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련 공항에서의 잊지 못할 배웅
공항은 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떠나고 돌아오는 곳이다. 코로나19 전까지만 해도 활발하게 사람들의 만남과 이동이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공간이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가끔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공항을 종종 이용하게 된다. 공항은 나에겐 선물보다 더 큰 설렘을 주는 곳이다.
하지만 대부분 공항에 가거나 도착할 때 나는 늘 혼자였다. 주로 혼자 여행을 가기 때문이었고, 돌아올 때도 공항리무진을 타고 집으로 오기에 가족들이 공항에 마중나오는 일은 없었다. 여행이 아닌, 중국에 근무하러 떠날 때에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혼자 백 팩을 메고 두 개의 슈트 케이스를 끌고, 노트북 가방을 들고 공항에 도착했다. 새벽에 집을 나섰는데, 집 근처에 있는 공항 리무진을 타는 버스 정류장까지 엄마가 커다란 슈트 케이스 하나를 같이 끌어주고 내가 탄 버스가 떠나는 것을 끝까지 바라보고 들어가셨다.
여행이나 이동을 위해 혼자 공항에 오가는 것은 나에겐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얼마 전 제주도를 다녀오면서 오랜만에 공항을 가게 되었다. 제각각의 이유로 공항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문득 공항에서의 만남과 이별, 누군가를 맞이하고 배웅하는 장면 속에는 얼마나 많은 인생이 농축되어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몇 년 전 공항에서 처음으로 배웅을 경험했던 때가 떠올랐다.
공항에서 누군가가 나를 배웅해 준 적은 딱 한 번 있다. 중국 대련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나를 대련 공항까지 배웅해 준 J 선생님. 근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짜는 사람들마다 각기 달랐다. 나는 중국 생활을 마무리 하기 전에 한 달 가량 혼자 중국 여행을 다녀왔기에 2월 중순이 되어서야 귀국 날짜를 잡았었다. 귀국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벌써 한국으로 돌아갔고, 남아있는 사람들도 방학이나 설 연휴를 한국에서 보내기 위해 이미 많이 떠난 상황이었다.
귀국 전 중국 남부 지역을 여행하고 있는데, J 선생님한테 위챗으로 연락이 왔다.
- 샘, 귀국 날짜 언제라고 했죠?
- 2월 15일이요.
- 샘, 우리 남편 차로 공항까지 배웅할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요.
- 아니에요. 띠디(우버 택시 같은 것) 부르거나 택시 타고 가면 돼요.
- 아니야. 샘! 여행 잘 하고, 대련 돌아오면 연락해요.
- 네. 대련에서 봬요.
한 달 동안의 여행 중에 추운 날씨 속에서도 무리해서 여행을 다녀서인지 입술도 찢어지고 다리는 퉁퉁 부었다. 시안에 도착해서 다니던 중 결국엔 감기몸살에 걸렸다. 남은 여행 날짜를 생각해서 가지고 있는 약을 아껴가면서 먹었다. 도저히 몸 상태가 안 좋고, 온 몸이 너무 아파서 다음 이동 장소이자 마지막 여행지인 핑야오와 베이징은 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베이징에서 대련으로 돌아가기 위해 예약한 기차표를 취소하고, 시안에서 대련까지 가는 비행기를 다시 끊었다.
원래 여행 일정에서 5일 정도 대련에 일찍 도착했기에 이틀 뒤에 귀국하는 선생님들의 얼굴을 보고 인사를 할 수 있었다. 내가 조금 일찍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K 선생님이 나와 몇몇 친한 샘들을 집에 초대했다. K 선생님은 담백한 스파게티와 신선한 샐러드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맛있게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쉼없이 얘기를 나누어도 끝이 없었다. 결국엔 저녁으로 라면까지 끓여 먹고, 과자와 과일까지 야무지게 먹으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왔다.
'아, 시안에서 바로 돌아오길 잘했구나. 베이징까지 다녀왔으면 샘들과 이렇게 얼굴보고 인사도 못 나눌 뻔 했잖아.'
다음 날, J 선생님과 만나서 만두가 아주 맛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여행은 잘 다녀왔어요? 많이 피곤했나 봐요. 입술도 터지고, 얼굴이 반쪽이 됐네."
"찬 바람 맞으면서 많이 걸었더니 몸이 탈이 났나 봐요."
"아이고,,, 고생했네요..."
"그래도 여행은 늘 좋아요."
"샘, 귀국하는 날 갑자기 우리 남편이 일이 생겨서 남편 차로는 못 가고, 대신 우리 교회 집사님 차로 공항까지 같이 가요."
"아니에요. 샘, 그렇게까지 안하셔도 돼요. 저 이제 혼자 띠디도 잘 불러요. 안 되면 택시 타고 가도 돼요."
"아니야, 샘. 이미 집사님하고 다 얘기 해 놨어요. 그날 아침에 샘 집으로 갈게요."
"정말 괜찮은데요..."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래요."
"정말 고맙습니다."
중국 생활을 마무리하고 귀국하는 날, J 선생님은 교회 집사님 차로 우리 집 앞에 오셨다. 2월 중순. 바닷가 도시인 대련의 바람은 꽤 쌀쌀했다. 처음 왔을 때처럼 슈트 케이스 2개와 백팩, 노트북 가방을 차에 실었다. 한 시간 정도 차로 이동하여 대련 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짐만 내리면 그냥 가시라고 했지만, 굳이 주차를 하고 두 분은 공항 안으로 같이 들어오셨다. 짐을 부치고나서 인사를 하려는데, J 선생님은 공항 직원에게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기 전 입구까지만이라도 함께 들어가서 배웅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공항 직원은 입고 있는 제복만큼이나 딱딱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뿌씽!(안돼요!)"
J 선생님과 입국장 한 켠에서 인사를 하려는데 눈물이 맺히는 걸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선생님, 여기까지 배웅해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요. 샘 덕분에 대련에서 잘 지냈어요."
J 선생님은 나를 꼭 안아주며 인사를 했다.
"샘, 조심해서 가요. 샘이 떠나서 너무 아쉽지만, 내가 여름방학에 애들이랑 한국 들어가니까 그때 또 만나요. 왜이리 눈물이 나노..."
"정말 고마워요, 샘! 가끔 위챗으로 연락해요. 건강하시구요."
나 역시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포옹을 나누었다. 그만 들어가시라고 해도 내 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한참을 서서 배웅해 준 J 선생님과의 대련 공항에서의 마지막 장면은 너무나 따뜻하게 가슴에 남아 있다. J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내 귀국길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아마 대련에서의 즐거웠던 추억마저 쓸쓸하게 퇴색되어졌을 것이다.
대련에서의 마지막을 따뜻한 기억으로 채워주신 J 선생님의 배려에 늘 감사한 마음이다. J 선생님은 지금 한국에 복귀해서 특유의 유머와 밝은 기운으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시고 계시다. J 선생님의 앞날과 가족의 건강을 위해 잊지 않고 늘 기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