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에 적응하여 인간이 던져주는 모이나 받아먹으며 편한 대로 산 닭은 날지 못하는 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람에 맞서고 스스로 삶을 개척하여 광야로 나간 새는 솔개가 되었습니다.
바람에 맞서다 보니 바람을 타게 되고 바람이 있어야 수월하게 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으며
바람 부는 높은 하늘에서 날개를 펄럭이지 않고 제자리에 날 수 있는 기술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솔개는 새들 중에서 가장 높은 위치인 지상 수백 미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세상을 한눈에 보고 삽니다.
그러다 보니 눈도 좋아져서 땅에 있는 생쥐나 개구리도 보이고 뭇 새들을 쫒다 보니 그 속도가 백 킬로미터가 넘습니다.
도전적인 삶을 선택한 솔개는 뭇 새들이 무서워하는 하늘의 제왕이 되었습니다.
인간이 던져주는 모이나 받아먹던 닭들은 이제 양계장의 채란 용도로 전락하였습니다. 제가 나은 알을 품어 보지도 못하는 서글픈 신세가 되었습니다. 육계는 좁은 방에 갇혀 한 달 후에는 치킨집으로 가야 하는 아우슈비츠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도전하여 성공한 솔개는 평균 24년을 산다고 합니다. 양계장의 닭들과 너무 대비되지 않습니까?
광야에는 온갖 시련이 있습니다. 추위에 눈도 맞고, 비도 맞고, 태풍도 피해야 합니다.
그런 거친 환경에 굴하지 않고 도전하여 개척한 새는 솔개가 되어 새들의 제왕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삶도 이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내 어릴 때 시골에서 부잣집 왕자처럼 살던 애들은 그 많던 재산 다 털어 먹고 몰락하여 궁핍하게 사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보았습니다.
굳이 정주영 회장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주위에는 개천에서 용 난 사람도 많고 자수성가 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두 떨치고 나가 새로운 삶을 개척한 사람들이지요.
금수저 물고 태어나지 못함을 한탄 말고 내가 은수저라도 만들고 내 자식들에게 은수저라도 만들어 주는 것이 더 보람 있는 일 아닌가요?
그게 말처럼 쉽냐고요?
맞습니다.
세상은 녹녹지 않지요.
도전을 즐기십시오.
때로는 넘어지고 피가 나도 결국은 날게 되고 날면 세상이 보입니다.
남들이 간 길은 안전하고 빠르지만 먹을 것이 별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편한 길로 갈 것인가?
고난의 가시밭길에 도전하여 남들이 먹지 못하던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나만의 세상을 만들 것인가? 선택은 인생의 주인인 당신의 몫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하였지만 다 꿈을 이룬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도전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실패를 딛고 다시 도전하여 성공한 사례도 너무나 많습니다.
에디슨도 전구를 개발하는데 3000번 실패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에디슨도 실패를 딛고 도전이 많았다는 얘기이지요. 그러나 에디슨은 이것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고 전구가 안 되는 이치를 발견하는 과정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인류 문명의 발전은 도전하는 삶을 산 사람들이 이루어 낸 것입니다.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
인류가 땅을 떠나 진정한 축지법을 쓰게 만든 그의 업적을 기억하나요?
1903년 12월 17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키티호크 해안가. 죽음의 언덕이라 불리는 모래언덕 킬 데블에서 인류 최초의 동력 비행기 ‘플라이어 1호’가 날아올랐다. 12초 동안 36m의 비행. 이날 수차례의 시도 끝에 플라이어호는 59초 동안 260m의 비행기록을 세웠다.
<중략>
라이트 형제는 첫 비행 성공 전 이미 킬 데블에서 1000번에 가까운 실험 비행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킬 데블은 강한 바람이 쉬지 않고 불어 비행기가 날아오르기 쉬웠고, 주변이 모래 해변이라 착륙할 때 덜 위험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인류의 첫 비행 10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책 <우리는 어떻게 비행기를 만들었나>의 편역자는 “그들이 성공했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경향신문>
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날겠다고 꿈꾸고 도전했지만 실패한 것을 라이트 형제가 1903년 드디어 동력을 갖춘 조종이 가능한 비행기를 최초로 만든 것입니다. 자전거 가게를 하던 그들이 수없이 많은 연구와 실패, 테스트를 통해 동력으로 조종하여 날 수 있는 비행체를 만듭겁니다. 그 이전에 도전자들이 이루어 놓은 연구 결과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증기 기관차를 개발한 조지 스티븐슨,
1769년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 특허를 등록하고 40년이 더 지나서야 증기 기관차가 상업화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초창기 증기기관은 기관차 엔진으로 사용하기에는 효율이 너무 낮은 까닭에, 조지 스티븐슨이 제대로 된 고효율 기관을 개발할 때까지 쓰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기관차가 상업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철도 위의 수레는 말이 끌고 다니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철도가 깔린 시점과 기관차가 보급된 시점의 차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1814년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된 증기기관차를 개발한 스티븐슨은 집이 가난하여 학교도 다니지 못했습니다. 탄광 노동자로 일하던 그가 32세에 증기기관차를 개발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또한 증기기관차를 개발하고 10년 만에 대부분의 역마차 운영회 사는 도산했다고 합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차를 개발하고 철도를 부설할 때 주민들의 많은 반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도전 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증기기관이 산업혁명을 견인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가 인류 문명사에 끼친 영향은 실로 크다 할 것입니다.
아이폰을 개발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만큼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 간 사람이 있을까요!
미혼모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집에 입양되었습니다. 말썽꾸러기였으나 그의 양부모는 그를 사랑으로 감싸 안았다고 합니다. 명문 리드 대학에 입학한 지 6개월 만에 중퇴하여 온갖 고생을 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잡스는 1976년 '컴퓨터 천재' 스티브 워즈니악과 캘리포니아 로스 알토스에 있는 양부모의 집 창고에서 애플을 창업하여 애플 PC를 내놓아 성공을 맛보지만 30세 때인 1985년 자신이 영입한 CEO 존 스컬리과 이사회에 의해 쫓겨나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너무나 비참한 기분을 느껴 몇 달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며 "나는 공식적으로 실패한 사람이었고 실리콘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라고 2005년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당시 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컴퓨터 그래픽(CG) 영화사 픽사를 설립해서 "토이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등 숱한 히트작으로 결국에는 디즈니와 1 : 2.3의 주식 비율로 합병을 성사시킨 것은 너무도 유명한 일화입니다. 당시 가격으로 74억 불에 달하는 엄청나게 큰 금액입니다.
픽사의 재기를 발판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던 애플로 복귀하여 아이맥에 이어 2001년 아이팟, 2007년 아이폰, 2010년 아이패드를 잇따라 성공시키면서 애플을 세계 최대 IT업체로 성장시켰습니다.
잡스는 이같이 성공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한 뒤 2009년 간이식 수술까지 받았습니다. 그는 치열하고 긴 투병생활 끝에 아쉽게도 2011년 11월 5일 56세의 나이로 영면했습니다.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아이폰의 성공적인 개발로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주도한 그의 도전정신과 업적은 더 얘기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항상 세계 최고를 꿈꾸었던 그의 도전 정신을 기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글을 발명한 세종대왕,
한자가 일상화된 나라에서 새로운 글자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누가 할 수 있을까요?
그것도 가장 독창적이고 배우기 쉽고, 과학적이며 아름다운 글자를 발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대사상에 젖어 있던 최만리 등 조정 대신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젊은 집현전 학사들과 이러한 대 업적을 남겼다는 건 기적 같은 일입니다.
진정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도전정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었을 겁니다.
세종대왕에 대하여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므로 더 이상 언급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입니다.
13척의 배로 300여 척의 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
수많은 모함과 핍박, 열악한 환경에서도 백의종군하여 도저히 숫적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 전세를 역전시키고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라고 하며 열 배가 넘는 130여 척(일설에는 330여 척)의 왜군과의 전쟁에서 물러서지 않았던 장군의 도전정신은 23전 23승이라는 세계 전사에서 전무후무한 최고의 기록을 남겼다.
이순신 장군 또한 너무도 잘 알고 있어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LPGA에 도전하여 명예의 전당에 오른 박세리,
1998년 7월 7일 US Open 최종일 마지막 18번 홀에서 티샷 한 공이 왼쪽 연못으로 떨어져 공이 물속에 반쯤 잠겼다. 지켜보던 갤러리들 사이에서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만 스무 살의 박세리는 모두가 안된다고 생각한 그때 양말을 벗고 맨발로 연못에 들어갔다. 훈련으로 새까맣게 탄 종아리와 달리 하얀 발 부분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박세리는 워터 해저드에 걸쳐진 공을 성공적으로 쳐냈고 결국 연장전으로 갈 수 있었다. 연장 두 번째 홀에서 5.5m 버디 성공으로 태국의 추아시리폰을 물리치고 US Open 최연소 챔피언이 되었다.
박세리는 누구도 감히 생각지 못하던 LPGA에 도전하여 첫해에 메이저 대회 두 개 대회를 제패함으로써 IMF로 실의에 빠져있던 국민들에게는 희망과 용기를 주고 후배들에게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습니다.
은퇴 시까지 LPGA에서 25승(메이저 5승)을 거두고 2007년 6월 골프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박세리 US Open 우승 10년 후부터는 세리 키즈들이 미국 LPGA를 호령하고 있습니다.
이번 2016년 브라질 올림픽은 박세리가 감독을 맡았는데 부상으로 모두가 안될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던 박인비 선수가 완벽한 경기로 금메달을 따내며 세계 유일의 "골든 그랜드 슬램"이라는 대 업적을 이루어냈습니다.
메이저리그에 도전하여 꿈을 이룬 박찬호,
한양대학교 2학년 재학 중 누구도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꿈의 무대인 미국 메이저리그에 도전하여 우뚝 선 박찬호 선수!! 국내 팀으로 가면 이미 성공이 보장되는 위치에 있었지만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낯선 나라에 어린 나이에 도전한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선수로서는 최초로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였습니다. 1994년 LA 다저스에서 데뷔하여 2005년에 메이저 리그 100승을 달성하였고 2010년에는 124승을 거두어 평생의 라이벌 노모 히데오를 제치고 메이저 리그 동양인 최다승 투수에 등극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대한민국 선수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 미국, 일본 세 리그에서 모두 선발승을 거두었으며 메이저 리그 포함 프로야구 경기에서 통산 156승의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도전 정신은 40세를 훨씬 넘긴 나이에 군대 프로그램인 "진짜 사나이"에 두 번이나 도전하여 고생하며 땀 흘리는 데서도 볼 수 있습니다. 벌어 논 돈도 많고, 처갓집은 갑부에 아내도 잘 나가는데.... 무엇이 아쉬워 사서 고생을 하는가!
그의 후배들은 그를 보고 자신감을 얻었고 지금 메이저리그에는 추신수, 강정호, 김현수, 이대호, 박병호, 오승환, 류현진 등 선수들이 도전하여 인정받으며 선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동양인으로 스투 투 가르트의 수석 무용수가 된 강수진,
강수진은 수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나로 금년도 은퇴하였으나 평생 단원이 되었으며, 독일의 무형문화재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또한 2014년 2월부터 대한민국 국립발레단의 7대 단장에 임명되어 일하고 있습니다.
1986년 19살 나이로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당시 동양인 최연소 무용수로 입단한 그는 한국 발레의 산 역사다. 1991년 솔리스트, 1996년 프리마 발레리나로 차곡차곡 이력을 쌓은 그는 1999년 동양인 최초로 무용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 무용수로 뽑혔고, 그 해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도 받았다. 2007년에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50년 역사상 단 4명에게만 주어진 ‘캄머 탠 처린(궁중 무용가)’에 선정됐다. <한국일보>
동양인의 몸매로 세계적인 발레단의 단원이 된다는 것, 거기에서 수석 무용수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해내었습니다.
이제 강수진의 키즈들이 세계 유명 발레단의 단원으로 실력을 인정받으며 커나가고 있습니다. 그녀가 도전하여 꿈을 이뤘기 때문에 나도 할 수 있다는 도전 정신을 후배들에게 심어준 것입니다.
"나는 오늘도 어제의 나를 이기기 위해 싸운다"라는 그녀의 말을 기억하는가?
그녀의 발 사진을 보았는지요?
인간의 발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기형이 된 발가락은 그녀가 얼마나 어려운 환경을 이기고 도전하여 최고의 경지에 올랐는지 보여주는 감동적인 사진이자 발인 것입니다.
그녀의 별명 "강철 나비"가 뜻하는 바를 새삼 생각해 보게 됩니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
시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대기업을 일군 정주영.....
찢어지게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소판 돈을 갖고 도망간 정주영!
평범한 사람이라면 어찌 그 귀한 소판돈을 갖고 튈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에게 그런 무모한 도전정신이 없었다면 오늘의 현대는 없었을 것입니다.
500원짜리 동전 하나와 미포만 모래 해변 사진 한 장 들고 조선소도 없는 상태에서 VLCC(초대형 유조선)를 두척이나 수주한 그의 배짱과 도전정신을 신화처럼, 전설처럼 이야기만 할 것인가요!
나는 그 조선소에서 바로 그 배인 1호선부터 건조하는데 참여하며 10년을 정주영 회장이 어떻게 도전하고 일하는지 보고 배웠습니다.
정주영 회장에 대한 일화는 너무도 많고 유명하여 새삼 여기에 소개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왜 정주영은 되고 우리는 안되는가?
그의 어록 중 가장 유명한
"해봤어?"
이는 다른 말로 "도전해 보았냐"는 말입니다.
왜 여러분들도 다 아는 얘기를 재미없게 늘어놓았냐고요?
그렇습니다.
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지요.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이렇게 도전하여 성공한 사람을 열거한다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인류 문명의 발전은 이렇게 도전한 사람들에 의해 발전해 왔고, 역사는 이들이 도전한 결과와 과정을 기록한 것이니까요.
그렇다고 꼭 그런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자세를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으로 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질 것입니다.
노력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노력은 기본입니다.
그런데 강수진의 발처럼 노력해 보았나요?
세상은 남들은 안된다고 포기한 일에 도전하여 성공한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요.
실패란 포기하는 순간 실패가 되는 것입니다.
한 번에 쉽게 성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남들도 다 할 수 있는 것이거나 성공해서도 먹을 수 있는 과실이 크지 않은 것일 것입니다.
무모한 도전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젊은이들이 끈질기게 도전하기보다 쉽게 포기하고, 남 탓하면서 쉬운 일을 찾아 안주하는 세태가 아쉬워서 강조하는 것입니다.
남 탓을 하는 순간 해결책은 없는 것입니다.
남 때문에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도전해서 성공할 수는 없으니까요.
한 번뿐인 인생을 수동적으로 편하게 닭처럼 살다 갈 것인지
실패의 쓴 맛을 보더라도 도전하여 꿈을 이루어 가는 솔개처럼 살 것인지는
인생의 주인이며 주인공인 당신의 몫입니다.
의미는 다를지 몰라도 "이태원의 솔개" 가사를 아래에 적어 봅니다.
여기서 "나의 솔개여"를 "도전정신이여"로 바꾸어 생각하면서 읊어 보세요.
솔개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가 없나 날으는 솔개처럼 권태 속에 내뱉어진 소음으로 주위는 가득 차고 푸른 하늘 높이 구름 속에 살아와 수많은 질문과 대답 속에 지쳐버린 나의 부리여 스치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어느덧 내게 다가와 종잡을 수 없는 얘기 속에 나도 우리가 됐소 바로 그때 나를 비웃고 날아가 버린 나의 솔개여 수많은 관계와 관계 속에 잃어버린 나의 얼굴아
애드밸룬 같은 미래를 위해 오늘도 의미 없는 하루 준비하고 계획하는 사람 속에서 나도 움직이려나 머리 들어 하늘을 보면 아련한 친구의 모습 수많은 농담과 한숨 속에 멀어져 간 나의 솔개여 수많은 농담과 한숨 속에 멀어져 간 나의 솔개여 멀어져 간 나의 솔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