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란 보석 Jun 30. 2020

다시는 이런 시간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재 취업

다시는 이런 시간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노란 보석     



  회사로부터 제안을 받자마자 나는 즉각 수락했다. 퇴직한 지 4년이나 지났고 이제는 재취업은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지인의 소개로 갑자기 일자리가 생긴 것이다. 퇴직 후 처음 얼마 동안은 이곳저곳 일자리를 알아보았는데 잘 진행되다가도 마지막에 틀어져서 이제는 포기한 상태였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먹고사는 문제가 걸린 상황이었다면 내 대응도 달라졌을 것이다. 자식들 모두 대학원까지 공부시켜서 결혼시켜 분가했으니 부모로서의 역할은 졸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좋아하는 사진 촬영이라든가 글 쓰는 취미에 몰두해 있어서 나름 즐겁고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던 터였다. 경제적으로도 풍족하지는 않아도 구차하게 살지 않아도 되는 형편이니 남은 인생 즐기며 행복하게 살다 가자는 생각이었다.

     

  면접을 보는 날, 약간은 설레면서도 막연함에 따른 불안감을 안고 KTX에 올랐다. 기차가 광명역을 지나서 차창 밖으로 경치가 펼쳐지며 멀리 작게 보이는 나무며 건물 등이 점점 커지다가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간다. 내가 살아온 인생도 그렇게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가며 과거로 달려간다. 잊히지 않는 생의 한 시점, 한 마디가 생각나고 그때의 희로애락과 아쉬움, 그리움 등 만감이 교차한다. 그렇게 상념에 젖어 있는데 어느새 터널로 접어들며 모든 것이 포맷된 세상으로 변해서 현실 세계를 확인시켜 준다. 다시 터널을 빠져나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현실의 경치와 과거의 추억이 뒤섞이니 마음은 초점을 잃고 찹찹한 기분에 휩싸여 달려간다. 어쩌면 내 인생의 또 새로운 전환점을 향해 나는 달려가고 있는 것이니 어찌 예사롭다 할 것인가.    

 

  내 인생이라 하여 어찌 나 혼자 잘해서 무사히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는가.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회사에서 만났던 수많은 지인이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었기에 가능했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과연 남은 인생은 누구와 함께 어떻게 전개되고 결말 지을지 전혀 알 수 없으나 결코 비관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낙관하지도 않지만, 비관해 보아야 불안감과 걱정만 앞설 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매사 무리하지 않고 전역을 앞둔 병장처럼 몸조심할 일이다. 젊어서는 열정과 패기가 넘쳐서 불도저처럼 살았던 적도 있지만, 이제는 구르는 낙엽도, 떨어지는 빗방울도, 갈대를 흔드는 미풍도 조심하며 매사에 신중할 일이다.      


  기차가 창원역에 도착하니 나를 소개한 전 직장의 지인이 마중을 나왔다. 일할 곳은 함안에 있는 외국 상용차 정비 관련 회사이다. 생소한 면이 없는 건 아니나 시스템을 구축하고 혁신을 추진하는 일은 어떤 업종이건 자신은 있다. 그렇다고 미지의 회사라 사람도, 일도, 지역도 모두 생소한데 어찌 불안감이나 걱정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그동안 살면서 회사를 이직하며 네 군데 근무해 본 경험이 있으니 어떻게 하든 잘 해내리라는 자신감과 마음의 다짐은 있었다.     


  회장님은 회사의 비전과 내가 담당해서 추진해야 할 일을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최고 경영자가 저렇게 열정적으로 회사를 혁신하고 키우려고 한다면 내 능력을 발휘하며 일을 하는데 문제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즉각 수락했다. 통상 이럴 때 근무 조건이나 처우에 관한 협상을 하는 게 중요한 일이나 그건 면접 테이블에 올라오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막상 소개를 받기는 했지만, 자소서 몇 장과 한두 시간의 면접으로 어떤 대우를 해줘야 하는지 제시하기가 난감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나에게 있어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했는데, 그렇다. 나는 이일을 정말 좋아하고 잘할 수 있으니 긴 직장 생활 동안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내 능력을 발휘해서 제대로 된 시스템을 구축하고, 회사를 변화시켜 발전하도록 하는 일에서 얻는 성취감은 내 인생을 지켜준 버팀목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 있는 일을 한 번 더 할 수 있게 된 것이니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는가. 어쩌면 내 인생 마지막이 될 일에서 멋지게 능력을 발휘하여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맛있는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보람된 일이 있겠는가.   

  

  4년 정도의 공백기가 있었으니 그걸 무시할 수 없지만, 생소함이란 환경을 극복하고 서서히 적응도를 높이고 있다. 이제 한 달이 지났으니 회장님을 비롯한 임원진, 직원들의 신뢰가 쌓이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이런 일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해야 하는데 마침 전에 인연이 있던 사람들과 연결되어 신뢰하며 일할 수 있게 된 것도 나에게 아직 인덕이 남아 있구나 싶어 감사할 따름이다.


  중소기업은 내가 일했던 대기업에 비해 체계적으로 일하는 면에서는 부족한 면이 많다는 걸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대기업의 방법은 참고는 될지언정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몸에 맞지 않으면 불편하고 때깔이 나지 않는 법이니까. 상대 입장에서 조심해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될 부분이다. 상대를 폄훼하거나 문제가 많다는 식의 접근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달걀 다루듯 조심하고 칭찬을 곁들이되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라고 슬며시 제안하는 방식이 그래도 반발심을 최소화하는 방법인 것 같다.      


  회사에서 제시하는 연봉은 중소기업이니 대기업에서 받던 연봉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금액인데 나이가 있으니 일의 성과와는 관계없이 적게 부르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내 고집만 피울 일도 아니다. 그래서 연봉이 적은 대신 월, 화, 수, 목 4일만 근무하는 것으로 하자고 역으로 제안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지만, 일만 하다 늙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다행히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서 금, 토, 일, 삼일은 쉬면서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지금 다시 시작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혁신해 나가는 일인데 정말 잘할 수 있고 즐거운 일이다. 회사 출근이 즐거웠다면 이해가 되겠는가?    

  두 번째는 사진 찍는 일이다. 취미로 하는 일이니 전문가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서 ‘한국 사진작가협회 작가’로 인정받았으니 조그만 명함은 내밀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타이틀이 중요한 건 아니고 진정 사진 촬영하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삶에 지치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 카메라를 들고나가면 모든 시름을 잊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 수 있으니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취미이다. 사진은 ‘찍으러 갈 때 설렘이 있어 좋고, 찍을 때 행복하고, 돌아와서 디지털 현상을 하면서 찍을 때의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어 행복하고, 다음에 언제든 꺼내어 볼 수 있으니 좋다’라는 게 내가 사진 촬영이란 취미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풍경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는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시간에,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자세히 보면서, 아름답게 찍어서, 두고두고 볼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한다면 동의하는가?

  세 번째는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일이다. 어디 등단 작가도 못 되고 남들처럼 글 쓰는 재주가 뛰어나지도 않으니 크게 내세울 일도 아니지만, 내 생각과 느낌을 내 방식대로 표현해서 글로 남긴다는 건 의미 있는 일 아닌가? 정말 나는 돈 많은 사람보다도 글 잘 쓰는 사람이 부러웠다. 문재는 모자라도 즐겁게 열심히 하니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별로 팔리지는 않았지만, 수필집도 내고 동료들과 시집도 내면서 글 쓰는 재미를 키워가고 있다. 아직 발표는 안 했지만, 소설도 몇 편 완성했으니 나름의 성과는 있었다고 자평한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다시는 이런 시간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이 기회를 결코 놓치고 싶지 않다. 앞에서도 썼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내 생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면서 내 이름을 걸고 멋지게 해내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다시 한번 다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몽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