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반가운 마중을 받아 본 적이 있나요

인천공항에서의 따뜻한 마중

by 은향

코로나19가 막 시작되었을 무렵인 2020년 1월말, 나는 미리 계획한 대만 여행을 혼자 떠났다. 대만 여행 관련 카페나 블로그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을 가야할 지 취소해야 할 지 모르겠다며 여행을 준비한 사람들의 고민과 논의가 끊이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가 이렇게 장기화 될 지도 몰랐고, 이렇게까지 심각할 거란 생각은 못했다. 나는 몇 달전부터 계획한 여행을 취소하고 싶지 않아서 큰 고민을 하지 않고 준비한대로 대만으로 떠났다.


다행히 대만은 코로나 방역의 가장 모범적인 국가였다. 대만 일주를 했는데, 숙소나 박물관 등 가는 곳마다 손소독과 발열체크, 방역과 관리가 아주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중 인상 깊었던 것은 가오슝에서 지나다가 우연히 시립 영화관이 있어 들어갔는데, 청소하는 직원이 알코올로 계단 난간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닦고 있었다. 이토록 방역과 소독을 확실히 하고 있으니 여행을 하는데 더욱 안심이 되었다. 대만은 도시마다 야시장이 아주 활기차고, 먹거리와 볼거리가 많은데, 야시장 같은 사람이 많은 곳은 되도록 피해서 다녔다.


이번 대만 여행은 타이베이에서 타이중, 르위에탄, 아리산, 타이난, 가오슝, 헝춘, 컨딩, 타이둥, 화롄, 이란, 짜오시를 거쳐 다시 타이베이까지 반시계 방향으로 일주를 했다. 주로 멋진 자연 풍경을 느끼며 산책하고, 자전거를 타거나 박물관이나 공원 등을 다녔다. 안전하고 자유롭게 대만의 곳곳을 마음껏 누리고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여행을 마무리 할 즈음에 가끔 여행을 함께 하기도 하는 편안한 친구인 DK에게 연락이 왔다.

- 샘, 한국에 언제 도착한다고 했죠?

- 2월 16일이요.

- 몇 시에 인천 도착해요?

- 예정은 15시 50분이요. 왜요?

- 그럼, 그때 인천 공항에서 만나요.

- 공항엔 왜요?

- 그냥요.

- 일부러 안 나와도 돼요.

- 나 원래 그냥 혼자서 공항에도 자주 가잖아요. 코로나 때문에 여행도 못갔는데, 공항이라도 가서 여행 기분 느끼려구요.


DK는 나보다 더 혼자 여행도 잘 다니고, 일상에서도 혼자서 곳곳을 잘 다니곤 했다. 특히 한 시간 거리의 인천 공항에 리무진 버스를 타고 가서 혼자 커피도 마시고, 영화를 보고 돌아온다고 전에도 말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


"커피 마시고, 영화를 볼 거면 동네에서 해도 되는데, 뭐하러 굳이 공항까지 가요?"

"공항버스를 타고 공항에 가면 기분이 달라요. 동네 커피와 동네 영화관하고는 뭔가 느낌이 다르거든요."

"왕복 2시간을 버스까지 타고 오가며 힘들지 않아요?"

"어차피 경기도인 우리집에서 서울에 가도 왕복 2시간은 기본이에요. 공항에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설레고 좋아서요."


대만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DK는 정말로 인천 공항에 미리 와서 나를 기다렸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핸드폰 전원을 켜자마자 DK가 보낸 메시지가 와 있었다.

"지금 공항에 기자들이 쫙 깔렸네요. 입국장에 들어와서 기자들 보고 넘 놀라지 마요."

"기자들이 왜 있어요?"

"물어보니까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 수상하고 오늘 인천공항에 도착한다네요."

"아, 그렇군요."


짐을 찾고 화장실을 다녀오니 나와 같은 비행기로 도착한 사람들은 벌써 다 나가고 없었다. 여러 사람 무리 틈에 섞여서 나갔어야 했는데, 나는 오랜 여행 끝에 혼자 히말라야라도 다녀온 사람마냥 꾀죄죄한 모습으로 입국장을 들어섰다. 자동문이 열리자마자 수많은 기자들이 포토라인에서 커다란 렌즈를 들이대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인 채 빠른 걸음으로 고지를 넘었다.


나를 먼저 발견하고 DK가 손을 흔들며 웃고 있었다. DK가 나와주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샘, 여기요."

"어휴, 기자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는 줄 몰랐네요. 나 찍는 것도 아닌데, 왜이리 민망한지..."

"나도 공항 도착해서 깜짝 놀랐어요. 여행은 어땠어요?"

"우리 일단 잠깐 앉아요."


길다란 공항 의자에 앉자마자 나는 가방을 열고 DK에게 줄 선물을 꺼냈다. 타이베이의 누가 크래커 맛집에서 전날 저녁에 일부러 예약까지해서 사 온 누가 크래커를 내밀었다. 사실 대만에서의 마지막날 저녁을 근사하게 먹으려 했는데, 크래커 예약 시간에 맞춰 가느라 저녁도 대충 때워가면서 사 온 내 마음과 정성이 담긴 누가 크래커였다.

"한 번 먹어봐요."

"우와, 이거 정말 부드럽고 맛있는데요."

"맛있다고 하니 다행이에요. 나머지는 집에 가서 먹어요."

"이거 나 주는 거에요? 너무 고마워요."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저녁을 포기하고 누가 크래커를 사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무로 만든 차 스푼과 버터칼, 예쁜 동물이 프린팅 된 천으로 만든 동전 지갑을 내밀었다.

"이건 차 스푼이랑 버터칼인데요. 무슨 향이 나는 좋은 나무로 만든 거래요. 나무 스푼이 써 보니까 좋더라구요. 동전 지갑은 카드나 작은 물건들 보관하거나 갖고 다니면 좋을 것 같아서 샀어요."

"어머나~ 지갑 너무 예뻐요. 내가 좋아하는 하늘색과 남색 천으로 되어 있어 더 좋아요."

"샘이 좋아하는 색인 줄 알고 샀어요."

"고마워요. 나무 스푼도 잘 쓸게요."


사실 별 거 아닌 작은 선물이지만, 배낭 여행자가 선물을 사 오는 건 엄청난 정성과 마음이 아니면 할 수 없다. 선물의 부피가 크거나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아야 사 올 수 있고, 받는 사람에게 실용적이거나 맛이 있거나 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선물 고르기도 힘들고, 여간 고민이 되는 게 아니다. 물론 선물을 사오라고 강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매번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줄 작은 무엇이라도 사오고 싶어 반나절이나 하루 여행을 포기한 적도 많다.

다행히 DK는 동전 지갑을 USB를 보관용으로 매일 가지고 다니며 잘 쓰고 있다. 나무 스푼도 차를 마실 때 유용하게 쓰고 있다고 했다. 내가 준 선물을 잘 사용하거나 좋아하면, 그 선물에 담긴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더 기쁘다.


공항 의자에 앉아 짧게 얘기를 나누고 이동하려고 했는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꽤 지났다. 아직도 봉준호 감독은 도착하지 않아서 기자들은 한 시간도 넘게 포토라인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슬슬 배가 고파진 내가 먼저 물었다.

"여기 조금 더 앉아서 얘기하면서 봉준호 감독 나오는 거 볼까요, 아님 어디 들어가서 뭐 먹을까요?"

"그냥 우리 어디 들어가서 밥 먹어요. 샘도 배고프지요?"

"그래요. 봉준호 감독은 어차피 기자들한테 다 가려서 여기에 있어 봤자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거에요. 집에 가서 TV로 보는게 오히려 훨씬 잘 볼 수 있어요."


우리는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근처에 있는 한식당으로 들어가서 식사를 했다. 조금 있으니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마 봉준호 감독이 도착한 것 같았다. 이미 뜨거운 찌개에 수저를 바삐 움직이며 맛있게 한창 식사에 빠져 있었기에 우리는 움직일 수 없었다. 세계적인 감독을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 같은 아쉬운 마음이 살짝 들어서 내가 물었다.

"조금만 더 앉아있다 밥 먹을 걸 그랬나요?"

"아니에요. 집에 가서 TV 보면 되죠."


대수롭지 않는 표정으로 DK는 다시 찌개를 먹었다. 내 식사 속도에 맞춰 30분 넘게 천천히 저녁을 먹으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DK가 핸드폰을 보았다.


"우와, 봉준호 감독이 공항에 도착한 기사가 벌써 떴네요."

"정말요? 엄청 빠르네요."


식사를 마치고 휴대폰으로 아주 크고 선명하게 잘 찍힌 봉준호 감독의 사진을 함께 보며 기사를 훑어 보았다. 봉 감독의 얼굴을 직접 보지못한 아쉬움은 이제 별로 없었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마저 나누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며칠 뒤 다시 만나서 회포를 풀기로 약속 날짜를 잡고, 각자의 집으로 가는 공항리무진 버스를 타러 향했다.


DK 덕분에 공항에서 처음으로 마중을 경험했다. 이날의 마중을 떠올리면 수많은 기자들과 봉준호 감독이 내 기억에 함께 담겨 있다. 나를 맞이하러 나온 건 아니지만, 생각지도 않은 수많은 기자들의 마중과 비록 실제로 만난 건 아니지만,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에 봉준호 감독과 같은 시간에 공항에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공항에서의 추억이 되었다. 무엇보다 나에게 마중의 경험을 느끼게 해 준 DK의 따뜻한 마음이 오래도록 가슴 한 켠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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