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느닷없이 닥쳐 온 코로나19로 우리의 삶이 모든 면에서 참 많이 변화하고 달라졌다. 특히 학교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유례없이 세 번에 걸쳐 개학이 연기되었고, 원격 수업이 학교 안에 불시착했다. 컴퓨터나 기계를 능숙하게 다루는 교사도 있지만, 나처럼 그쪽으로는 영 꽝인 교사들은 그 변화에 대응하는 게 만만치 않았다.
갑작스럽게 시작한 원격수업을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영상을 찍다가 말이 꼬이거나 실수를 하면 다시 찍기를 반복하다보니 45분짜리 영상을 촬영하는데 3~4시간도 넘게 걸렸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촬영하다 틀려도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그 부분부터 찍으면 될 것을, 한 번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찍고야 마는 이상한 고집까지 갖추어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었다. 영상을 계속 다시 찍을 수 밖에 없을만큼 너무 맘에 들지 않아서 여러 차례 다시 찍는 나를 두고 주변에서는 완벽주의자라는 허울을 씌워 주었다. 스스로 헛점 투성이인 것을 잘 아는 나이기에 영상 제작을 위해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던 것인데...
사실 촬영보다 더 큰 문제는 찍은 영상을 편집하는 일이었다. 주변에 초보자도 쉽게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수월하게 편집할 수 있는 앱이나 프로그램을 추천받았다. 그 중에 태블릿에서 그나마 쉽게 할 수 있는 앱을 다운받고 자비를 들여(적은 금액이지만) 프리미엄 버전을 다운받았다. 찍은 영상 파일을 넣고, 실수한 부분 잘라내고, 영상 내용에 해당하는 학습지나 PPT 화면을 띄우고, 필요한 부분에는 적당한 배경음악도 깔았다.
간단한 앱을 활용하여 메인 영상 앞뒤에 아이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화려한 인트로와 마무리 영상도 별도로 만들었다. 추가 영상을 위해서는 내용관련 이미지와 짧은 멘트까지 준비해야 했다. 이렇게 1차시 분량의 수업을 위한 모든 작업을 하는데 꼬박 3~4일은 족히 걸렸다.
컴퓨터나 기계에 능숙한 교사와 나처럼 그쪽으로는 똥손인 교사들이 일을 처리하는 데는 많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답답함과 상대적인 자괴감은 때로는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기도 했다. '남들은 뚝딱뚝딱 퀄리티 높은 영상도 잘 만드는데, 나는 고작 이거 만드는데 도대체 며칠을 낑낑거린 거야...' 때론 울고 싶기도 했다. '아, 애들이 학교 와서 수업하는 때가 정말 좋았구나.' 코로나 상황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동안 20년 차 교사로서 많은 경험과 수업 연구를 바탕으로 동료들에게 도움을 주는 나였는데, 이제는 원격수업에 탁월한 젊은 교사들에게 도움받는 상황이 되었다. 나름대로 갖고 있던 자부심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기계를 다루지 못해 쩔쩔매는 초라한 내 모습을 확인할 때마다 하염없이 작아졌다.
이번 코로나를 통해 알게 된 것이 교사 집단에는 탁월한 인재가 꽤 많다는 것과 집단지성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에도 인재가 많았다. 원격수업을 지원하기 위해 해당 부서에서는 그쪽으로 역량있는 선생님들을 강사로 세워 영상 제작 및 편집 방법, 원격수업 시 사용하기 좋은 수업 도구 활용 방법 등을 주제로 연수를 실시했다. 원래 학교에서 하는 연수를 교사들은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연수이다보니 호응도 높았다.
학교에서 나는 '수업 친구'라는 이름으로 동료들과 수업과 학교 생활을 나누는 모임(전문적 학습공동체)의 리더를 몇 년째 맡고 있다. 수업 친구 샘들과 정기적 모임을 통해 각자의 원격 수업 경험을 나누고, 좋은 정보와 꿀팁을 주고 받는 시간들도 아주 의미있고 큰 도움이 되었다. 동료의 수업 사례를 통해 "와! 이런 것도 있네요."하며 몰랐던 것을 알게 된 희열, 내가 가진 팁을 수줍게 공유했는데, "어머, 이런 건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라며 관심갖고 눈을 반짝이는 동료에게 알려주며, 자신감이 생기도 오히려 더 큰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수업 친구에 관해서는 별도의 글을 계획하고 있다.)
학교 밖에서도 교사들의 다양한 모임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졌다. 발빠르게 앞서나가는 능력자들이 각종 연수를 통해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구글 활용 방법, 다양한 플랫폼 활용 팁, 수업도구별 특성과 활용법 등 꼭 필요한 좋은 연수가 넘쳐 났다. 원래 나는 연수를 꽤 많이 듣는 축에 속하는데 작년에는 특히 퇴근 후나 주말에도 많은 시간을 연수로 채웠던 것 같다.
연수나 모임을 통해 배울 때는 '아, 저렇게 하면 되는구나.' 바로 이해가 된 것 같은데, 막상 혼자서 다시 해 보려면 잘 안 되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능숙한 주변 선생님들을 찾았다.
"박 샘, 오늘 언제 시간 돼요? 내가 분명히 음성 녹음 파일을 태블릿에 넣어놨는데요. 그게 왜 영상편집하는 앱에서는 안 열릴까요? 지금 한 시간 째 이것저것 해 보고 있는데, 도저히 안 돼네요..."
"저 오늘 6교시 공강이라 시간 괜찮아요. 그때 오시겠어요?"
"네~ 번번히 너무 고마워요!"
영상을 찍고 편집을 할 때마다 들어가는 엄청난 에너지와 노력에 비해 최종완성물이 때로는 아쉽기도 하고, 매번 경제성 없이 비효율적으로 영상을 만드는 나 자신에 대해 속상하기도 했다. 그래도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기꺼이 도와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음에 감사했다.
나와 같은 학년의 국어 수업을 맡은 교사는 나를 포함해서 3명이다. 우리는 일 주일에 두 세번씩 수업을 위한 협의를 했다. 회의때마다 적어도 한 시간도 넘게 진행되었다. 20년 차인 나와 신규 국어 박 샘, 8년차 국어 안 샘 우리는 원격수업을 준비하는데 감사하게도 서로 상호보완 점이 딱 맞아 떨어졌다.
나는 수업을 프로젝트 활동을 기획하고 학습지와 자료를 잘 만들었다. 신규인 박 샘은 아이패드에 직접 그림을 그려 각 수업별 주제와 핵심을 담은 오티 영상을 잘 만들고, 편집 능력이 뛰어났다. 안 샘은 각 수업에 활용할 보조 자료를 잘 찾고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우리는 원격과 등교 수업에 따라 활동 내용을 조절하고, 원격 수업에서도 학생들이 지루하지 않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늘 모색했다. '꿈을 찾는 독서' 프로젝트 수업을 준비하며 우리 셋은 직접 성우처럼 연기를 하며 소설을 녹음하기도 하고, 각 프로젝트를 안내하는 오티 영상에는 펭수와 곰돌이 푸우, 심슨 캐릭터를 활용하여 흥미를 이끌어내었다.
나: 다음 주부터 국어는 문법 파트 시작이네요. 아무래도 중학교 1학년이고 문법을 많이 어려워하니까 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자료를 활용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안샘: 9품사 재미있게 외울 수 있게 엘사가 노래부르는 애니매이션 있거든요. 그 자료를 앞에 넣으면 좋을 것 같아요.
박샘: 펭수 다시 등장시켜서 품사 단원에 대한 간단한 안내 영상을 만들까 봐요.
나: 좋아요. 내가 만든 학습지 한 번 보고, 추가할 내용이나 수정할 거 있으면 말해 줘요.
안샘: 네 학습지 봤는데 괜찮은 것 같아요. 당분 간 계속 원격이니까 학습지 배부는 라이브 워크시트를 활용해서 제가 준비할게요.
자주 모여 매번 긴 시간 회의를 하고 수업 준비를 하느라 늘 시간에 쫒기고, 퇴근해서도 밤늦게까지 영상 촬영하는 등 원격 수업 준비는 엄청난 피로감을 주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뿌듯한 마음이 더 컸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교과 협의와 공동 수업연구를 할 수 있었다. 보다 좋은 수업을 위해 동교과 교사들끼리 자주 만나 회의하고 연구하는 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의미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서로 배우고 도와주며 끊임없이 연구한 교사들의 집단지성이 있었기에 원격수업이 빠르게 자리잡고 무사히 진행될 수 있었다고 본다.
학기를 마무리할 때마다 나는 자체적으로 평가지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수업 평가지를 받곤 한다. 작년 1학기 첫 원격수업을 마치며 학생들이 쓴 수업 평가지를 읽으며 마음이 뭉클해졌다.
- 선생님들이 소설 연기하면서 녹음해 주셔서 너무 재미있었어요. 다음에 또 해 주세요.
- 펭수 너무 귀여워요. 펭수가 안내하는 수업 내용 재미있었어요.'
- 매시간 다양한 활동이 있는 국어수업은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어요.'
- 국어 수업 재미있게 준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학생들이 다 아는구나. 우리가 얼마나 많은 정성과 노력을 들여 수업을 준비하는지를...'
매번 긴 회의를 하고, 자료를 준비하며 밤늦게까지 영상을 만들고 주말도 없이 수업 준비로 고생했던 모든 노고를 위로받는 것 같았다.
'근데 어쩌지, 아이들이 이렇게 말해주니, 기대치가 높아져서 2학기에는 지금보다 더 퀄리티 높게 만들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