.
그러나 대부분은 막걸리 한 잔이면 족했다.
막걸리는 면 소재지에 있는 양조장에서 사다 먹거나 집에서 담가 먹었다.
막걸리를 먹으면 갈증도 해소되고 시장끼도 해결하면서 알코올 기운에 힘든 일도 할 수 있었다.
들녘 일터까지 막걸리를 배달해야 하는데 손이 딸리니 나와 형이 심부름을 자주 했다.
노란 알루미늄 큰 주전자에 술을 담으면 무게가 제법 나갔다.
어린 우리가 들기엔 꽤나 무거웠다.
술안주래야 멸치에 고추장, 건새우, 오이, 고추, 그리고 김치가 주인데 그중 두세 가지를 먹었다.
어머니께서 파래김에 참기름, 고추장과 참깨 볶은 것을 찹쌀 풀에 개어 발라 말린 김부각도 있었다.
통상 어머니께서 직접 내 가실 때는 광주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가셨다.
학교가 파한 오후나 방학 때는 주로 형과 내가 들고 갔다.
형은 주전자를 들고 나는 안주를 들고 따라갔다.
점심은 어머니가 동네 아주머니와 광주리에 이고 가셨다.
그 크고 무거운 것을 1킬로도 넘는 거리를 쉬지도 않고 머리에 이고 손으로 잡지도 않고 가셨다.
점심은 집에서 먹을 때도 있는데 일하는 날이 동네 잔칫날이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식사를 했다.
그때는 품앗이라 하여 동네 사람들이 모여 돌아가면서 일했다.
봄에는 모를 내고, 여름에는 논을 매고, 가을에는 추수를 했다.
지금은 기계로 농사를 지으니 그럴 일이 없어 추억 속의 옛이야기가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고 형이 5학년 때쯤으로 기억된다.
그날도 우리 형제는 어머니가 점심 준비로 바쁘시기 때문에 1킬로 이상 떨어진 장나들이라는 논으로 새참 심부름, 아니 배달에 나섰다.
주전자는 제법 무거운 데다가 출렁거리면 막걸리가 넘쳐흘러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주전자를 들고 가는데 날이 더워 땀도 나고 무겁고 힘이 들어서 개울 둑 버드나무 밑에 앉아 잠시 쉬기로 했다.
시냇물 소리는 "졸졸졸" 들리고 산비둘기는 "구구구" 울어댄다.
멀리서 논 써리는 소모는 소리가 들린다.
"이랴~~ 워~~ 이랴"
마침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오지만 그래도 더워서 땀도 나고 목도 마르다.
형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멸치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짭짜름한 것이 제법 맛이 있다.
고추장에 찍어 먹으니 맵고 짜서 목이 더 마르다.
형이 먼저 말했다.
"우리 막걸리 조금씩만 먹어 볼까?"
"혼나지 않을까!?"
"괜찮아! 조금만 마시면 티도 안나! 가면서 흘리는 것만 해도 얼만데!!"
"헝아 그럼 우리 딱 한잔씩만 마시자!"
우린 주전자 뚜껑에 조금씩 따라 번갈아 마셨다.
시원하고 약간 쌉싸름한 것이 제법 입맛에 맞는다.
막걸리는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집에서 막걸리를 담가서 술을 짜내면 술지게미에 당원을 넣어 비벼 먹었었다.
먹는 게 귀했던 시절이라 술지게미라고 그냥 버리지 않았다.
달콤 새콤한 것이 허기도 달래주고 맛도 있었다.
그런데 그것 먹고 술에 취해 헤롱헤롱 했던 기억도 난다.
물론 술도 어른들 몰래 조금씩 마셔 보았던 터라 이미 맛은 익숙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집에서 막걸리 만드는 것이 불법이었다.
먹는 양식도 부족한데 술 담그는데 양식을 축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이유도 있지만 술 많이 먹고 방탕해지는 걸 예방하는 차원도 있었으리라.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세금을 더 거두려고 하는 정책적 목표도 있었지 싶다.
그때는 지금처럼 냉장고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술을 오래 두고 마실 수가 없었다.
또 양조장 술은 물을 많이 타서 집에서 담그는 막걸리보다는 밍밍해서 몰래 밀주를 담가 먹었다.
또 하나 이유는 이십 리 길을 가서 무거운 막걸리를 사 오기엔 교통수단이 좋지 않았다.
아무튼 그래서 집에서 막걸리 담그는 것을 몰래 해야만 했다.
그런데 수시로 세무서에서 술 조사를 나왔다.
요즘 법률 용어로 '영장 없는 가택 수색'이다.
농사철이나 추석 전, 설전, 결혼 같은 큰일이 있을 때면 예고 없이 조사를 나왔다.
한번 걸리면 막대한 벌금을 물어야 하니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리는 부엌 나무 간 속에 땅을 파서 항아리를 묻고 나무로 덮었다.
다른 집은 헛간에다가도 감추고 벼 집 쌓아 논 속에도 감추었다.
누룩은 곰팡이 띄우는 숙성 과정과 건조 과정이 필요한 데 이때는 감추는 게 쉽지 않았다.
누룩이 다 뜬 것은 종이에 겹겹이 싸서 보리 종자 독 밑에도 숨겼다.
그래서 세무서에서 술 조사를 나오면 가는 꼬챙이로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녔다.
한쪽은 감추고 한쪽은 찾아다니고 그야말로 머리싸움에 그런 스릴이 없다.
누룩도 걸리고 술지게미만 있어도 걸렸다.
누룩은 걸리면 압수다.
걸려서 사정사정해 보지만 절대 봐주는 일이 없고 그렇게 냉정할 수가 없다.
마을에 수상한 사람이 들어서면 서로 연락하여 온 동네에 삽시간에 퍼져 나간다.
"술 조사 나왔어!!"
이 한마디에 마을은 은밀한 가운데 바쁘게 움직인다.
대문 걸어 잠그고 논 밭으로 산으로 불이 나게 도망을 간다.
사람이 없는 집은 수색이 불가하니까....
어머니는 급하게 조사관이 들이닥치는 통에 술 주전자를 부엌 문고리에 걸고 열어젖혔단다.
문에 가려 주전자가 보이지 않아 위기를 모면하셨던 일화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큰 술독이 걸릴까 봐 누룩을 자진 신고해서 벌금을 적게 물었다고도 한다.
잔치를 하면 집에서 술을 담갔어도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몇 통 받아 왔다.
술 만든 걸 은폐하기 위함이다.
어떤 집은 소주를 몇 병 사놓고 우린 소주만 마신다고 둘러 댔단다.
동내 뒷동산에는 조그마한 샘이 있다.
그곳에 막걸리 독을 숨겨 두었다.
찬물에 담가 놓으니 빨리 쉬지도 않고 조사에 걸리지도 않아서 일석 이조였다.
이 밖에도 수없이 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한번 조사를 나오면 스무 집 중 두 셋집은 걸리는 게 기본이었다.
혼사 준비로 담가 놓은 술이 걸렸을 때는 양이 많아 난감한 일이나 벌금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샜지만,
다시 새참 내가다가 술 마시던 장면으로 돌아와 보자.
얼마나 먹었는지 속이 보이지 않아 모르지만 주전자 뚜껑으로 두 세잔 씩은 마셨으리라.
그다음부터는 정신이 없다.
한참 꿈나라에서 호랑나비를 쫒고 있는데 누가 뭐라 하는 것 같다.
누가 툭툭 친다.
귀찮게 누구야! 하는 표정으로 잠을 깨니 옆집 아저씨다.
"이놈들!! 새참 내오랬더니 여기서 자고 있냐!!"
아차! 큰일 났다.
이런 황당한 일이 있나.
우리 형제는 막걸리를 마시다 술에 취해 나무 밑에서 곯아떨어진 것이었다.
새참 내올 시간이 한참 지나도 안 오니 아저씨가 직접 가지러 내려오시다 잠들어 있는 우릴 발견하신 거다.
이런 낭패가 있나!
그런데 막걸리가 반 주전자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들고 오면서 좀 흘리고 정신없이 마셨던 거다.
술이 술을 먹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이렇게 해서 우리 형제는 막걸리 배달 사고를 내었고 두고두고 놀림감이 되었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날 목도 마르고 출출한데 시원한 나무 밑 그늘에서 마시는 막걸리 맛이란 지금 생각해도 입맛이 다셔진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서 해 주시던 막걸리와 파전 생각이 난다.
이제는 다시 못 올 흘러간 옛 추억이 되었다.
아 ~ 그리운
내 고향이여!
아름다웠던 젊은 날이여!
일본은 양조에 대한 규제가 없었던 관계로 동네마다 양조장이 있다.
양조장에서 소주와 정종을 빚는다.
소주는 우리의 희석식과 달리 증류식이다.
우리 막걸리처럼 술 빚은 것을 데워 수증기를 발생시키고 냉수로 수증기를 냉각시켜 소주를 만드는 방법이다.
재료도 고구마, 쌀, 옥수수 등 양조장마다 제조법이 서로 다르다.
지인과 함께 양조장에 견학을 간 일이 있는데 아주 옛날 술 빚던 시설까지 뮤지엄처럼 관리하고 있었다.
거기서 소주와 정종을 고유의 브랜드로 포장하여 싸게 판매하고 있었다.
일본은 일 년에 한 번 전국의 양조장에서 출품한 술로 콘테스트를 하고 거기서 입상한 술들은 면세점에서도 비싼 값에 팔고 있다.
일본 사람들이 소주나 정종을 마시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오유 아리'라고 해서 65도~70도 정도로 데워 마시는 방식과 '미주 아리'라고 하여 얼음을 넣어 마시는 방식이 있다.
정종도 따뜻한 것은 65도 정도가 가장 맛있고 찬 것은 4도가 가장 맛이 있단다.
그런데 '미주 아리'는 여름에 마시기 좋은데 많이 마시고 나면 이튿날 머리가 아프다.
'오유 아리'는 향도 있고 화끈하게 빨리 취하고 빨리 깨서 나는 이를 좋아했다.
일본 소주는 우리 소주보다 값이 비싼 편이다. 도수도 35도가 주로 높은 편이다. 간혹 25도짜리도 있다.
이자까야(선술집)에서 마시다가 술이 남으면 병에 표시를 하고 맡겨 놓았다 다음에 와서 마신다.
그래도 나는 우리 소주가 깨끗하고 싸고 맛있어서 좋다.
일본 사람들도 우리 소주를 맛보면 좋다고 인정을 한다.
*새참에 주전자에 술을 담아 논에 내가다가 먹고 취한 건 형님과 사촌 형님이 벌인 일이나 재미를 위해 나와 형님이 한 걸로 구성했다.
*노란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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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기업 시스템 구축 컨설팅을 하고 있음. 한국사진작가협회 사진 작가. 시, 소설, 에세이를 행복의 구도에 맞추어 촬영 하듯 쓰고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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