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

이래도 되는 거야?

by 노란 보석

황태



노란보석

도대체 내 죄명이 무엇인지 알고나 당하자

재판도 받지 못하고 줄줄이 엮여 수용소로 끌려갔다

예수도 고향에선 천대를 받았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죄라면 그리운 고향 찾은 것뿐인데

윤회란 결국은 대를 이어 사는 것일까

먼길 회귀해서 산란은 하지도 못했는데

목적을 위해 형벌은 이미 정해졌으니

재판과 죄명은 필요 없단 말인가


전생에선 밝은 세상을 꿈꾸며 명태로 행복하게 살았다

고향 그리워 찾은 동해 바다에서

영장도 없이 단체로 포획되어 기구한 운명의 시작이라

장례식 대신 냉동이라 죽지 않았다 할 것인가

새 삶을 살아보려 동태로 개명까지 했다


눈부신 하얀 언덕에 고향이 내려다보이는 수용소가 있었다

아가미를 꿰뚫어 숨은 겨우 쉬게 해 주었지만

줄줄이 매달린 동료들과 원통해서 하늘을 보고 웃었다

혹한에 형틀에 매달린 지 석 달인데

치러야 할 죗값이 아직도 남았다더냐

차라리 차가운 얼음 속 감방으로 보내달라

그 정도라면 웃으며 잠들 수도 있으리라

기나긴 겨울밤 맨몸으로 칼바람을 맞는데

긴 밤을 견디려면 별을 하나도 빼먹지 말고 세라고 했다

낮엔 백내장 걸린 눈으로 헉헉대며 햇볕에 몸을 녹였지만

낮은 분침으로 가고 밤은 시침으로 가는 듯했다

가끔은 시원한 솜이불을 덮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깐


동료와 열씩 네모난 감방에 수용될 땐 다 끝났다 웃었지

감칠맛 나는 황금빛 세상을 꿈꾸며 황태로 다시 개명했다

아우슈비츠 같은 대관령 덕장은 정녕 쉼터였단 말인가

이유도 모른 채 방망이로 살과 뼈가 분리되도록 맞았다

이 집 며느리는 전생에 나와 철천지한이라도 맺혔는가

어찌 나를 모진 시집살이 분풀이 대상으로 삼는가

북어라 이름 잘 지어 종갓집에 팔려간 친구가 부러웠다


꿈을 태워서 노가리 푸는 주당의 친구가 되었다는

어린 자식들 소식을 칼바람한테 듣고 허탈해서 웃었다

황당한 내 팔자야 차라리 차디찬 대관령 덕장이 그립다


죽도록 맞으며 TV를 보고 오늘에야 깨달음을 얻었다

이름대로 산다는 어느 성명학자의 주장대로

'이름 함부로 지으면 안 된다'는 것

결국은 이름 때문이었는가

이어진 프로그램에서

어느 요리연구가의 '구수하고 시원한 감칠 난 맛을 위해서'라는 말

진즉에 알았으면 덜 아팠을까


이 한 몸 받쳐 만인이 행복해진다면 의미 있다 할 것인가






오늘 설 차례상에도 빠지지 않고 황태는 올라왔습니다. 절대 빠지면 안 되는 차례 상차림 음식입니다. 겨울 날씨가 춥지 않아서 황태 덕장을 열지 못한다는 뉴스도 있었습니다. 한 철 장사인데 그쪽 일을 하는 분들이 걱정됩니다.

황태는 형태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는, 아마 가장 많은 이름을 가진 바다 고기이지 싶습니다. 이름에 따른 모습을 풍자해서 써 보았습니다만, 중의적 표현으로 억압받던 시절의 억울한 삶을 표현해 보려고도 했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살지 못하고 숨어 지내며 온갖 고난을 받던 사람들이 있었지요. 멀리는 천주교 박해가 그러했고 가깝게는 군사정권 시절이 그러했습니다. 요즘은 세상이 바뀌어 닉네임 뒤에 숨어서 온갖 언어폭력으로 인격을 말살하기도 합니다. 무엇이 민주이고 자유인지 헷갈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다시는 암울했던 그런 세상이 오지 말아야 하겠지만, 역사는 바보 같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면서 반복되고 있기에 걱정도 됩니다.

'구수하고 시원한 감칠 난 맛을 위해서'라는 그럴듯한 수사에 속아서는 안 되겠지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깨어있어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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