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성문을 지나, 마음에 이르다

순례라 부르기엔 조금 느슨한 희년의 여행기

by 느루숨

2025년 10월 21일~ 11월 6일까지의 기록

2025년 10월 27일 월요일 맑음



물러섰던 자리로


전날, 나는 성문 앞에서 돌아섰다.


희년의 문은 열려 있었다. 다만 그 앞을 가득 채운 인파 속에서 발길을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문이 닫힌 것이 아니라, 내가 물러선 것이었다. 숙소로 돌아온 밤, 나는 그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오래 되묻고 누웠다. 성문을 지나지 못한 하루가 과연 미완인지 아닌지, 스스로도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이튿날 아침, 다시 길을 나섰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광장으로 걸어 들어서는 동안, 어제의 미사가 참례였는지 아니면 군중 속에 섰을 뿐이었는지 여전히 분간이 되지 않았다. 성문만 지나면 무언가 분명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마음 한편에 얇게 깔려 있었다. 그것이 기대인지 체념인지도 몰랐다.



00 바티칸 주차장.jpg 주차장 입구



광장으로 이어지는 줄은 바티칸 박물관 인근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걷는다기보다 흘러가고 있었다. 나 또한 그 흐름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한 시간 남짓, 발바닥의 감각이 무뎌질 만큼 서 있다가 마침내 희년의 성문을 통과했다.



01성베드로성전입장줄.jpg 희년의 성문 통과를 위한 줄
01성베드로성전입장줄_3.jpg 희년의 성문 앞의 순례객들


01성베드로성전입장줄_성문.jpeg 성 베드로 대성전 희년의 성문
02성베드로성전_희년성문_2.jpg 성 베드로 대성전 희년의 성문
02성베드로성전_희년성문_3.jpg 성 베드로 대성전 희년의 성문



그러나 성전 안에서도 마음은 쉽게 자리를 찾지 못했다.

거대한 공간이 한꺼번에 열렸지만, 나는 그 안에서 오히려 오래전 처음 이곳을 찾았던 기억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때의 고요와 지금의 소란. 성문은 분명 지났다. 그러나 발을 내딛는 것과 머무는 것 사이에는, 아직 내가 건너지 못한 거리가 있었다.






보았으되, 머물지 못하다


성전 안은 또 하나의 도시처럼 광활했다.


황금빛 발다키노가 제대를 감쌌고,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침묵 속에 고통을 품고 있었다. 둥근 돔 아래 쏟아지는 빛은 장엄했으나, 그 장엄함은 멈추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뒤에서 밀려드는 발걸음이 나를 앞으로 밀어냈기 때문이다.


03성베드로성전_발타키노.jpg 성 베드로 대성전 발다키노
04성베드로성전_천정.jpg 성 베드로 대성전 천정
03성베드로성전_피에타.jpg 성 베드로 대성전 피에타



나는 보았으되, 바라보지 못했다.


성 베드로의 청동상을 찾아 나섰지만, 등 뒤에서 밀려드는 발걸음이 나를 옆으로 밀어냈다. 오래전 기억으로 대신하였다. 천장을 올려다보는 순간에도 몸은 옆으로 빠져야 했다. 통과는 했으되 체류하지 못한 방문객처럼, 나는 사람들의 물결에 실려 다녔다.


출구 쪽으로 흘러가다 성물방에 들렀다. 희년 메달과 묵주를 샀다. 손에는 '지나온 사람'의 표지가 남았다. 그러나 기념은 손에 머물고, 울림은 아직 마음에 닿지 않았다. 성전 밖으로 나오자 광장은 여전히 숨이 막히도록 가득했다.


나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동상을 찾아 사람들 사이를 헤집었다.


대성전 오른편 벽면,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동상 앞에 섰다. 세계 교회의 중심, 그 거대한 돌벽 앞에서 조용히 서 있는 한국 사제의 형상. 작았지만 또렷했다. 장엄함 속에서 오히려 그 작음이 더 깊게 다가왔다.


07성베드로성전_성김대건상.jpg


그러나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쿠폴라 전망대 입구에도 또 다른 긴 줄이 이어져 있었다. 바티칸으로 들어오는 길이 성 베드로의 열쇠 형상을 이룬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오르고 싶었지만, 몸이 먼저 솔직했다. 아쉬움보다 피로가 깊었다.


그토록 바라던 성문을 통과했음에도, 마음은 여전히 정돈되지 않은 채였다.


점심 무렵 옥타비아노 역 근처 맥도널드에서 식사를 하고 지하철을 타고 스파냐 역에 내렸다. 계단 위로 펼쳐진 스페인 광장은 밝고 가벼웠다. 트리니타 데이 몬티 성당을 향해 오르는 계단에 여행객들이 흩어져 앉아 있었고, 분수대 주변에는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오래된 가죽 공방 몇 곳을 기웃거렸지만, 아름다움은 그날의 나를 붙잡지 못했다.


나는 그 광장에서 순례자가 아니라 관광객에 가까웠다.



10스페인광장.jpg







성 밖에서 멈추다


성 밖의 성 바오로 대성전은 달랐다.


바티칸의 중심에서 벗어나 아피아 고도 쪽으로 향하는 길은 한결 한적했다. 관광의 흐름에서 비켜선 자리. 그래서인지 성전 앞에 섰을 때 먼저 느껴진 것은 장엄함보다 고요였다. 석조 기둥이 줄지어 선 회랑을 지나며 발걸음이 스스로 느려졌다.


전승에 따르면 사도 바오로가 순교한 자리 위에 4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처음 성전을 세웠고, 1823년 화재 이후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고 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사도 바오로의 석상이었다.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서 있는 형상. 복음을 전한 사도이자, 그 복음으로 인해 순교한 인물의 상징이었다. 나는 그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길 위의 삶. 다마스쿠스에서의 회심, 수차례의 투옥과 매질, 그리고 이 도시에서의 최후. 그 긴 여정이 이 자리에 조용히 응축된 듯했다. 석상은 말이 없었고, 그 침묵이 오히려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정면 파사드를 가득 채운 황금 모자이크가 흐린 하늘 아래서도 선명하게 빛났다. 중앙에 앉은 그리스도, 좌우의 베드로와 바오로, 그 아래로 12마리의 양과 4개의 강이 흐르고, 구약의 예언자들이 신약의 성취 아래 자리하고 있었다. 약속 위에 놓인 복음. 그 도상의 구성이 설명이 아니라 서사처럼 읽혔다.



11성밖의성바오로대성전.jpg 성 밖의 성 바오로 대성전 바오로 성인과 파사드




희년의 성문을 지나 내부로 들어섰다. 두꺼운 청동 문에 새겨진 구원의 장면들이 문턱을 넘는 짧은 순간에 스쳤다. 통과는 몸의 움직임이지만, 변화는 다른 시간 속에서 온다.



11성밖의성바오로대성전_희년성문.jpg 성 밖의 성 바오로 대성전 희년의 성문
11성밖의성바오로대성전_희년성문1.jpg 성 밖의 성 바오로 대성전 희년의 성문



회랑을 지나 내부로 들어서자 공간이 단숨에 열렸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뻗은 중앙 신랑, 좌우로 반복되는 아치와 화강암 기둥들, 정교한 금빛 격자로 짜인 천장. 성 베드로 대성전의 웅장함이 숨을 막는 압도였다면, 이곳은 거대하되 숨이 가쁘지 않았다. 각자의 걸음으로 들어와 각자의 자리에서 멈출 수 있는 공간이었다.


11성밖의성바오로대성전_내부.jpg 성 밖의 성 바오로 대성전 내부
11성밖의성바오로대성전_내부1.jpg 성 밖의 성 바오로 대성전 내부 (중간 높이의 양 옆에는 역대 교황님들의 초상 모자이크가 있다)



벽면을 따라 늘어선 교황들의 초상 모자이크 앞에 섰다.


초대 교황 베드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둥근 황금 테두리 속 얼굴들이 이어졌다. 그 안에서 나의 수호성인 이름을 찾았다. 히지노. 2세기 중반, 아테네 출신의 그리스인으로 제9대 교황이었다는 기록 외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름. 그러나 그는 세례성사에 대부모를 두는 제도를 도입하고, 사제 양성을 위한 교육을 정비했다. 짧은 이름 하나가 이 거대한 공간 속에서 오히려 가까이 다가왔다. 신앙의 역사는 추상이 아니라,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시간으로 이루어진다. 맨 마지막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초상이 있었다.


11성밖의성바오로대성전_내부2.jpg 성 밖의 성 바오로 대성전 내부의 역대 교황들의 초상화 모자이크
11성밖의성바오로대성전_프란치스코교황.jpg 성 밖의 성 바오로 대성전 내부의 역대 교황들의 초상화 모자이크 맨 마지막에 위치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초상화



중앙 제대 아래, 난간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곳에 사도 바오로의 석관이 안치되어 있다. 2009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발굴 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하며 그 존재가 확인되었다. 화려한 황금빛 제대 바로 아래, 그곳은 단순하고 낮았다. 길 위에서 살았던 사도의 마지막 자리는 장식보다 돌의 결이 먼저였다.



11성밖의성바오로대성전_발다키노.jpg 성 밖의 성 바오로 대성전 발다키노
11성밖의성바오로대성전_성바오로쇠사슬.jpg 성 바오로가 묶였던 쇠사슬
11성밖의성바오로대성전_성바오로석관01.jpg 발다키노 아래에 있는 성 바오로의 쇠사슬과 석관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우리는 세 분수 수도원으로 향했다.


전통적으로 바오로가 참수된 자리로 전해지는 곳이다. 머리가 세 번 튀어 오른 자리마다 샘이 솟았다는 이야기에서 트레 폰타네(Tre Fontane)라는 이름이 비롯되었다. 역사적 사실로 모두 증명할 수는 없으나, 5세기 이후 이 전승은 이 자리를 지켜왔다.


입구의 벽돌 아치를 지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성전의 장엄함 대신 수도원의 단정함이 있었다. 낮은 건물, 정돈된 마당, 한층 적은 사람들. 말소리는 낮고 발걸음은 느렸다.


12세분수수도원_입구.jpg 세 분수 수도원 입구
12세분수수도원_스칼라스콜리.jpg 세 분수 수도원에 있는 천국의 계단성당(Santa Maria Scala Coeli)



마침 성 바오로 참수 성당 안에서 저녁 미사가 봉헌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작은 공간, 낮게 울리는 기도의 응답, 손에 닿을 것처럼 가까운 제대. 성 베드로 대성전의 거대한 울림과는 전혀 다른 결이었다. 밀려가지 않아도 되는 자리.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시간. 아침부터 몸속 어딘가에 눌려 있던 것이 그 고요 속에서 천천히 내려앉았다.



12세분수수도원_성당.jpg 성 바오로 참수 성당 안에서 봉헌되는 저녁 미사




제대 뒤 벽면에는 바오로의 순교를 형상화한 부조가 있다. 무릎 꿇은 사도, 칼을 든 병사. 그러나 사도의 표정은 놀랍도록 평온하다. 순교는 저항이 아니라 받아들임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천천히 스쳤다.


제대 아래로 이어지는 작은 공간을 내려다보았다. 쇠창살 너머, 돌벽 앞에 한동안 서 있었다. 전승의 사실 여부를 따지기보다, 그 자리에 고여 있는 침묵이 먼저 다가왔다. 믿음은 설명이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머무는 시간 속에서 자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12세분수수도원_유해.jpg 성 바오로 참수 성당 제단
12세분수수도원_유해1.jpg 제단 아래의 성 바오로가 참수될 때 묶였던 기둥 조각




수도원 마당의 조형물 앞에 멈추었다. 철창 사이로 내밀어진 두 손.


"나는 감옥에 있을 때 너희가 나를 찾아주었다." (마태 25, 36)


묶인 손이면서도 여전히 밖을 향해 열려 있는 손. 바오로의 생애 전체가 그 손안에 담겨 있는 듯했다.



12세분수수도원.jpg




대성전이 신앙의 역사였다면, 수도원은 신앙의 결단이었다. 그리고 발아래 아피아 고도의 울퉁불퉁한 돌길은, 신앙의 현재였다.



12세분수수도원_옛도로.jpg 세 분수 수도원 내에 있는 아피아 가도 돌길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나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낮의 황금빛과는 다른 색이었다. 더 어둡고, 더 진지한 빛.






통과가 아니라, 머묾


로마의 네 대성전, 희년의 성문을 모두 통과했다.


일정표 위에 표시해 둔 목표들은 빠짐없이 지워졌다. 형식으로 보자면 충실한 순례였다. 그러나 하루를 정리하며 눈을 감으니, 기억 속에 또렷이 남은 것은 성문의 문턱이 아니었다.


성 바오로 동상 앞에서 아무 말 없이 서 있던 시간.


세 분수 수도원의 작은 성당 안에서 낮은 목소리로 울리던 응답 소리.


그 고요가 문턱보다 깊었다.


아침에는 인파에 떠밀려 걸었고, 낮에는 장엄함 속에서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그리고 저녁, 아피아 고도의 돌 위에서야 비로소 발걸음이 나의 속도를 찾았다. 순례는 성문을 통과하는 사건이 아니라, 마음이 멈추어 서는 순간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일인지 모른다.


숙소로 돌아오니 피로가 밀려왔다.


오전까지만 해도 몸이 무거웠는데, 미사를 마친 뒤에는 이상하게도 걸음이 가벼웠다.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는 없었지만, 안쪽에서 무언가 조용히 자리를 옮긴 듯했다. 아들은 내 표정을 살피며 보폭을 맞추어 걸었다.


말없이 함께 걸어 준 그 동행도 이날 순례의 일부였다. 신앙은 홀로의 결단이면서, 결국 함께 걷는 길이라는 사실을.


저녁 식탁에는 또다시 티본스테이크와 와인이 놓였다.


며칠째 이어지는 저녁이었지만, 이날은 다르게 느껴졌다. 음식의 맛보다 하루의 무게가 먼저 내려앉았다. 웃으며 잔을 부딪쳤지만, 마음 한편에는 고요가 남아 있었다.


나는 이날을 한 문장으로 적어 본다.


떠밀려 통과한 성문보다, 멈추어 선 마음이 더 또렷했던 하루.


내일은 남부로 향한다. 폼페이의 폐허와 소렌토, 포지타노, 아말피 해안선. 장엄한 풍경과 오랜 역사가 또 다른 감동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이 일러 준 것 하나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듯하다.


길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 위에서 어디에 멈추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


로마의 마지막 밤은 소란스럽지 않았다. 황금빛 제대도, 거대한 돔도, 수많은 성문도 하루의 끝에서는 하나의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통과한 사람'이 아니라 '머문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 밤, 순례는 일정이 아니라 자세임을 알았다.



-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