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숨구멍
혜진은 은혜의 대학교 선배였다. 혜진은 은혜와 달리 미술교육과였지만, 교지편집국에서 기자 활동을 같이 하면서 친해진 한 기수 선배였다. 혜진이 자취를 하던 은혜에게 밥도 잘 사줬고, 자신의 자취방에 데려가서 음식을 만들어주며 살뜰하게 챙겨줬었다. 편집실에서 기사 원고를 쓰다가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갈 때면, 혜진이 교문 앞에 있는 노점상에서 어묵과 떡볶이를 사주기도 했다. 가끔은 학교 앞에 있는 교회에 들어가 함께 기도하며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잠재우기도 했다. 무엇이든 꿈꾸고 이룰 수 있는 스무 살이었지만 은혜는 늘 불안했다. 사범대 학생 대부분 그러하듯이 교사 외에 다른 길을 생각하지 못했고, 임용고시 티오는 너무 적었고 경쟁률은 지나치게 높았다.
임용고시에 합격한 선배가 찾아와서 공부 노하우를 알려주고 간 날, 그 선배를 보며 은혜는 마냥 부러워했다. 선생님이 된 그 선배의 인생은 탄탄대로 일거라고 생각했다. 그토록 원하던 교사가 되고 나서야 은혜는 비로소 알았다. 교사가 되었다고 해서 마냥 꽃길을 걷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동료들이나 관리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억울하고 상처받는 일은 부지기수였고, 미성숙한 아이들을 상대하는 일은 수많은 인내가 필요했다. 그런 아이들 뒤에는 안하무인에 이기적인 부모가 있었고, 그들은 갑절의 스트레스를 더해 주었다. 그들을 상대할 때마다 도를 닦아야 했고, 그럴 때마다 교사들의 몸속에는 영롱한 사리가 도 닦은 스님들보다 훨씬 더 많이 쌓이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교사라는 이유로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하루하루를 참아내며 사는 것이 얼마나 정신을 갉아 먹히는 것인지 그때는 미처 몰랐었다.
혜진의 남편인 진욱은 은혜와 같은 국어교육과 선배였다. 혜진은 진욱과 데이트를 할 때에도 가끔 은혜를 데리고 나가 같이 밥도 먹고 보드게임도 하며 자주 어울렸다. 혜진과 진욱은 둘 다 고향인 부산에서 임용고시를 본 후 부산에서 교사로 지내고 있었다.
“선배, 나 지금 통영에 왔어요.”
“통영에 왔으면서 나한테 연락도 안 했어? 모레가 금요일이니까 바로 올라가지 말고 부산 들렀다 가. 알았지?”
짧은 통화 끝에 은혜는 금요일 오후에 부산으로 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실 혜진 선배한테 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은혜는 우울할 때면, 사람들을 되도록 안 만났다. 괜히 사람들한테 걱정을 끼치는 것도 내키지 않았고, 우울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전파하게 될까 봐 기분이 중간 이상으로 올라올 때 약속을 잡았다. 지금은 정신의학과 의사마저 은혜의 치료를 대학병원으로 넘길 만큼 우울증이 최대로 심각한 상태여서 혼자 조용히 통영에서 바람을 쐬다 올라가려던 참이었다. 사건이 벌어진 후 혜진과의 몇 번의 통화에서 은혜는 겪고 있는 일들을 차마 말하지 못했었다.
다음 날은 삼덕항으로 가 배를 타고 욕지도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왔다. 마을버스로 해안도로 일주를 하고, 천왕산에서 모노레일을 타기도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등어회를 먹어 보기도 했다. 간혹 닥친 현실이 되새겨지기도 했지만, 잠시나마 아무 생각 없이 바다를 보고 무언가를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금요일이 되어 은혜는 숙소에서 간단하게 조식을 먹고 남망산 조각공원을 부지런히 산책했다. 혜진 집에 선물로 가져갈 통영에서 유명하다는 꿀방 두 박스를 사서 다시 숙소로 돌아가 체크아웃을 했다. 통영터미널에서 부산 서부터미널까지는 1시간 20분이 걸렸다. 혜진은 금요일 오후 수업이 없다며 조퇴를 하고, 터미널로 은혜를 마중 나왔다. 통화는 자주 했지만, 2년 전 서울에서 교지편집국 동문 모임을 하고 오랜만의 재회였다. 듬성듬성 보이는 흰머리 말고는 혜진의 모습은 2년 전과 그대로였다.
“왜 이렇게 얼굴이 상했어? 살이 더 빠진 것 같네. 밥도 못 먹고 다녔나 봐.”
은혜의 푸석한 얼굴을 여기저기를 살피며 혜진이 말했다.
“아니에요.”
슈트케이스를 끌며 은혜는 고개를 아래로 숙인 채 대답했다.
“일단 차에 타. 집으로 가서 짐도 내려놓고 좀 쉬었다가 진욱 선배 오면 같이 저녁 먹으러 가자.”
터미널에서 혜진의 집까지는 십 분도 안 되는 거리였다. 집에 들어서자 거실 한편에 있는 흰색 디지털 피아노가 은혜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선배, 이거 선배가 치는 거예요? 언제부터 쳤어요?”
“내가 말 안 했나? 일 년쯤 됐어. 그냥 취미 삼아 혼자 동영상 보고 배우는데, 은근히 재밌어.”
“우와,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워요? 멋있어요. 선배!”
“멋있긴. 다 할 수 있어. 너도 한 번 쳐 볼래?”
“저는 중1 때까지 체르니 30번 초반쯤 하다가 관뒀어요. 그 이후로 한 번도 쳐 본 적이 없어요. 지금은 악보 보는 것도 다 잊었어요.”
혜진은 찬송가 책을 펼치더니 ‘내 영혼이 은총 입어’를 연주를 하면서 찬양까지 불렀다.
“이 찬송 알지? 한 번 불러 봐.”
은혜는 혜진의 뒤편에서 찬송가 가사를 보며 반주에 맞춰 찬양을 불렀다.
“좋아하는 찬양 있으면 말해 봐.”
“우와, 말하면 다 칠 수 있는 거예요? 저 요즘 가사가 너무 와닿아서 자주 듣는 찬양이 있긴 한데요.”
“뭔데?”
“‘내 평생에 가는 길’이요.”
혜진은 자신도 좋아하는 곡이라며 악보를 찾더니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둘은 같이 찬양을 불렀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언제쯤 이 풍파가 지나가고 삶의 평안을 찾을 수 있을지 은혜는 막막하고 두려웠다. 그래도 찬양을 부르는 이 순간만큼은 마음이 조금은 평안해졌다. 숨통이 조금 트이는 것 같았다.
진욱이 퇴근한 후 셋은 집 근처의 식당에서 저녁으로 코다리 조림을 먹었다. 은혜가 진욱 선배를 다시 본 지는 5년쯤 되었다. 지금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민준이 중학생이었을 때, 방학을 맞이하여 민준을 데리고 서울로 놀러 온 혜진네 가족과 함께 아쿠아리움과 국립중앙박물관을 관람한 뒤로 처음이었다. 20대에 처음 보았던 혈기 있던 청년 진욱은 이제 중후한 중년이 되어 있었다. 이들이 보는 은혜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배들과 집회 현장을 취재하고 밤늦게까지 편집실에서 기사를 쓰던 스무 살의 눈빛이 빛나던 대학생이 마흔이 되었다. 셋은 오랜만에 만났어도 함께 했던 추억을 수없이 끄집어내느라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셋은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기며 그간의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때, 카페 테이블에 놓아둔 은혜의 휴대폰에 권 변호사의 이름이 뜨며 진동이 울렸다.
“네, 변호사님.”
은혜는 급하게 휴대폰을 들고 카페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