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라 부르기엔 조금 느슨한 희년의 여행기
2025년 10월 21일~ 11월 6일까지의 기록
2025년 10월 25일 토요일 맑음
2025년 10월 25일 토요일, 로마의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화창하다는 말이 이날만큼은 가볍지 않게 느껴질 만큼, 공기는 온화했고 빛은 거리 위에 고르게 내려앉아 있었다.
본격적인 순례를 시작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숙소를 나설 때의 마음은 자연스레 들떠 있었다. 아들과 나란히 길을 나서며, 오늘은 그저 한 번쯤 깊게 숨을 들이마셔도 괜찮을 것 같은 하루라고 여겼다. 로마 중심가로 향하는 길은 주말이어서인지 비교적 한적했다.
이날은 우리가 로마 4대 대성전 순례의 문을 여는 첫날이었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을 시작으로, 희년의 성문을 통과하는 의식이 이어질 예정이었다.
희년(Jubilee)은 가톨릭에서 25년마다 돌아오는 특별한 해로, 이 기간에 지정된 성전의 '성문(Holy Door)'을 통과하면 영적 쇄신과 죄의 용서를 받는다고 믿는다.
전날까지는 로마의 몇몇 성당과 명소를 두루 둘러보는 일정이었지만, 오늘부터는 분명히 성격이 달랐다. 관광과 순례의 경계가 아니라, 순례라는 이름이 일정의 앞자리에 놓인 날이었다.
전날의 피로는 아직 몸에 남아있었고, 아직 정리되지 않은 여운들도 함께 따라나섰다. 그러나 토요일의 로마는 이미 많은 사람들로 깨어 있었다.
주말을 맞은 도시는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단체 순례객과 관광객들로 빠르게 채워지고 있었다, 거리의 소리는 활기찼다기보다 분주했다.
그럼에도 아침의 마음만큼은 분명했다.
오늘은 ‘성문을 통과하는 날’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 여정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확인하고 싶었다.
아침 아홉 시, 숙소를 나섰다. Manzoni 역 인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버스를 기다렸으나 배차는 일정하지 않았다. 아들은 정류장에 서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서서 오가는 차들을 바라보았다. 말없이 서 있는 시간이 어색하지 않았다. 함께 있되 각자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 그것이 우리 부자 사이의 오래된 방식이었다. 주말이어서인지 도착한 버스 안은 뜻밖에 한가했다.
열 시 사십 분 무렵 성전 초입에 닿았을 때, 순례객들의 깃발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 줄은 입구를 넘어 골목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묘가 이곳에 자리하고 있어, 보안 검색은 엄격했다. 행렬은 느리게 움직였다. 성문을 통과하기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아들이 중얼거렸다.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줄 앞, 뒤쪽에서는 단체 순례객들 각자의 언어가 섞여 들렸다. 로마는 지금 전 세계의 언어를 머금고 있었다.
희년의 성문 앞에 섰다. 문 양쪽에는 복음서의 장면들이 부조로 새겨져 있었다. 나는 잠시 멈춰 그 부조를 바라보고 싶었다. 한 해의 의미와 시간을 마음속에서 가다듬고, 이 문을 넘는다는 사실 하나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러나 뒤에서 밀려오는 발걸음이 있었고, 앞에서는 행렬이 끊이지 않고 흘러갔다. 성문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지점이었다.
통과하는 순간,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것이 순례의 시작인가, 아니면 하나의 절차인가.
내부는 이미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교황들의 묘가 이어진 공간을 지나며 발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장면들은 주마간산처럼 스쳐 갔다.
그러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묘 앞에 이르렀을 때, 시간이 잠시 멈춘 듯했다. 묘석은 놀라울 만큼 소박했다. 장식도 과장도 없이, 바닥과 거의 같은 높이에 평평하게 놓여 있었다. 묘 앞에는 줄이 쳐져 있었고, 경비원이 행렬을 향해 빨리 지나가라는 손짓을 연신 하였다. 주변의 화려한 대리석과 황금빛 제대와는 대조적이었다. 사람들은 그 앞을 지나가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행렬에 떠밀리면서도, 그 단출함이 주는 무게를 느꼈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이 있었다. 남기려 하지 않은 흔적이 오히려 깊게 남는다는 것을 그 묘석은 보여 주고 있었다.
지하 고백소로 내려갔다. 성 구유 유물함(Sacra Culla)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탄 구유 조각군이 안치되어 있었다. 예수님이 태어난 베들레헴 말구유의 나무 파편이 눈부신 황금 천사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인류의 가장 낮은 곳을 상징하는 말구유 파편이 눈부신 황금 천사들에 둘러싸인 모습은 역설적이었다. 그러나 이 신비로운 시공간 앞에서도 머무를 여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계속 밀려왔고, 나는 계속 밀려갔다.
제단 앞 벤치에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눈을 감고 묵상을 시도했다. 그러나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지나온 동선과 다음 이동, 방금 스쳐 간 장면들이 뒤섞여 생각이 끊임없이 밀려왔다. 침묵 속에서 기도는 맺히지 않았고, 입에서는 익숙한 기도문만 낮게 흘러나왔다. 간절함도 고요함도 아닌, 정리되지 않은 중얼거림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인파 속을 서성이고 있었다.
성전을 나서 식당을 찾았다. 구글 지도를 따라 골목을 걸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길이어서 감각이 흐려졌다. 결국 한 바퀴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뒤에야 Tonnarello Santa Maria 식당 앞에 섰다.
"여기 맞아요?"
"맞는 것 같은데."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웃었다. 길을 헤매는 일조차 이제는 여행의 일부였다.
잠시 대기 끝에, 자리에 앉았다. 로마의 까르보나라는 크림의 색을 띠지 않았다. 달걀과 치즈, 그리고 후추가 만들어낸 질감은 꾸덕꾸덕했고, 맛은 단정했다. 한 입을 넘길 때마다 오전의 소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한국에서 먹던 거랑 완전히 다르네요."
"원조의 맛은 이런 건가 보네."
"이게 더 맛있는데요?"
성스러움에서 일상으로의 급격한 전환이 접시 위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식당의 소란함은 소음이 아니라 생활의 온기로 다가왔다. 웨이터가 이탈리아어로 무언가를 외치는 소리와 주방의 부산함은 식당 전체에 활기찬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오후 한 시 오십 분, 도보로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 닿았다. 성 계단 성당(Scala Santa)은 닫혀 있었다.
예전에 다녀갔던 기억으로 대신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 공간이었다. 종교 개혁 마틴 루터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예수가 빌라도 앞에서 걸었다는 이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던 루터는, 계단 중간에서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오직 믿음만으로 이롭게 된다’라는 이신칭의(以信稱義, Justification by faith)라 부르는 그 깨달음이, 결국 종교 개혁의 불씨가 되었다. 계단을 오르는 고행이 구원이 아니라, 믿음 그 자체가 구원이라는 것.
대성전 서쪽 파사드는 압도적이었다. 거대한 코린트식 기둥들이 떠받치고 있었고, 상단에는 위엄 있는 조각상들이 늘어서 있었다. 중앙의 그리스도, 좌우의 세례자 요한과 사도 요한, 그리고 교회의 학자들. 정면에 새겨진 라틴어 비문은 이곳이 “온 세상의 모든 교회의 어머니이자 머리”임을 또렷이 선언하고 있었다. 로마 교황의 공식 모 교회, 그것이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이었다.
비교적 순례객이 적어 여유롭게 희년의 성문을 통과했다.
내부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교황 권좌(Cathedra)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곳이 베드로 대성당보다 서열상 앞서는 로마 교황의 공식 모 교회임을 상징하는 자리였다. 긴 중앙 회랑을 따라 늘어선 사도 상들은 묵직한 침묵으로 공간을 채우고 있었고, 천장과 돔을 채운 황금 모자이크는 빛을 받아 성전 전체를 감싸 안았다. 반원형 돔 아래로 퍼지는 빛은 질서 정연하면서도 압도적이었다.
제대 위 시보리움(성체를 보관하는 탑 형태의 구조물)의 철창 안에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의 머리 유해로 전해지는 성유물이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진위를 떠나, 2000년 가까운 시간이 그 작은 공간에 응축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숙연해졌다. 사람들은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이 장엄함을 눈에 담고 있었다. 나 역시 장엄함에 매료되어 발걸음을 멈추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질문이 계속 자라고 있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신앙인가, 아니면 예술인가.
오후 두 시 사십 분, 콜로세움 앞에 섰다. 주말의 인파는 입장을 포기하게 했다. 콜로세움을 향해 늘어선 관광객들의 줄은 마치 출정을 앞둔 군인들의 대열처럼 정렬되어 있었다. 입장을 포기하고 맞은편 언덕에 올라 콜로세움의 실루엣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내부에 들어갔던 기억이 겹쳐 떠올랐다. 내부의 그늘과 관중석의 곡선, 돌 위에 남은 시간의 흔적이 보지 않아도 선명했다. 이번에는 밖에서 충분했다.
오후 십오 시 삼십 분,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컨디션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주차장으로 향했으나, 거리는 노동자 시위로 가득 메우고 있었다. 경찰의 보호 아래 행진은 이어졌고, 차들은 꼼짝없이 멈춰 섰다. 한 시간 남짓, 도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기다렸고, 시위대의 끝이 보이지가 않는다. 대규모 시위인 듯하다. 거리에서의 기다림은 생각보다 빠르게 피로를 불러왔다.
차 안에서 아들이 먼저 말을 꺼냈다.
“성전에 갔는데, 성전 같지 않았달까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나는 잠시 생각했다. 아들의 말이 맞았다. 오늘 우리가 통과한 것은 성문이 아니라 관문에 가까웠다. 묵상할 틈 없이 밀려갔고, 기도할 여유 없이 지나쳤다.
"나도 그랬어. 순례를 왔는데, 순례객인지 관광객인지 모르겠더라. “
우리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앞 차의 브레이크 등이 빨갛게 켜져 있었다. 로마는 지금 순례객들만의 도시가 아니었다. 일하는 사람들, 저항하는 사람들, 살아가는 사람들의 도시이기도 했다.
순례란 어쩌면, 성스러운 장소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그 길 위에서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질문이 시작되었다.
나는 무엇을 보려 이곳까지 왔는가.
무엇을 느끼려 했는가.
희년의 성문을 통과함으로써 무언가를 얻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는가. 구원을 하나의 절차처럼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이 혼잡한 시기에 굳이 이곳에 온 이유가 신앙의 깊이보다 의무감에 더 가까웠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수많은 순례객 사이에서, 나 역시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깨달음보다 일정이 앞섰고, 묵상보다 이동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도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소박한 묘석 앞에서 느낀 위로, 아들과 나란히 서서 같은 것을 바라보던 순간들, 까르보나라 한 접시를 앞에 두고 나눈 짧은 대화. 그것들이 오늘의 진짜 순례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로 들어가기 전, 근처 마트에 들렀다. 저녁거리를 고르기 위해 진열대를 천천히 훑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정육점 코너의 진열장에 있는 티본스테이크 앞에 멈춰 섰다. 벌써 4일 연속이었다. 가성비가 좋은 가격 탓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질리지 않았다.
"또 스테이크예요?"
"왜, 싫어?"
"아니요. 좋아요."
아들이 웃으며 고기를 집어 들었다. 나도 그 옆에 놓인 와인 병을 집어 들었다. 하루 종일 걸었던 탓인지, 몸이 단백질을 찾는다는 말이 괜히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식성만큼은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사람에 치였던 탓인지, 계산대 앞의 줄마저도 조용히 기다릴 수 있었다. 봉투를 들고 나오니, 비로소 오늘의 이동이 끝났다는 실감이 났다.
숙소의 현관문을 닫는 순간, 도시의 소음은 한 겹 벗겨졌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처음 이용한 숙소였지만, 호텔보다 친근했다. 장바구니를 식탁 위에 올려두고 잠시 숨을 골랐다. 발과 무릎은 신호를 보냈지만, 아직은 걸을 수 있었다. 피로는 쌓였으되, 무너지지는 않았다.
간단히 저녁을 준비해 식탁에 마주 앉았다. 그제야 시선이 자주 마주쳤다. 오늘의 인파와 기다림, 멈추지 못했던 발걸음들에 대해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오늘은 사람이 정말 많았네.”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솔직했다.
식사가 이어지면서, 그동안 미뤄 두었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여행 이야기가 일 이야기로, 일 이야기가 다시 생활 이야기로 옮겨갔다. 서로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듣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오랜 세월 같은 공간에 있었으면서도, 이렇게 차분히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 얼마나 있었나 싶었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아들과 나 사이에 놓여 있던 간격이 생각보다 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란히 앉아 하루를 정리했다. 질문은 남겨두고, 판단은 뒤로 미뤘다. 오늘의 결론은 간단했다.
희년의 성문 통과는 순례객도 관광객도 아닌, 하나의 행사처럼 지나갔다. 결국 오늘의 성문은, 내가 기대한 의식이 아니라 현실이 허락한 통과였다.
어쩌면 순례의 본질은 따로 있는지도 몰랐다. 화려한 성전이나 엄숙한 의식이 아니라,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피로를 나누는 것. 그리고 하루를 마친 뒤 식탁에 마주 앉아, 오랜만에 서로를 보는 것.
오늘의 식탁은 그 간격을 단번에 메우지는 못했다. 그러나 다음에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는 분명히 알려 주었다.
내일은 제16차 세계 주교 시노드 정기총회 제2회 기의 폐막 미사로 교황님이 직접 미사를 집전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고, 이어서 정오에는 교황님의 삼종기도가 이어진다. 더 많은 장면을 보겠다는 생각보다, 정해진 시간에 아들과 함께 자리를 지키는 일만으로도 충분하겠다고 여겼다.
서두르지 않기, 말을 아끼기, 그리고 아들과 보폭을 맞추기. 그 정도면 내일을 맞이할 준비로는 충분했다.
그날의 순례는 성전 안이 아니라, 같은 식탁에 마주 앉은 아들과의 침묵 속에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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