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얼마만의 오페라 공연 관람이란 말인가.
3월의 마지막날, 세종문화회관에서 오페라 '마술피리'를 관람했다. 별 기대없이 응모한 이벤트에 당첨되었다는 메시지를 받은 건, 3월 마지막주 월요일이었다. 두 과목의 수행평가를 준비하느라 목요일에는 야근까지 했고, 정신없이 바쁜 시간 속에서 금요일에 공연이 있다는 것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금요일 오전, 핸드폰에서 업무 관련한 메시지를 찾다가 오페라 '마술피리' 당첨 문자를 우연히 다시 보게 되었다.
"축 당첨". 오페라 '마술피리' 초대 3월 31일(금) 19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R석.
금요일인데, 퇴근해서 7시 30분까지 광화문을 갈 수 있을까. 서울까지 운전은 절대 못하겠고, 집에 차를 두고 광역버스를 타러 가면 시간이 넘 늦을 것 같은데... 하필이면 오늘 금요일이라고 옷도 너무 편한 복장으로 출근했는데 그냥 가지 말까. 하지만, 공짜표라고 가볍게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무려 12만원짜리 R석 티켓이었다.
고민 끝에 우리집보다는 서울가는 거리가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지인의 아파트에 주차를 하고, 근처에 있는 서울행 광역버스를 타면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퇴근길이 막힐까봐 7교시가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정시 퇴근을 했다. 저녁은 차 안에서 운전하면서 빵과 음료로 대충 때웠다. 서둘러 주차를 하고, 광역버스 주차장으로 뛰어가서 출발하려는 버스를 겨우 잡아타니 시간은 벌써 6시. 시청 근처에서 내린 후 지하철로 다시 한 번 환승하여 광화문까지 가야 하는 다소 복잡하고 긴 여정이 남아 있었다.
문제는 도로 사정이었다. 차가 안 막혀야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는데, 고속도로는 버스 전용차선이라 나름 수월했지만, 서울 시내의 도로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더욱이 불금이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 아닌가. 한남대교를 지나 남산터널을 통과하니 7시가 넘었다. 30분 만에 세종문화회관까지 갈 수 있으려나. 마음은 조급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경보를 하듯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 역사로 들어갔다. 광화문역에 내리니 벌써 7시 30분이 지났다. 마음이 급하니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입구를 찾는 것도 헤맸다.
대극장에는 나처럼 시간을 놓친 몇몇 사람들이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허겁지겁 달려 들어 온 나에게 직원이 티켓 수령 여부를 먼저 확인했다. 이벤트창구에서 티켓을 받고, 6분 뒤 입장가능하다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기다렸다.
어두컴컴한 객석을 직원이 비춰주는 플래시 불빛을 따라 슬그머니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좌석이 가운데 B,C구역이 아닌, 왼쪽 A구역이었지만, R석이라 그런지 무대와의 거리도 괜찮고 그런대로 잘 보였다. 공연 앞부분을 조금 놓쳤지만, 150분이나 되는 공연에서 6분 놓친거야 별 상관이 없었다.
오페라 '마술피리' 는 모차르트가 작곡한 당시에 엄청난 흥행을 거둔 오페라이다. 오페라이지만 노래로만 전개되지 않고, 연극처럼 대사가 있는 독일어 노래극인 징슈필(Singspiel)로 만들어져서 어렵지 않고, 뮤지컬을 보듯 재미있게 몰입할 수 있었다. 특히 소프라노 조수미가 부른 그 유명한 '밤의 여왕 아리아'를 비롯하여 가곡과 종교음악, 민요,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어우러져서 다채로운 분위기의 노래들을 즐길 수 있어 지루하지 않았다.
왕자 '타미노'가 밤의 여왕의 딸 '파미나'를 구출하는 모험을 떠나고, 둘이 사랑을 이루는 내용의 줄거리는 다소 뻔하고 논리적 인과관계가 다소 엉성하지만, 다채로운 음악이 스토리의 빈틈을 메워주었다. 무대 연출 또한 뮤지컬 공연처럼 그래픽이 결합된 다양한 영상이 결합되어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았다. 그에 비해 의상은 어딘지 모르게 촌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드라마에서도 주연보다 조연이 극의 재미를 더하듯이, 왕자 '타미노' 옆의 새잡이 '파파게노'가 유쾌한 웃음을 더해주어 두 시간 반이 넘는 긴 공연에 간간히 웃음을 더해 주었다. 파파게노 역을 맡은 성악가는 노래도 훌륭했지만, 연기 또한 아주 익살맞고 능청스럽게 잘했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 사진을 급히 찍고 나오니 시간은 벌써 10시 20분. 광역 버스 막차 시간을 놓칠세라 서둘러 지하철을 탔다. 다행히 막차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고, 버스 정류장에서 금방 광역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긴 여정 끝에 집에 들어오니 밤 12시가 넘었다. 일 주일 간의 피로와 금요일 저녁 서울 외출까지 빡센 하루였지만, 간만의 문화생활에 뿌듯했다. 3월 내내 학교와 집만 오가며 일에 쫓겨 정신 없이 지내고, 주말에는 시체처럼 쓰러져 있었는데, 이제서야 삶이 조금은 풍성해진 것 같았다.
바쁘다고 생각하면, 놓치고 사는 것이 점점 많아진다. 빠듯한 일상 속에서 틈틈이 즐길 거리를 만들고, 삶을 누리면서 여유있게 살아야겠다. 전쟁 같이 휘몰아친 3월을 오페라 '마술피리'를 보며 마무리 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