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엄마 손 잡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여 수십 년째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 근데 왜 이제서야 세례를 받게 되었는가하면, 그 이유가 좀 허망하다. 사실 워낙 오래전부터 교회를 다녔기에 당연히 세례를 받은 줄 알고 있었다. 기독교에서는 세례받았다고 세례명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세례를 받았는지에 대해 특별히 짚어볼 일이 없어 세례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교회를 다녔다.
몇 달 전, 일 년 넘게 교회에서 하는 양육 프로그램 3단계를 끝내자 셀리더 K 집사님이 물었다.
"우리 교회 양육 과정도 다 마치셨는데, 내년에는 집사 직분 받으셔야죠. 근데 세례는 받으셨지요?"
세례라... 그러고보니 세례를 받았던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다녔으니까 받았다고 생각하고 교회 다녔었는데... 갑자기 물어보시니 잘 모르겠네요."
집에 돌아와 엄마께 내가 어릴 적에 유아세례를 받았는지 물었다.
"종교를 선택하는 중요한 결정은 스스로 해야 하는 거야. 너희들 인생이니 각자 커서 알아서 하라고 안 했지."
엥? 정말로 지금까지 세례를 안 받은 거였다고? 엄마는 뭐 이렇게까지 선택권을 존중해 줄 필요가 있었나, 살짝 원망 아닌 원망이 들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우리 엄마는 대학이나 학과와 같은 진로, 취업, 결혼 등 인생의 중대사에 대한 결정을 우리가 스스로 하게 해 주셨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하여, 교회 다닌지 수십 년 만에 문답과 학습을 거쳐 드디어 지난 달에 세례를 받았다. 하필이면 세례식을 하는 저녁 예배 때, 특별 새벽기도회 완주자 선물 추첨이 있어 많은 교인들이 예배당을 채우고 있었다.
세례식이 시작되고, 목사님이 세례자들은 단상에 올라오라고 하셨다. 저녁이고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별 상관없겠지 싶어서 화장도 안 한 민낯에 옷도 대충입고 갔는데, 좀 이쁘게 차려입고 올 걸 그랬나. 쑥스럽고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교회에 아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혹시 같이 양육 받은 집사님들이 볼까봐 괜히 신경이 쓰였다. 저녁 예배가 온라인으로도 동시에 송출된다는 생각도 그때까지 미처 못했다. 단상 위에서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빨리 세례식이 끝나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드디어 세례식이 끝나고 기념사진 촬영 시간. 단체 사진만 찍고 끝나면 좋았을텐데, 문답자, 학습자, 세례자 각각 순서대로 가족이나 지인들과 사진 찍는 시간이 별도로 주어졌다. 문답 교육자들이 꽃다발을 받으며 가족들과 같이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순간 걱정이 되었다. 뒤늦게 받는 세례인지라 나는 아무한테도 연락하지 않고 혼자 참석했는데, 다른 세례자들이 꽃다발 받으며 사진 찍을 때 나는 혼자서 얼마나 민망할... 졸업식 때 축하해 주는 가족이 아무도 없어 혼자 고개를 숙이고 신발로 애꿎은 땅만 파고 있는 아이의 모습처럼 참으로 뻘쭘한 상황을 어찌 견뎌야하나. 나이가 들었더도 이런 게 의식이 되고 신경쓰인다.
문답과 학습자들의 촬영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옆에 다른 세례자들이 꽃다발 들고 가족들과 웃으며 기념 사진을 찍는 것을 애써 쳐다보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듯 서 있었다. 이 시간이 빨리 가기를 바라며. 사실 일 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인데 왜 그리 길게 느껴졌는지...
그 순간, 꽃다발을 든 누군가의 손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어머나! 우리 셀리더 K 집사님이 환하게 웃으며 꽃다발을 건네주셨다.
"세례 받은 거 정말 축하드려요!"
단상에서 애써 티 안내며 어색하게 서 있는 나를 구해준 셀리더 집사님을 보자 감격스러울만큼 기뻤다.
"어머! 집사님, 일부러 연락도 안 드렸는데, 꽃다발까지 사오시고... 이렇게 안 오셔도 되는데..."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지만, 내 얼굴은 속마음을 숨길 수 없을만큼 환하게 밝아졌다. 뒤늦게 꽃다발을 들고 졸업식장에 도착한 엄마를 본 아이처럼.
"당연히 내가 와서 축하해 줘야죠. 오늘 세례식에 참석하는지 담당 사역자한테 확인까지 하고 왔어요."
단상 위에서 활짝 웃으며 집사님과 다정하게 기념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다음 날, 양육을 같이 받은 집사님들과의 단톡방에 동영상과 사진이 올라왔다. 어느 집사님이 내가 세례받는 동영상과 단체사진을 친절하게 찍어서 올린 거였다. 조용하던 단톡방이 갑자기 왁자지껄해졌다.
- 어머, 세례 받으셨네요. 축하해요!!
- 미리 알려주지 그랬어요. 꽃다발도 준비 못해서 인사도 못했어요.
-어머나~ 축하합니다. 세례 받으시는 줄 진짜 몰랐네요.
많은 집사님들의 축하에 감사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실로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축하를 받는 게 쑥스러우면서도 감사했다.
세례를 받고나니, 마땅히 해야 할 무언가를 뒤늦게 끝낸 것 같아서 개운하기도 하고, 신앙 생활을 더 바르게 해 나가야 할 것 같은 책임감도 느껴진다. 예수님의 발뒤꿈치도 따라가기 힘들지만, 예수님의 향기를 품어 주변에 따뜻한 사랑을 전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고 싶다.
*제가 보름 간의 장기 출장으로 당분간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못하게 되었어요. 제 글을 기다리는 사람도 얼마 없는데, 이 말씀을 드리는 게 좀 우스워서 쓸까말까 살짝 고민이 되었답니다. 출장 잘 다녀와서 다시 글로 소식 올리겠습니다. 소수이지만, 제 글을 읽어주시고 라이킷을 해 주시는 분들께 이번 기회에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건강하시고, 늘 평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