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마음속에는 언니가 있다

일본어 잘하는 예쁜 언니

by KokoA

사실 글쓰기가 본업이 아닌 터라 일주일에 하나 연재하는 것도 꽤 벅차다. 그런데 글을 더 쓰기로 했다. 글쓰기가 요가만큼이나 나를 치유해 주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쓸까 하다 일본어에 대한 연재를 시작하기로 했다. 나는 일본어를 20년 가까이하고 있고 일본에서 8년을 살았다. 전공자는 아니지만 일본어에 대해 쓸 자격은 충분하다 생각한다. 제목은 나를 사랑하게 되는 일본어이다. 연재에는 굳이 이 내용을 프롤로그로 넣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안 넣으려니 아쉬워 따로 쓴다. 땡스투 같은 글이다. 내가 어떻게 일본어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밝히고 싶다. 굳이 계기까지 밝히는 이유는 내게는 자랑하고 싶은 언니가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잘 모르거나 왜곡된 사실. 여자는 여자를 좋아한다. 여자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언니가 있다. 나의 언니는 BoA였다. 언니가 활동하던 시절은 지금처럼 한국문화의 위상이 높지 않았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기로 시작된 한일 양국 간 대중문화 교류 확대 정책이 시작되었다. 당시 한국문화의 위상은 지금 만큼이 아니었다. 많은 대중매체들이 일본문화를 따라 했었다. 아라시 같은 일본 아이돌이 인기였고 일본 드라마가 텔레비전에 방영되었다. 주변에서 일본 아이돌을 좋아하는 친구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한국 가수가 외국에 나가면 듣보잡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다. 고달픈 시절 고작 열몇 살밖에 되지 않았던 언니는 한국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마친 후 일본으로 건너갔다. 걱정이 무색하게 얼마 안돼 긴 생머리 휘날리며 오리콘 차트를 정복했다. 시부야의 유명 건물에 얼굴을 걸었다. 9시 뉴스에 나왔다. 언니는 예쁘기도 했지만 유능했다. 본업인 노래와 춤은 물론 일본어까지 유창했다. 언니는 여자가 좋아하는 여자의 정석이었다. 나도 일본어 잘하는 예쁜 언니처럼 되고 싶었다.


좋아하는 마음은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혼자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언니를 좋아하는 방식은 요즘말로 '덕질'이었던 것 같다. 부쩍 는 일본어만큼 언니를 따라 하고 싶은 마음도 커져 갔다. 아 물론 노래와 춤도 따라 했지만 재능이 허락하지 않았고 그나마 언니를 똑같이 따라 할 수 있는 건 일본어였다.


호기롭게 일본어를 시작했다. 얼핏 본 일본어는 쉬워 보였다. 얕봤던 것이다. 일본어를 조금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들은 공감할 텐데 일본어는 웃으면서 시작했다가 울면서 끝난다. 왜냐. 어순이 같아 접근하기 쉽다. 그리고 그들의 고유 문자인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도 각각 50개 정도라 금방 외울 수 있다. 그러나 진짜 일본어는 한자에서 시작된다. 2000자 가까이 되는 상용한자라 불리는 기본 한자를 외워야 한다. 소리만으로 읽는 한국의 한자와 달리 일본은 소리로 읽는 음과 뜻으로 읽는 훈을 쓴다. 두 개를 각각 쓰기도 하고 두 개를 결합해서 쓰기도 한다. 여기서 일본어 포기자와 마스터가 갈린다. 모든 역사는 사랑에서 비롯되지 않던가. 언니를 동경하는 마음은 한자를 극복하게 했다. 그렇게 한자의 산을 넘어 나는 언니만큼 일본어를 하게 되었다.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을 넘어 나도 언니처럼 일본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표현으로는 사랑과 동경이 요즘 표현으로는 덕질이 나를 일본어 마스터로 만들었다.


겁쟁이었던 나는 언니에 대한 사랑과 동경으로 모험을 했다. 일본행 티켓을 끊고 떠났다. 그렇게 20대의 절반 이상을 일본에서 살았다. 타국에서 어렵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즐겁고 행복했던 일이 더 많았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흘러나오던 언니의 노래 '메리크리'는 내 자부심이었다. 언니 덕분에 내 20대는 누구보다 특별했다. 그리고 일본에 다녀온 후 간호사가 되었다. 일본에서 보낸 20대 덕분에 일본어 잘하는 간호사라는 소소한 수식어도 붙었다. 그래서인지 매체에서 덕질의 어두운 단면만 나오는 것이 참 아쉽다. 나처럼 성장형 덕질도 있다.


누군가, 무언가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마음은 용기를 준다. 그 용기는 작게도 크게도 삶을 바꾼다. 그러니 순수하게 망설임 없이 힘껏 사랑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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