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실과 도시락 배달

순수했던 학창시절에 대한 추억 하나

by 은향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는 학교 '생활실'이라 불리는 곳에서 지냈다. 나는 지방의 작은 읍에 위치한 여고에 다녔었다. 당시 우리 학교에서는 '생활실'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3학년 학생들 중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을 선발하기도 하고, 일부는 희망을 받아서 특별 지도를 했다. 10시 야자가 끝나고 생활실 아이들은 심화 야자를 자율적으로 했고, 주말에도 토요일 수업이 끝난 후 자습을 하고 저녁에야 집에 돌아가고 일요일 오후에는 생활실에 복귀를 해야 했다. 즉, 고3 대부분의 삶이 생활실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당시에 우리학교는 기숙사가 따로 없었기에 생활실은 3학년 교실이 있는 뒷건물 1층에 교실 3개를 터서 마련했다. 개인 침대도 없이 예전 군대 내무반처럼(지금은 군대에 개인침대가 있다고 들었다.) 쭉 연결된 1,2 층의 공간에 양팔을 벌린 너비만큼의 공간이 각각 주어졌다. 옷장도 없고, 사물함만 1인당 2개 정도 배당되었다. 샤워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 씻을 때마다 물탱크가 있는 1층의 보일러실 비슷한 작은 공간에서 머리를 감고 불편하게 씻어야 했다.



지금처럼 학교에서 급식이 이루어지지도 않았기에 하루 세 끼 식사를 해결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집이 학교 근처인 친구들은 아침마다 집에 가서 밥을 먹고, 도시락을 챙겨올 수 있었다. 집이 먼 친구들은 학교 앞 분식집에 한 달씩 식비를 내고 아침을 먹고 점심 도시락을 받아오기도 했다. 우리 집은 시내가 아니라 버스를 타야 했고, 그나마 배차 간격도 40분에 한 대 였기에 집에 오가는 건 어려웠다. 분식집의 밥은 맛도 없으면서 하루 세끼를 다 먹으면 한 달 식비가 꽤 부담되는 가격이었다.


생활실에 있는 동안 내 식사를 책임져 준 건, 남동생과 같은 통학 버스를 타고 다니는 동네 친구나 후배 등 여러 사람의 손길 덕분이었다. 도시락 배달 과정은 이러했다. 중학교에 다니는 남동생이 내 하루 음식이 든 도시락 가방을 들고 버스에 탄다. 우리 학교 앞 정류장에 도착할 즈음에 그 버스에 타고 있는 내 친구나 후배 등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내 도시락 가방을 건넨다. 나는 아침마다 버스 도착 시간에 맞추어 학교 앞 정류장에 나가서 버스를 기다린다. 정확히는 내 도시락을 기다린다. 그날 그날 동생에게 배턴터치를 받아 내 도시락 가방을 갖고 내리는 사람에게서 도시락을 받아 학교로 온다.


학교에서 세 끼를 다 먹은 후 저녁 시간마다 빈 도시락 가방을 가지고 엄마의 지인이 운영하는 문구점으로 간다. 오래 전부터 엄마와 알던 사이이기에 문구점을 운영하는 아줌마와 아저씨와는 나 역시 안면이 있는 분들이다.


"안녕하세요. 도시락 놓고 갈게요."

"그래."


남동생이 다니는 학교 건너편에 있는 문구점의 한 귀퉁이에 내가 도시락을 갖다 놓으면, 동생은 집에 갈 때마다 문구점에 들어 내 도시락을 챙겨간다. 그리고 다시 아침이 되면, 내 도시락을 챙겨 버스에 타고, 우리학교에 다니는 동창이나 후배들에게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해서 내릴 때 건네달라고 전달한다. 이런 시스템(?)으로 내 동생과 도시락을 갖고 내려서 건네 준 동문들의 손길 덕분에 고3 시절, 1년 동안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중학생인 동생은 일찍 끝났을텐데 내가 저녁먹고, 문구점에 빈 도시락을 갖다 놓을 때까지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기다렸을까. 새삼 고마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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