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들뜬 마음, 비어 있는 중심

순례라 부르기엔 조금 느슨한 희년의 여행기

by 느루숨

2025년 10월 21일~ 11월 6일까지의 기록


2025년 10월 26일 일요일 맑음



기대가 먼저 앞질러 간 아침


아침 일곱 시, 숙소 문을 나섰다. 몸이 가벼웠다. 전날 일정을 일찍 접은 덕분이다. 오늘 하루는 무리 없이 버틸 수 있겠다.


그 판단이 착각의 시작이었다. 몸이 괜찮으니, 마음도 준비되었겠다고 여겼다.


차를 세운 곳은 터미널 바티카노 로마 주차빌딩이었다. 성 베드로 광장으로 이어지는 대형 주차장이었다. 그 안에 차를 세우며 나는 순례자라기보다, 잘 정리된 동선에 몸을 맡긴 방문객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06_바티칸주차장.jpg 바티카노 로마 주차빌딩



순례라는 말이 마음에서 한발 물러나고, 입장이라는 말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일곱 시 사십 분쯤, 광장은 아직 한산했다. 검색대 앞에 줄이 길지 않은 것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06_바티칸광장01.jpg 한산한 성베드로 광장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향하는 줄에 섰다. 줄은 점점 길어졌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무거워지지 않았다. 기다림이 길수록, 그 끝에 있을 무언가가 더 값지게 느껴졌다. 미사를 기다리고 있으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교황님을 보게 될 순간’을 먼저 떠올리고 있었다. 신앙의 자리보다 장면의 자리가 조금 더 또렷해지고 있었다.


첫 번째 관문에서 앱에 있는 순례자 카드 화면을 보여주고 통과했다. 그 짧은 순간에 스스로 대견해지는 마음이 스쳤다. 준비해 온 것을 제대로 써먹었다는 느낌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대견함은 기쁨이라기보다 안도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안도는 곧, ‘여기까지는 잘 왔다’라는 자기 확신으로 바뀌었다.


두 번째 관문에서 걸음이 멈췄다. 대성전 내부에서 미사를 참례하기 위해서는 사전 등록을 한 티켓이 필요하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순례자 카드는 순례 증명을 위한 것이었고, 미사참례와는 다른 절차였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규칙은 분명했고, 예외는 없어 보였다.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06_바티칸광장02.jpg 성베드로 성전 내부로 가는 미사 참례줄



돌아서며 마음이 먼저 반응했다. 실망보다는 그제야 사전 등록을 해야 했다는 것이 떠올랐고, 그것을 놓쳤다는 사실에 민망함이 앞섰다. 다시 처음의 줄로 돌아가는 동안, 광장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었다. 그사이 사람들은 서너 배 늘어나 있었고, 소리는 커지고, 공기는 서서히 조급해졌다.


‘왜 사전 등록을 하지 않았을까.’


잠깐의 후회 뒤에, 곧 다른 말이 따라왔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잖아.’


자신을 스스로 달래는 말이었지만, 그 말에는 묘한 성질이 있었다. 반성보다는 타협에 가까웠다.


여덟 시 이십 분쯤, 나는 결국 성전 안이 아니라 광장의 의자에 앉았다. 앉는 순간, 생각보다 허탈했다. 큰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니었지만, 손에 쥐고 있던 기대를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06_바티칸광장06.jpg 성베드로 광장 미사 참례 순례객



그 허전함을 메우듯,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어디서 드리든 미사는 미사라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그날은 위로라기보다, 마음을 가볍게 하기 위한 핑계처럼 들렸다.


미사를 기다리며 나는 자주 시계를 보았다. 기도하려고 시간을 확인한 것이 아니라, 언제 시작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느님을 기다리기보다, 장면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들뜬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그 들뜸은 기도의 자리를 오래 비워 두고 있었다.


그 아침, 나는 이미 조금 앞서가 있었다.


그래서 미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마음의 중심은 살짝 어긋나 있었다.






익숙한 예식, 다잡으려고 했던 마음


열 시가 가까워지자, 광장은 눈에 띄게 정돈되었다. 광장 둘레의 대형 전광판에는 입당 행렬의 선두 화면이 잡혔고,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한 방향으로 모였다. 나 역시 자리에서 자세를 고쳐 일어섰다. 미사가 곧 시작된다는 사실이 몸부터 반응하게 했다. 이제는 기다림이 아니라, 참여의 시간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 보았다.



06_바티칸광장미사02.jpg 입당 행렬



열 시 정각, 화면 속에서 교황님이 중앙 제대의 발다키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향을 피우며 제대를 도시는 장면은 엄숙했고, 익숙했다. 여러 번 보아 온 시작 예식이었다. 나는 그 익숙함에 기대어, 마음을 그 자리에 붙들어 두려 했다. 이제는 보려 하지 말고, 드리자고. 이 미사는 장면이 아니라 기도라고,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06_바티칸광장미사01.jpg 성 베드로성전 중앙 제대의 발다키노 앞에서 향을 피우시는 교황님



미사는 내가 알고 있는 순서대로 흘러갔다. 말씀 전례의 흐름도, 성찬 전례의 리듬도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입으로는 응답을 따라 했고, 일어설 때와 앉을 때를 놓치지 않았다. 예식의 틀 안에 몸을 맞추는 일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질 것이라 여겼다. 시작 예식의 기도문이 울려 퍼질 때, 잠시나마 마음이 가라앉는 듯했다.


그러나 그 가라앉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음은 자꾸만 전광판과 광장을 가득 채운 순례객으로 흘러갔다. 교황님의 손짓, 제대 앞에 앉아 있는 주교들의 모습, 성전 안을 가득 채운 사람들. 그 모든 장면이 동시에 눈에 들어왔다. 예식을 따라가려는 마음과,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는 시선이 번갈아 고개를 들었다. 집중하려 애쓸수록, 마음은 더 분주해졌다.



06_바티칸광장미사03.jpg 성베드로 성전 제대 앞의 주교님들



주변을 둘러보니 광장에 앉은 사람들 대부분이 화면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두 손을 모은 이들도 많았다. 나 역시 그들 사이에 있었다. ‘지금은 미사다’라고 자신을 스스로 다잡아 보았지만, 그 다짐은 잠시뿐이었다. 마음은 예식 안으로 완전히 들어오기보다, 예식의 가장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집중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어디에 마음을 두고 있는가의 문제임을 그때 알았다.


그때 문득 광화문이 떠올랐다.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124위 순교자를 복자로 선포하던 미사. 인파는 더 많았고, 거리도 훨씬 넓었지만, 그날의 나는 미사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 차이가 무엇이었을까. 장소의 문제는 아니었다. 언어도, 예식도 아니었다. 그날의 나는 미사에 ‘참례’하고 있었고, 오늘의 나는 여전히 미사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 미묘한 차이가 마음을 흔들었다.


말씀을 듣는 동안에도 생각은 자주 흩어졌다. 말씀의 의미를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마음에 닿기 전에, 화면 속 움직임이 먼저 들어왔다. 미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감각보다, 거대한 행사의 일부가 되었다는 의식이 앞섰다. 성체를 모실 때에도 그 감각은 또렷했다. 순례자들과 통로를 분리해 놓은 철책 앞에서, 나는 왼손이 아닌 오른손으로 어정쩡하게 손을 내밀어 성체를 모셨다. 누가 틀렸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 그 순간 나는 예식의 중심이 아니라 동선의 일부가 된 듯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06_바티칸광장미사05.jpg 교황님의 성찬천례


06_바티칸광장미사05_1.jpg 영성체




열한 시 이십 분쯤 미사가 끝났을 때, 마음 한쪽에서 안도감이 올라왔다. 감동의 여운이라기보다, 긴장을 내려놓아도 된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안도감은 곧 또 다른 기다림으로 이어졌다. 정오의 삼종기도. 사람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고, 나 역시 그대로 앉아 있었다. 기도가 끝났다는 사실보다, 아직 이어질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생각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06_바티칸광장미사06.jpg 파견 행렬



그때 문득 깨달았다.


미사가 나를 지나간 것이 아니라, 내가 미사를 따라가느라 그 안에 머물지 못했다는 사실을.


익숙한 예식은 그대로였지만, 마음은 끝내 그 중심에 닿지 못했다.


가라앉히려 애쓸수록, 들뜬 마음은 더 또렷해졌고, 그 들뜸은 나를 미사의 가장자리로 밀어내고 있었다.


정오가 되자 사도궁 집무실 창문에 교황님의 모습을 드러내시고, 짧은 강론과 묵상 메시지를 전하시며 강복하셨다. 그 내용은 모르겠으나, 사랑의 메시지가 아닌가 싶었다.


06_바티칸광장삼종기도02.jpg 교황님의 삼종기도






물러섬으로 시작된 순례


광장의 순례 인파를 바라보다 보니, 어제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의 장면이 겹쳐 떠올랐다. 광장 앞에 몰린 순례객들의 밀도와 열기는, 희년의 성문 통과는 물론 성전 입장조차 엄두가 나지 않게 했다. 우리는 성 베드로 대성전의 희년 성문 통과를 다음 날로 미루기로 했다.


더 머문다고 해서 오늘의 마음이 더 맑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금은 들어가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는 편이 더 나은 선택처럼 느껴졌다. 광장 인근에서 점심을 먹고 성물 가게를 둘러보았으나, 순례객 인파에 밀려 이내 포기하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를 몰아 자니콜로 언덕으로 향했다. 바티칸의 소음이 멀어질수록, 생각도 함께 낮아졌다. 언덕 위에는 이탈리아 통일의 상징처럼 서 있는 가리발디의 동상이 있었다. 늠름한 자세와 달리, 그 주변은 의외로 한산했다. 사람들이 적은 곳에서는 말이 먼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시야가 넓어진다.



06_가리발디동상.jpg 자니콜로에 있는 가리발디 동상



로마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돔과 지붕들이 겹겹이 이어진 도시, 저 멀리 조국의 제단 뒤편이 보였다. 조금 전까지 그 안에 있었음을 떠올리자, 조금 전의 분주함이 낯설게 느껴졌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사람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그 많던 인파도, 기다림도, 경쟁도 이 거리에서는 모두 같은 크기로 접혀 있었다. 높이는 판단을 서두르지 않게 만든다. 내려다본다는 것은 우월해지는 일이 아니라, 사소함을 받아들이는 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06_자니콜로언덕_조국의제단.jpg 자니콜로 언덕에서 보이는 조국의 제단



아들과 나란히 서서 잠시 말을 아꼈다. 굳이 감상을 나누지 않아도 충분했다. 높은 곳에서는 설명보다 침묵이 먼저 온다. 방금 전의 미사가 왜 그렇게 마음에 남지 않았는지, 그 이유가 조금은 보이는 듯했다. 중심이 너무 많았다. 중심이 많아질수록, 정작 마음이 설 자리는 좁아진다. 그 깨달음은 결론이 아니라, 다음 장소로 향하게 하는 조용한 신호였다.


자니콜로를 내려와 차는 로마 외곽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성 세바스티아노 대성전이었다. 관광의 동선에서 벗어난 자리, 고대 아피아 가도 곁에 놓인 성전. 오후 세 시를 조금 넘긴 시각, 성전 앞은 한산했다. 기다릴 필요도, 밀릴 이유도 없는 공간이었다. 그 조용함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카타콤베는 가이드가 있어야 그 의미를 온전히 알 수 있기에 내려가지 않았다. 그러나 아쉬움은 크지 않았다. 내려가 확인하는 대신, 위에서 머무르기로 하였다.


06_성세비스티안성당00.jpg 성 세바스티아노 대성전과 카타콤베



성전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가 달랐다. 웅장함은 없었지만, 오래된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곳은 설명보다 전해짐이 앞서는 자리였다.



06_성세비스티안성당02.jpg 성 세바스티아노 대성전 내부



세바스티아노 성인의 유해는 지하 경당에 모셔져 있었고, 성전 내부에는 베르니니의 제자가 조각한 성인의 대리석상이 놓여 있었다. 마치 잠든 듯 평온한 모습이었다. 고통의 화살은 육신을 뚫었을지언정, 그의 영혼은 천상의 빛에 닿아 있는 듯 보였다. 전승에 따르면, 이곳은 박해의 시간 속에서도 신앙을 놓지 않았던 이들의 숨결이 머문 자리다. 나는 그 사실을 떠올리며 한동안 서 있었다. 믿음은 언제나 설명보다 먼저 견뎌야 했다는 것, 그 단순한 사실이 유해 앞에서는 더 또렷해졌다.



06_성세비스티안성당06.jpg 세바스티아노 성인의 유해




이어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Domine, Quo Vadis?)’의 예수님 발자국 앞에 섰다. 많은 이들이 사진을 찍고 지나갔지만, 나는 선뜻 다가서지 못했다. 발자국은 크지 않았고, 특별히 눈길을 끄는 장식도 없었다. 그래서 더 오래 보게 되었다. 베드로가 두려움에 로마를 떠나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다는 그 전승보다, 지금 이 자리에 남아 있는 흔적 자체가 마음에 남았다. 신의 자비가 인간의 고뇌와 맞닿은 지점처럼 느껴졌다.



06_성세비스티안성당08.jpg Quo Vadis?’의 예수님 발자국



제대 앞 벤치에 앉았다. 누가 시간을 재촉하지 않았고, 다음 일정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제야 마음이 제자리를 찾는 느낌이 들었다. 광장에서 반복하던 기도문이 다시 떠올랐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여전히 익숙한 말이었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다가왔다. 무언가를 얻기 위한 말이 아니라, 그렇게 서 있어도 된다는 허락처럼.


성 베드로 광장에서의 미사는 나를 흔들어 놓았고, 이곳은 그 흔들림을 붙잡아 주었다. 중심에서 밀려난 자리에서야, 비로소 중심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순례란 많은 것을 보는 일이 아니라, 전해지는 흔적 앞에서 멈출 줄 아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날의 방향 전환은 깨달음이라기보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쉬어 간 결과에 가까웠다.






같은 식탁에서 남은 물음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습관처럼 마트에 들렀다. 진열대 앞에서 발걸음이 멈춘 곳도 늘 같았다. 정육 코너의 티본스테이크였다. 벌써 닷새째였다. 질릴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손이 먼저 갔다. 실패하지 않는 선택이라는 이유도 있었고, 낯선 도시에서 반복할 수 있는 한 가지를 붙들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날은 그 반복이 유난히 마음을 놓이게 했다.



06_티본스테이크00.jpg 티본스테이크 자르는 모습



“또 이거예요?”


아들이 웃으며 물었다.


“그러게. 내일이면 그만 먹어야 할 텐데.”


“내일도 먹을 것 같은데요.”


그 말에 나도 웃었다. 웃음은 길지 않았지만, 자연스러웠다. 광장과 성전에서 긴장했던 마음이 그 짧은 웃음 사이로 조금씩 풀렸다. 말수가 줄어든 대신, 말의 간격이 가까워졌다.


숙소에 들어와 장바구니를 내려놓았다. 물을 끓이고, 주방에 장을 풀어놓는 동작들이 이어졌다.


고기를 굽는 동안 우리는 굳이 오늘의 장면들을 되짚지 않았다. 광장의 인파나 미사의 인상에 대해 길게 말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다른 데로 흘렀다. 한국에 남겨 둔 일, 앞으로의 일정, 사소한 생활 이야기들. 말의 속도도, 간격도 어제보다 한결 느슨해져 있었다.


식탁에 마주 앉아 고기를 썰었다. 닷새째의 맛은 더 이상 새롭지 않았지만, 그 익숙함이 오히려 편안했다. 여행지의 식탁이라기보다, 잠시 빌린 일상의 식탁 같았다. 나는 그제야 생각했다. 오늘 하루 동안 내가 가장 오래 머문 자리는 성전도, 광장도 아니라 이 식탁이었다는 사실을.


“오늘은 좀 어땠어요?”


아들이 물었다.


“글쎄. 생각보다 정신이 없더라.”


그 대답이 전부였다. 더 덧붙이지 않아도, 그 말 안에 오늘의 요지가 담겨 있었다.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잠시 말없이 식사를 이어갔다. 그 침묵은 불편하지 않았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로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설거지를 마치고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하루를 접었다. 오늘의 순례가 무엇이었는지, 굳이 정의하려 들지 않았다. 다만 질문 하나만은 마음에 남았다. 성문을 통과하지 못한 하루가 과연 미완이었을까. 광장에서 드린 미사가 행사처럼 느껴졌다고 해서, 그 하루가 비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니콜로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거리, 성 세바스티아노 대성전에서 마주한 성인의 유해와 예수님의 발자국이 조용히 겹쳐 떠올랐다. 전해지는 흔적 앞에서 멈춰 섰던 시간과, 시작 예식에 마음을 다잡아 보려 애썼던 아침의 다짐이, 이 식탁 위에서 한 자리에 놓이는 느낌이었다. 순례는 반드시 어디를 통과해야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음식을 먹고, 하루의 끝에서 다시 마주 앉아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는 일 역시 순례의 일부일 수 있다는 생각.


그 생각은 확신이 아니라, 여전히 물음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물음은 가볍지 않았다. 전승의 자리에서 배운 멈춤과, 예식 안으로 들어가려 애쓴 마음이, 생활의 반복 속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의 순례는 성전 안에서 끝나지 않았다.


닷새째의 티본스테이크를 사이에 두고, 아들과 마주 앉아 조용히 남겨 둔 질문 속에서 하루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이 물음은 그날 밤, 명확한 답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다음 날의 방향만을 조용히 가리켰다. 성 베드로 대성전 희년의 성문을 다시 향하고, 성 밖의 성 바오로 대성전과 세 분수 수도원을 순례하며, 오늘 미뤄 두었던 질문을 다시 꺼내야 한다는 예감이었다. 내일의 순례는 더 많은 것을 보려는 길이 아니라, 오늘 남겨 둔 질문을 따라 걷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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