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예술 특화 강연>에서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의 저자이자 미술 교육인, 아트컬렉터, 이소영 작가를 만났다. 전에 이소영 작가가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여 아트컬렉터로서 150점에 달하는 작품을 구매한 과정과 미술 컬렉션을 소개한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그녀가 전하는 비주류 화가의 삶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미술에 대한 관심 많으시죠? 그러니까 토요일 오후에 미술 강연을 들으러 오신 거겠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좋아하고 미술을 알고 싶어서 이렇게 강연도 찾아다니고 하는데요. 그런데도 미술은 참 어렵다고들 해요. 작가의 유파가 무엇인지, 그 특징이나 관련된 작가가 누구인지 알아야 할 것도 많죠.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미적 취향을 파악하는 것이에요. 무언가와 친해지려면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미술과 친해지고 싶다면 미술 관련 콘텐츠를 많이 소비하고, 미술을 많이 보세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미적 취향도 찾으시길 바랍니다."
이소영 작가가 대중에게 미술을 대중에게 미술을 쉽게 전달하는 아트메신저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다더니, 강연 시작부터 나의 호기심을 확 끌었다.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을 집필할 때는 비주류였던 화가가 어느새 핫하게 떠오르기도 했고, 너무 모르는 화가의 이야기만 넣기에는 독자의 외면도 고려해야 한다는 출판사의 충고에 따라 비주류라 하기에는 유명한 앙리 루소를 넣었다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앙리 루소는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다. 원래 직업은 세관원으로 주말에만 틈틈이 그림을 그려서 '일요 화가'로도 알려져 있다. 이십 대 초반에 세관원이 된 루소는 20년 넘게 일하다 사십 대 후반이 되어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화가가 된다. 40대 후반에 안정적인 직장을 관두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그의 용기와 결단이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소의 그림은 제대로 그림을 배우지 못한 아마추어의 작품이라고 조롱받았다. 미숙한 원근법, 여백 없이 화폭을 꽉 채운 대상, 엉성한 비례, 부자연스러움 등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해외여행 경험이 전혀 없는 루소가 그린 정글은 남의 여행 이야기를 듣고 상상해서 그린 것이었기에 세밀하지 못하고 실제의 형태와 달리 어색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루소는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비난을 신경 쓰지 않고 묵묵하게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나갔다. 피카소가 루소의 그림을 알아보고, 미술평론가이자 비평가인 빌헬름 우데가 루소의 작품 높이 평가하면서 비로소 그의 작품 세계가 뒤늦게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당대의 시인, 평론가 등 예술계의 여러 사람들과 교류할 수도 있었다. 그는 사망하기 불과 3년 전에야 유명해졌고, 죽어서 더 큰 주목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화가 고흐도 그렇고, 살아서 영예를 얻는 예술가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다른 사람의 평가나 인정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을 꾸준하게 해 나가는 뚝심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루소의 작품. 왼쪽 '나, 초상, 풍경' 오른쪽 'The Dream'>
'아르 브뤼트(ART Brut)는 프랑스어로 가공되지 않은 순수 그대로의 예술이라는 의미이다.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않는 화가들의 작품 활동을 이르는 말로, 영어로는 '아웃사이더 아트'라고 부른다. 미국의 화가이자 흑인 노예인 빌 트레일러(Bill Traylor 1853~1949)는 대표적인 아르 브뤼트 예술가이다.
그는 미국 앨라배마주의 목화 농장에서 노예로 일하는 부모님으로부터 흑인 노예 신분으로 태어났다. 남북 전쟁으로 노예 해방이 되었지만, 이후에도 먹고 살 방도가 없어 계속 노예로 살 수밖에 없었다. 농장 주인이 죽자 그는 도시로 이주하게 되고, 일용직 근로자로 전전하며 생활고를 겪다 결국 노숙자가 되었다.
그는 80이 넘은 나이에 버려진 골판지와 연필을 주워 거리의 쓰레기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평생을 지냈던 농장의 모습과 사람들, 여러 동물들의 모습을 자신만의 그림으로 표현했다. 우연히 찰스 섀넌이 그의 그림을 보게 되어 그의 작품을 구매하고, 작품 활동을 지원하였다. 1940년에는 섀넌의 제안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으나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트레일러는 거리를 전전하다 95세에 세상을 떠난다. 이후 섀넌은 그의 전시회를 다시 열고, 그제야 빌 트레일러는 인정받게 된다. 2018년에는 미국 스미스 소니언 미술관에서 빌 트레일러의 회고전이 열리기도 했다.
<빌 트레일러의 모습과 그의 작품들>
빌 트레일러의 그림은 단순하면서 아이처럼 순수한 느낌이 든다. 미술 교육을 받기는커녕 글을 읽고 쓰지도 못한 트레일러가 여든이 넘은 나이에 창작을 시작하여 2,000여 점의 그림을 남겼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놀라웠다. 무엇을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는 말이 새삼 다가온다. 시간과 돈, 여건이 주어지지 않아서 하지 못한다는 말도 부질없는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도.
이소영 작가는 미술 작품을 스스로 감상하는 방법을 이렇게 제시한다.
1) 작품 속에 보이는 것을 모두 말해 보기
2) 작가가 작품에 담은 생각이나 감정을 파악하기
3) 작가가 작품을 만들 때 어떤 감정이었을지 생각하기
4) 주변의 다른 작품과 비교해 보기
5) 나는 이 작품이 좋은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하기
작가는 예술의 매력은 '다양성'에 있다고 말한다. '미'의 반대는 '무', 아무것도 못 느끼는 것이다. '아름다움' 속에는 심오함도 있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그러니 미술 작품을 충분히 보며 자신의 감정을 느껴보라고 권한다. 어느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미술관에서 한 작품을 감상하며 머무르는 시간이 10초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조만간 이소영 작가가 소개한 작품 감상 방법을 참고하며, 깊이 있게 미술 작품을 만나러 미술관 산책을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