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로마에서 살레르노까지, 하루의 길

순례라고 부르기엔 조금 느슨한 희년의 여행기

by 느루숨

2025년 10월 21일~ 11월 6일까지의 기록


2025년 10월 28일 화요일 맑음


로마를 떠나는 아침


로마를 떠나는 아침이었다.


숙소를 나서는 순간, 며칠 동안 정들었던 골목의 냄새가 문 밖까지 따라왔다. 돌 위에서 달구어진 햇볕의 온기, 에스프레소가 스며든 공기, 그리고 어딘가에서 피워 올리는 미사의 향냄새. 로마는 언제나 그런 도시였다.


고대와 신성함이 아무렇지 않게 뒤섞여 있는 곳.


우리가 로마에 도착한 것은 10월 23일이었다. 짧은 닷새 사이에 우리는 숨 가쁜 순례의 여정을 이어 왔다. 2천 년 동안 이어져 온 가톨릭의 중심에서 단 며칠 안에 그 유산을 모두 이해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계획했던 일정은 대부분 이루어졌다.


성 베드로 대성전을 비롯하여 로마의 네 대성전에서 희년의 성문을 통과했다. 평생 마음속에 품어 두었던 버킷리스트 하나를 조용히 내려놓은 셈이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기억에 남는 것은 '성문을 통과했다'는 사실 그 자체만이 아니었다. 성밖의 성 바오로 대성전에서 느꼈던 까닭 모를 울림, 그리고 세 분수 수도원의 작은 성당 안에서 차분하게 밀려오던 고요한 기도의 시간. 그 순간들이 오히려 더 깊은 곳에 남아 있었다. 순례란 일정표의 칸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어느 순간 마음이 조용히 멈추는 경험이라는 것을 그곳에서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침 7시 30분, 우리는 남쪽으로 향했다. 로마의 도로는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차는 고대 로마의 길인 아피아 가도를 따라 천천히 도시를 벗어났다.


잠시 들른 곳은 아피아 가도 인근의 맥도널드였다. 얼핏 보면 평범한 패스트푸드점이지만 건물 지하에는 2천 년 전의 돌길이 그대로 남아 있다. 실내의 투명 유리 아래로 로마 시대의 포장돌이 조용히 누워 있고, 그 위로 커피를 마시는 현대인들이 오간다.



01아피아가도길_맥도날드01.jpg 아피아가도에 있는 McDonald's Roma Appia Loc. Frattocchie
01아피아가도맥도널드01-다음에서-변환-webp.jpeg McDonald's Roma Appia Loc. Frattocchie 실내 <출처: https://www.thearchaeologist.org/>


이른 시간이라 지하 공간까지 내려가 보지는 못했지만, 잠시 그 유리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이 로마라는 도시의 본질인지도 모른다고. 2천 년을 그냥 밟고 서 있는 곳.

아쉽게도 이른 시간이라 지하 공간은 내려가 보지 못했다.



01아피아가도길_맥도날드.jpg 'McDonald's Roma Appia Loc. Frattocchie' 실내 유리바닥으로 보이는 고대 로마 도로 아피아가도


잠시 커피를 마시며 다음 여정을 생각했다. 오늘 하루는 순례자의 걸음에서 잠시 벗어나 관광객의 시선으로 이탈리아 남부를 만나는 날이었다.


폼페이의 유적을 보고, 베수비오 화산의 흔적을 떠올리고, 지중해를 따라 이어지는 아말피 해안의 풍경을 지나 살레르노까지 이동할 계획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 또한 하나의 버킷리스트였다.


순례의 여정 속에 잠시 끼어든 또 하나의 여행.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 로마를 뒤로했다.






멈춰 버린 도시, 폼페이


나폴리를 지나 곧장 폼페이로 향했다.


당초에는 나폴리에 잠시 들러 볼 생각도 있었지만, 주차난과 심한 교통 체증을 고려해 계획을 바꾸었다. 여행에서는 종종 이런 선택이 더 현명한 경우가 있다.


차는 남쪽으로 계속 달렸고, 오전 11시 10분쯤 폼페이에 도착했다.


폼페이는 역사 시간에 한 번쯤 들어 보았던 이름이다. 서기 79년, 나폴리 인근의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도시 전체가 화산재에 매몰되었다. 그러나 그 참혹한 재앙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고대 로마 도시의 모습이 거의 그대로 보존되었다.


입구에서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했다. 얄팍하게 알고 있던 역사적 지식이 조금은 더 또렷해질 것 같았다.



02폼페이11.jpg 폼페이 고고학 공원 입구 <출처: https://pompeiitravel.com/?
02폼페이06.jpg 오디오 가이드 1인 € 9.00


유적지는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도시의 중심에는 포럼(Forum)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주변으로 거리와 건물들이 질서 있게 배치되어 있었다. 무너진 기둥 사이로 걸으며 당시 이곳이 얼마나 번성했던 도시였는지 조금씩 상상하게 된다.


규모가 큰 개인 저택, 화려한 공중목욕탕, 그리고 벽에 남아 있는 프레스코화. 특히 춤추는 파우누스 동상이 있는 저택은 당시 귀족들의 생활 수준을 짐작하게 했다. 유적 사이를 걸으며 고대 로마 도시의 구조와 생활 방식을 하나씩 이해하게 되었다.



02폼페이01.jpg 재판소이자 상업거래소였던 '바실리카(Basilica)'의 내부 모습
02폼페이02.jpg 폼페이의 정치, 경제, 종교의 중심지였던 '포룸(광장)'에서 북쪽을 바라본 베수비오화산
02폼페이04.jpg 폼페이 시민들의 사교장였던 포룸 목욕탕 내부의 '탈의실(Apodyterium)'
02폼페이09.jpg 뜨거운 음식과 음료를 팔던 고대 로마의 식당 '테르모폴리움(Thermopolium)'의 벽화
02폼페이08.jpg '비극 시인의 집(House of the Tragic Poet)' 입구 바닥에 위치한 '개 조심' 모자이크 (Cave Canem)
02폼페이12.jpg '파우누스의 집(House of the Faun)' 중앙 정원에 있는 춤추는 '파우누스의 상 (Statue of the Dancing Faun)'


그러나 폼페이를 단순한 유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화산재 속에서 발견된 사람들의 흔적 때문이다.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했을 때 사람들은 미처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뜨거운 화산재와 가스가 순식간에 도시를 덮쳤고,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세월이 흐르며 시신은 부패해 사라졌지만, 화산재 속에는 그들이 있던 자리의 빈 공간이 남았다. 고고학자들은 그 공간에 석고를 부어 당시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을 복원했다.


이른바 석고 캐스트(plaster cast)라 불리는 형상들이다.


몸을 웅크린 채 마지막 순간을 견디던 사람,


아이를 끌어안은 채 쓰러진 사람,


무릎을 꿇은 채 몸을 움츠린 모습.


그 형상들 앞에 서면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멈춘다.


방금 전까지 벽화와 건물 구조를 보며 고대 도시의 번영을 상상하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다른 생각이 밀려왔다.


이 도시에도 평범한 하루가 있었을 것이다.


시장으로 향하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목욕탕으로 느릿느릿 걸어가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며,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웃고 있던 가족도 있었을 것이다. 그 평범한 하루가 단 한 번의 폭발로 영원히 멈추어 버렸다.



02폼페이03.jpg 석고 캐스트 — 베수비오 화산 폭발 당시 사람들의 마지막 순간이 2천 년을 넘어 다시 모습을 갖추었다.
02폼페이07.jpg 석고 캐스트 — 베수비오 화산 폭발 당시 사람들의 마지막 순간이 2천 년을 넘어 다시 모습을 갖추었다.


유적 사이를 걷는 동안, 고대 로마의 도시를 보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삶이 얼마나 덧없는지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잠시 혼란스러웠다.


유적지를 빠져나오기 전,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멀리 베수비오 화산이 보였다. 지금은 조용한 산처럼 서 있었지만, 그 산이 한 도시의 시간을 멈추게 했다.


폼페이는 단순한 폐허가 아니라 멈춰 버린 시간이었다.






지중해를 따라 흐르는 길


유적지 바로 앞에는 소렌토와 나폴리로 이어지는 기차역이 있었다. 여행객들이 기차를 이용해 이 지역을 둘러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02폼페이05.jpg 폼페이 기차역 (Pompei Scavi Villa Dei Misteri)


우리는 주차장 근처의 작은 카페에서 간단히 요기를 했다. 잠시 쉬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석고 캐스트의 잔상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여행은 계속 앞으로 흐른다.

오후 2시쯤 폼페이를 출발해 소렌토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베수비오 화산이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며 시야에 들어왔다. 멀리서 보면 평온한 산이지만, 그 산이 한 도시의 시간을 멈추게 했다는 사실을 조금 전까지 유적지에서 보고 나왔다.



03소렌토05.jpg 소렌토로 가는 길에 보이는 베수비오화산


그 생각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채로 차는 남쪽으로 달렸다.


오후 2시 40분쯤 소렌토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 잠시 차를 세웠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이탈리아 남부의 풍광을 한눈에 보여 주었다. 절벽 위에 자리 잡은 소렌토의 도시와 그 아래로 펼쳐진 지중해의 푸른 수평선이 눈앞에 열렸다.


지중해의 색은 생각보다 깊었다. 오전 내내 돌과 화산재 위를 걷다가 갑자기 저 너른 파란 물 앞에 서니, 아침에 로마를 떠났다는 사실이 그제야 실감 났다.



03소렌토00.jpg 소렌토 전망 — 절벽 위 도시와 지중해가 한눈에 펼쳐지는 이탈리아 남부 특유의 풍경.


오후 3시 10분쯤 소렌토 도심에 들어섰다.

이탈리아의 많은 도시들은 **ZTL(Zona Traffico Limitato)**라는 교통 제한 구역을 운영하고 있다. 허가된 차량만 도심에 진입할 수 있고, 이를 모르고 들어갔다가 벌금을 받는 관광객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소렌토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들어갔다.


소렌토의 활기찬 심장부, 타소 광장(Piazza Tasso)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풍경이 있다.


거대한 절벽 아래 깊게 파인 '밀들의 계곡(Vallone dei Mulini)'이다. 1866년 광장이 건설되며 인간의 출입은 끊겼지만, 13세기부터 자리를 지킨 옛 제분소는 이제 주인이 바뀌었음을 온몸으로 웅변한다. 세월이 켜켜이 쌓인 붉은 벽돌 위로 짙푸른 이끼와 양치식물이 보석처럼 엉겨 붙어, 마치 시간이 멈춘 판타지 세계의 성곽을 마주한 듯 신비로운 경외감을 자아낸다.



03소렌토01.jpg 인간이 남긴 흔적을 자연이 초록빛으로 다시 써 내려가는 곳


소렌토의 유명한 골목 Via San Cesareo는 여행자들에게 잘 알려진 거리다. 골목 양쪽으로 레몬을 이용한 특산품 가게, 수제 공예품 상점, 젤라토 가게와 의류 상점들이 이어졌다.


레몬 향이 은은하게 골목을 채우고 있었다.


관광 성수기가 지난 시기라 그런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지는 않았지만, 적당한 활기가 거리의 온도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03소렌토02.jpg Via San Cesareo — 레몬 특산품과 젤라토 가게가 이어지는 소렌토의 대표 골목.
03소렌토03.jpg 소렌토의 성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를 기리는 건물이 빅토리오 베네토 광장을 포근히 감싸고 있다
03소렌토04.jpg 조밀하게 늘어선 노란 건물들 사이로 소렌토의 푸른 바다


특별한 목적지가 없이 천천히 걷는 시간.


여행에서는 이런 순간이 의외로 오래 기억에 남는다.


길가 카페에 앉아 평온함을 흉내라도 내고 싶었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차에 올라 아말피 해안도로로 향했다.


해안도로는 생각보다 훨씬 좁았다. 절벽과 바다 사이를 따라 이어지는 길이었고, 반대편에서 관광버스라도 마주치면 마치 부딪칠 것 같은 긴장감이 흘렀다. 오금이 저려오는 느낌. 아들의 핸들을 잡은 손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길을 달리는 경험은 특별했다.


차창 밖으로 지중해가 계속 이어졌다.


오후 4시 10분쯤 아말피 드라이브 전망대에 잠시 차를 세웠다.


지중해를 향해 열린 전망대에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해가 지기 전에 이 풍경을 놓칠세라 잠시라도 멈추기로 한 것이다.


그 선택은 잘한 일이었다.


햇빛이 서서히 기울면서 바다는 점점 황금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 풍광을 차창밖 풍경으로 흘려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뷰 포인트가 나올 때마다 세우기로 했다.


오후 4시 40분쯤 포지타노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산비탈에 층층이 자리 잡은 집들, 그리고 그 아래로 펼쳐진 지중해. 엽서에서 보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해는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04포지타노00.jpeg 포지타노 전망 — 절벽 위에 층층이 자리 잡은 마을과 지중해가 한 폭의 그림을 이룬다.


전망대 근처에는 작은 노점이 하나 있었다. 한국인 여행객들에게도 잘 알려진 곳이라고 했다. 주인이 말린 토마토 가루를 권하며 파스타에 넣어 먹으면 좋다고 설명했다.


호기심에 조금 맛을 보았다.


건조한 토마토의 맛이 의외로 깊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한 봉지를 샀다. 아마 이 맛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해가 점점 지중해 너머로 내려가고 있었다.



04포지타노01.jpeg 전망대에 있는 작은 노점
04포지타노02.jpg 포지타노의 양지말
05아말피가는길02.jpg 아말피 해안의 석양 — 지중해 위로 기울어진 햇빛이 수면을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아말피 해안도로는 여전히 좁았고 차량들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그런 긴장을 잊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지중해 위로 떨어지는 저녁 햇빛.


그 풍경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지중해의 저녁, 그리고 하루의 끝


해가 지중해 너머로 완전히 기울 즈음, 우리는 아말피에 도착했다.


지도를 보면 소렌토에서 아말피까지의 거리는 60여 킬로미터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제로 이동해 보니 예상보다 훨씬 시간이 걸렸다. 절벽과 바다 사이를 따라 이어지는 좁은 해안도로 때문이었다. 반대편에서 차량이 마주칠 때마다 서로 속도를 줄이며 길을 양보해야 했다.


관광 성수기가 지난 시기였음에도 도로에는 여전히 많은 차량과 오토바이가 오가고 있었다.


오후 5시 40분쯤 아말피에 들어섰다.


생각했던 것보다 마을의 규모는 꽤 컸다. 좁은 골목 사이로 관광객들이 오가고 있었고, 거리 곳곳에는 경찰도 보였다. 잠시 차를 세워 바다와 마을 풍경을 둘러볼 생각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주차 공간을 찾기가 어려웠다.


05아말피가는길05.jpg 아말피 전경 — 아말피 도심 전경
05아말피가는길04.jpg 아말피 야경


아말피 해안 지역에서는 차량 이동이 생각보다 큰 제약이 된다는 사실을 그때 실감했다.


포지타노에서 Fornillo Beach를 둘러보고, 아말피에서는 아말피 대성당(Cattedrale di Sant’Andrea)과 천국의 회랑(Chiostro del Paradiso)을 천천히 걸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스쳐 지나갔다. 두오모 광장의 카페에 앉아 저녁 바람을 맞으며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의 여정은 애초에 그런 일정으로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이번 남부 여행은 어디까지나 지중해 해안을 따라 달리는 드라이브에 의미를 두었다. 주차 공간을 끝내 찾지 못한 채, 우리는 아말피를 뒤로하고 살레르노를 향해 다시 길을 이었다.


차 안에서 아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버지, 오늘 길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는 하루의 감탄이 모두 담겨 있는 듯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폼페이에서 시작해서 지중해까지 왔으니, 하루 여행치 고는 꽤 긴 길을 걸은 셈이구나.”


차 안에서 이어진 대화는 특별한 주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서로가 보고 느낀 장면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이야기하는 동안, 하루의 풍경이 조금씩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아말피 해안을 벗어나자 길이 조금 넓어졌다. 도시의 불빛이 점점 가까워졌다.



06살레르노가는길01.jpg 아말피 해안을 벗어나면서 길이 넓어진다


오후 6시 40분쯤 살레르노에 들어섰다.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항구에는 컨테이너가 쌓여 있었고, 도심으로 이어지는 도로에는 차량들이 꽤 많이 움직이고 있었다.



06살레르노가는길02.jpg 규모가 큰 살레르노 항구 전경


오후 7시 10분쯤 숙소에 도착했다.


이곳 역시 에어비앤비 숙소였다. 넓은 거실과 두 개의 방이 있는 아파트였다. 호스트는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고, 거리에서 주차했던 차량을 건물 앞 주차장으로 옮길 수 있도록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할 만한 식당도 추천해 주었다.


밤 8시 20분쯤 Pepe Nero라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06살레르노00.jpeg 구글 평점 4.5의 Pepe Nero


문어 요리와 계란 파스타, 와인, 그리고 피자를 주문했다. 종업원은 메뉴판 대신 QR코드를 안내했다. 이제는 이탈리아의 많은 식당들이 이런 방식으로 주문을 받고 있었다.



06살레르노03.jpeg QR코드 메뉴
07살레르노01.jpg QR코드 메뉴
07살레르노02.jpg QR코드 메뉴


음식은 화려하지 않았다. 해안 지역이면서도 간이 강하지 않은 심심하고 담백한 맛이었다.



07살레르노05.jpg 문어 요리
07살레르노06.jpg 계란 파스타
07살레르노08.jpg 마르게리타 (Margherita) 피자


식사를 하며 우리는 다시 오늘의 길을 이야기했다.


폼페이의 폐허,


베수비오 화산,


그리고 지중해 위로 떨어지던 저녁 햇빛.


아들은 살레르노 해안의 야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07살레르노07.jpg Pepe Nero에서 본 해안 야경


“오늘 하루는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습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폼페이의 멈춰 버린 시간과 아말피 해안의 흐르는 풍경 사이를 우리는 하루 동안 지나온 것이었다.


어쩌면 이번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천천히 걷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아들과 나 사이의 대화는 조금씩 더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여행의 길 위에서 서로의 속도가 조금씩 맞아 가고 있었다.


내일은 또 다른 길이 기다리고 있다.


몬테 카시노.


성 베네딕토의 발자취와 전쟁의 폐허 속에서 다시 세워진 수도원의 역사가 기다리고 있다.


오늘이 풍경의 하루였다면 내일은 다시 순례의 길이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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