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각자의 걸음으로 만난 로마

순례라 부르기엔 조금 느슨한 희년의 여행기

by 느루숨

2025년 10월 21일~ 11월 6일까지의 기록


2025년 10월 24일 금요일


각자의 걸음으로 만난 로마


로마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우리는 같은 숙소에서 다른 하루를 맞이했다.


아들은 그날 숙소에 남았다.


한국에서 걸려 온 업무 연락은 예상보다 급했고, 그는 전화를 끊은 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짧았지만, 그 말끝에는 분명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나는 괜찮다고 답했다. 스무 해 만에 함께 나선 여행이었기에, 오늘의 엇갈림은 더 또렷하게 남았다.




아침 7시 반, 숙소 근처의 간이역인 아쿠아 아체토사 역으로 향하기 위하여 길을 나섰다.


골목에서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여행객인가 싶었지만, 곧 등굣길 학생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가방을 등에 메는 대신 캐리어에 담아 끄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자연스러웠다.


플랫폼에는 이미 출근길 사람들로 가득했다. 우리나라 교외 전철 플랫폼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좌석 배열이 열차 안처럼 나란히 놓여 있었다. 열차 안은 출근하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말소리는 작았다. 모두가 같은 자세로 몸을 기울인 채 핸드폰 액정에 눈을 고정하고 흔들리고 있었다. 그 사이에 서 있는 나는 유일한 관광객이었다. 몇몇 시선이 스쳤지만, 곧 거두어졌다. 괜스레 열심히 일하러 나가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는 한가로운 여행자의 처지가 미안하게 느껴졌다.


테르미니역에 도착하자 사람들의 흐름은 한층 거세졌다. 지하철로 갈아타기까지의 거리는 생각보다 훨씬 멀었다. 안내 표지를 따라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며 A노선을 찾아갔다. 보물 찾기처럼 이어지는 통로를 지나며, 서두를 이유는 없다고 되뇌었지만, 발걸음은 저절로 빨라졌다. 혼자 걷는 길에서는 괜히 서두르게 된다.



05_테르미니역도착.jpg 출근하는 사람들




지하철 안은 출근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내려야 할 역에서는 몸을 뺄 수 없었고, 결국 한 정거장을 더 지나서야 간신히 내릴 수 있었다.



05_테르미니역 메트로02.jpg 메트로 테르미니역 A노선




바르베리니 역에 올라섰을 때, 로마의 아침은 이미 하루의 중심으로 들어서 있었다. 아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날의 도보 여정은 그렇게, 혼잡함 속에서 시작되었다.


바르베리니 역에서 나와 골목을 따라 십 분 남짓 걸어 트레비 분수로 향했다. 익숙한 길이었지만, 오늘은 익숙함보다 눈앞의 상황이 먼저였다.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분수 앞은 이미 붐볐다. 연못 가장자리에는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고, 동전을 수거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사람들은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지만, 멀찍이서 각자의 방식으로 분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수에 동전을 던져야 한다는 의무적인 몸의 반응이 일었으나, 세 번 이상은 무의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손에 쥐고 있던 동전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05_트레비분수_동전수거.jpg 동전 수거 작업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없던 트레비 분수




트레비 분수는 18세기 교황 클레멘스 12세 시절 완성된 바로크 분수로, 고대 로마 수로인 아쿠아 벼르기네의 종착점이다. 물은 언제나 이곳으로 흘러와 멈춘다. 그 흐름 위에 신화와 조각, 도시의 욕망이 겹겹이 쌓여 오늘의 분수가 되었다.


분수 뒤편의 건물 정면 오른쪽의 창 몇 개는 자세히 보면 실제 창이 아니라 벽에 그려진 장식이다. 바로크 건축에서 자주 쓰이던 트롱프뢰유(trompe-l'œil) 기법으로, 정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그려 넣은 가짜 창문이라고 한다. 실재와 장식이 구분 없이 공존하는 방식이, 이 도시의 오래된 미감처럼 느껴졌다.



05_트레비분수_가짜창문.jpg 트레비 분수, 관심 있게 찾아봐야 알 수 있는 가짜 창문




분수를 뒤로하고 판테온으로 향하는 길, Venchi Cioccolato e Gelato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예전에도 이곳에 들렀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벽면 전체에 초콜릿이 흐르고 있는 장식과 유리 진열장의 정갈하게 놓인 젤라토들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초콜릿과 피스타치오 두 가지 맛을 골라 콘에 담았다.



05_Venchi.jpg Venchi의 시그니처인 '초콜릿 폭포(Chocolate Waterfall)'




한 입을 베어 물자, 기억 속 그 맛이 그대로 입안에 퍼졌다. 차갑기보다 콘에 닿아 있던 젤라토의 부드러운 온기가 먼저 퍼졌고, 단맛은 앞서지 않았으며, 향은 서둘러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맛이라는 사실이 묘하게 반가웠다. 젤라토는 컵보다 콘으로 먹어야 한다는 것도, 이곳에서 배운 것이었다. 그 잠깐의 시간이 분수에서 시작된 소란을 한 겹 가라앉혀 주는 것 같았다.


길은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지만, 공간의 결은 조금 달라졌다. 사람들만 덜하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 로마 시대에 와 있다고 생각할 만큼 고풍스러운 거리였다.


판테온은 고대 로마의 신전으로 지어졌고, 7세기 이후에는 가톨릭 성당으로 봉헌되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유적이면서도 지금의 시간 속에서 여전히 숨 쉬는 성당이라는 사실은, 막상 이 안에 들어와 보아야 실감이 난다.


안으로 들어서자 자연스레 고개가 위로 향했다. 돔 중앙의 오쿨루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이 바닥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비라도 내렸으면 그 흔적이 뚜렷했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남겨둔 공간이 오히려 이 건축을 완성하는 듯했다.



05_판테온_오쿨루스.jpg 판테온, 천장의 구멍 하나가 공간 전체의 시간을 움직인다




라파엘로의 묘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보다, 지금 이 순간의 빛과 공기가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잠시 제대 앞의 자리에 앉아 묵상했다.



05_판테온_라파엘로무덤01.jpg 라파엘로 무덤과 위에 있는 '암반의 성모' (Madonna del Sasso), 라파엘로의 제자였던 로렌체토 (Lorenzo Lotti, 별칭 Lorenzetto)가 제작



판테온을 나서며 내가 마지막으로 로마에 왔던 1998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이 도시를 얼마나 보았을까. 이번에는 풍경보다, 그 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더 또렷하게 남고 있었다.


오전의 공기는 화창한 하늘에 비해 한층 무거워져 있었다. 사람들은 더 늘었고, 골목의 속도도 빨라졌다. 점심을 따로 계획해 두지는 않았다. 판테온 근처에 왔을 때 들렸던 곳이 떠올라,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티카 살루메리아(Antica Salumeria). 화려하지 않은 간판과 유리 진열장 안의 소박한 재료들. 나는 포카치아 하나를 골라 간단히 점심을 대신했다. 기름을 머금은 빵 사이로 햄과 치즈의 맛이 단정하게 어우러졌다. 특별한 것 없는 조합이었지만, 로마에서는 이런 한 끼가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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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_포카치아01.jpg 안티카 살루메리아의 포카치아



점심을 마치고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에 있는 콘타렐리 경당(Cappella Contarelli)으로 향했다. 이 경당에는 성 마태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대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세 개의 그림이 한 시야에 들어왔다.


카라바조의 성 마태오 연작이 한 시야에 들어왔다. 〈성 마태오의 소명〉, 〈성 마태오와 천사〉, 〈성 마태오의 순교〉. 가장 먼저 시선이 머문 것은 〈성 마태오의 소명〉이었다. 어둠 속에서 한 방향으로 쏟아지는 빛, 그리고 그 빛을 가리키는 손. 같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부름을 듣는 사람과 듣지 못하는 사람의 표정은 분명히 갈라져 있었다.


믿음이란, 준비된 사람에게만 닿는다는 생각이 스쳤다.



05_콘타렐리경당_카라바조의 성 마태오 연작.jpg 콘타렐리 경당, 어둠 속으로 들어오는 빛—‘부름’이 먼저 도착한 자리.



나는 제대 앞 한쪽 벤치에 앉아 잠시 머물렀다. 그림을 해석하려 애쓰지 않았다. 빛과 어둠이 만들어내는 긴장 속에 가만히 몸을 두었다. 말보다 오래 남는 것은, 언제나 침묵이다.


성당을 나와 나보나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은 이미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지만, 분주함은 한 박자 늦춰진 듯했다.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 한 잔을 주문하고, 광장을 가로지르는 사람들의 속도를 바라보았다. 잠시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오전의 긴장은 한결 누그러졌다.


광장을 떠나 키에사 델 제수(Chiesa del Gesù) 성당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시선은 자연스레 위로 끌려 올라갔다. 고개를 뒤로 젖혀 두 손을 모아 바라본, 성 이냐시오의 영광을 담고 있는 천장화는 현실의 천장과 그림 속 하늘의 경계를 지워진 듯 펼쳐져 있었다. 인물들은 위로 상승하고, 빛은 아래로 쏟아졌다. 화려했지만 산만하지 않았고, 장식은 많았으나 중심은 분명했다. 제대 앞에 앉아 잠시 묵상했다. 이곳에서는 시선은 높아지지만, 마음은 오히려 가라앉았다.



05_키에사델제수성당_천장화.jpg 키에사 델 제수(Chiesa del Gesù) 성당의 천장화 <출처: WIKIMEDIA COMMONS>





키에사 델 제수 성당을 나와 카피톨리노 박물관으로 향하기 전, 자연스럽게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기념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로마의 중심부를 굽어보는 거대한 기념비는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광장에 가까워질수록 통제를 위한 바리케이드가 나타났고, 귀빈이 방문 중인지 경찰차와 경찰 오토바이가 가득했다. 사람들은 주변에 흩어져 서서 기다렸고, 나 역시 한동안 그들 사이에 섞여 시간을 보냈다.


거의 한 시간이 지나도록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조국의 제단은 눈앞에 있었지만, 더 가까이 갈 수는 없었다. 기다림 끝에 문득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이곳이 아닌 날이라는 판단이었다. 더 머물 이유를 찾지 않고, 발걸음을 돌렸다.



05_조국의 제단.jpg 조국의 제단, 눈앞의 기념비, 그러나 오늘은 ‘들어갈 수 없는 날’이었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카피톨리노 박물관의 높은 계단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오르기에는 몸이 무거웠다. 오늘은 위로 오르는 길보다, 아래로 이어지는 길이 더 맞아 보였다. 방향을 바꿔 진실의 입(Bocca della Verità)으로 향했다. 내려가는 길에서 다리는 속도를 늦췄고, 몸은 그 무게를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05_카피톨리노박물관.jpg 높게만 느껴졌던 카피톨리노 박물관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사람들은 차례를 기다리며 한 손씩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가 빼곤 했다. 웃음과 긴장이 뒤섞인 표정들이 줄을 따라 이어졌다. 거짓말을 하면 손이 잘린다는 단순한 전설을 세계적으로 전파한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 주연의 ‘로마의 휴일’. 그 단순함 이 오히려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듯했다.



05_진실의입.jpg 진실의 입, 장난처럼 시작된 줄이 문턱 앞에서 멈춘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바깥의 소란은 문턱에서 멈췄고, 안쪽에는 오래 머물러 온 공기가 남아 있었다.


성 발렌티노의 유해를 마주했다.


꽃으로 장식된 성인의 두개골과 그 옆에는 순교의 고통을 증언하는 고난의 도구들이 놓여 있었다.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


복음의 진리를 침묵 속에 웅변하며, 사랑과 희생이라는 말이, 이곳에서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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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_성발렌티노유물02.jpg 성 발렌티노 유해와 고난의 도구



투박한 나무 천장과 세월의 함축이 담긴 대리석 기둥이 중앙 신랑을 묵묵히 받치고 있다. 그 발치에 펼쳐진 화려하고 기하학적인 코스마테스크(Cosmatesque) 바닥은 오랜 세월 이곳을 지켜온 신자들의 소박하고 정결한 신앙의 태도를 정교한 모자이크처럼 투영하고 있다.


중앙 제단의 빛바랜 프레스코화 속,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모습은 현재와 과거가 겹쳐 있는 듯 보였다. 그 사이에 내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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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_산타마리아인코스메딘성당03.jpg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 내부




비잔틴 양식의 성모자상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아기 예수를 품에 안으신 성모님의 온화한 눈길을 마주한 채,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이 여정에서 무엇을 얻었는지보다, 무엇을 내려놓고 있는지가 더 또렷해지는 순간이었다.


05_산타마리아인코스메딘성당02.jpg 8세기경 비잔틴 제국에서 성상 파괴 운동(Iconoclasm)을 피해 로마로 도망쳐온 그리스 수도사들이 가져온 것으로 알려진 성모자 이콘 (Madonna and Child)



언덕을 올라 몰타 기사단의 오렌지 정원으로 향했다.


이름만큼이나 과장된 풍경을 기대했지만, 정원은 뜻밖에 절제되어 있었다. 오렌지 나무 사이로 난 길 끝에서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이 정확히 시야에 들어왔다. 예전에는 열쇠 구멍 너머로 그 돔을 훔쳐보듯 바라보았는데, 이제는 이렇게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그 차이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05_오렌지정원.jpg 오렌지 정원, 멀리 있는 돔이 오히려 더 또렷해지는 순간.



옆에서는 외국인 커플이 조심스레 무릎을 꿇고 청혼하고 있었고, 주변 사람들은 박수 대신 미소로 그 장면을 지나 보냈다. 이 도시는 기쁨도 소란스럽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렌지 정원을 내려오자, 공기의 결이 갑자기 달라졌다.


정원의 고요가 채 가시기도 전에 언덕을 내려오자, 대전차 경기장(Circo Massimo) 옆 도로에서 소란이 먼저 귀를 채웠다. 체 게바라의 얼굴이 인쇄된 깃발과 붉은 깃발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 구호를 외치는 목소리가 낮고 굵게 이어졌다. 정확히 어떤 단체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난민 단체로 보이는 사람들의 행렬은 단호했다.


05_시위.jpg 축제 같은 시위대의 모습



고대 로마의 대전차 경기장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에서, 20세기의 얼굴과 구호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로마는 늘 이렇게 시간을 겹쳐 놓는다. 서로 다른 시대가 조율 없이 한 자리에 서 있는 풍경 앞에서, 나는 잠시 걸음을 늦췄다.



05_대전차경기장.jpg 고대 로마의 대전차 경기장 터



치르코 마시모 역에서 노면전차를 기다렸다. 한참을 서 있었지만, 전차는 오지 않았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하루의 무게가 다리에 먼저 내려앉았다. 결국 버스를 탔다.


창밖으로 콜로세움이 스쳐 지나갔다. 오늘은 들리지 않기로 했던 곳이었다. 아들과 함께 보기로 마음속에 남겨둔 장소이기에, 그냥 지나치는 편이 더 옳다고 여겼다. 그렇게 콜로세움은 창밖의 풍경으로만 남았다.


테르미니역 한 정거장 전, ‘한국식당’ 앞에서 하차했다. 라면과 김치, 즉석식품 몇 가지를 골라 들었다. 분실한 가방 속에 있었을 법한 것들이었다. 지난밤, 아들이 꺼내다 멈춘 말들이 떠올랐다. 그것은 없어서 불편하다는 투정이 아니라, 나를 위해 준비해 온 것들이 허사가 되었다는 아쉬움이었다. 필요한 물건을 채운다기보다,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채워 두고 싶었다.


05_한인마켓.jpg 한인 마켓



테르미니역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열차 정보가 제때 뜨지 않아 안내 데스크를 오갔고, 답변은 성의 없이 짧았다. 직장인들 출퇴근을 위한 노선이어서 정보가 부족한 것이었다. 간신히 출발 시간에 맞춰 승차했지만, 몸과 마음은 이미 지쳐 있었다. 참피아노 역을 지나 아침에 출발했던 아쿠아 아체토사 역으로 가려던 계획도 바꿨다.


아들에게 연락해 차로 마중을 와 달라고 했다. 역 반대편에서 서로를 기다리며 잠시 혼란을 겪었지만, 결국 차에 올랐다. 그 순간 하루가 끝나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해가 기울 무렵 숙소로 돌아와 근처 대형 슈퍼마켓에 들렀다.


정육 코너에서 티본스테이크를 집어 들었다. 1킬로그램에 약 5 만 원. 믿기 어려울 만큼 저렴했다. 식재료를 고르며 와인 진열대를 살폈다. 병목에 붙은 표시들이 눈에 들어왔다. DOCG, DOC, IGT. 이탈리아 와인의 등급이 이렇게 구분된다는 것을 떠올리며, 무리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 가격은 부담스럽지 않았고, 하루를 마무리하기에는 충분했다.


05_마켓고기.jpeg 숙소 근처 마켓 정육 코너의 가성비가 훌륭한 티본스테이크


숙소로 돌아와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주방으로 향했다. 아들은 이미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었다. 슈퍼마켓에서 사 온 티본스테이크를 꺼내 놓자, 우리는 말없이 각자의 역할을 나눠 가졌다. 내가 고기를 굽는 동안, 아들은 와인을 따르고 샐러드를 준비했다.


"오늘 어땠어요?"


아들이 식탁을 정리하며 물었다. 나는 하루를 압축해서 들려주려 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결국 오르지 못한 카피톨리노 언덕 이야기부터 꺼냈다.


"카피톨리노 박물관 계단 앞에 섰는데, 오를 수가 없더라. 몸이 무거워서가 아니라, 오늘은 그게 아닌 것 같았어."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오늘 하루 숙소에서 혼자 일을 처리하며 비슷한 무게를 느꼈을 것이다.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가 주방을 채웠다. 와인 잔을 든 채 창밖을 바라보니, 로마의 저녁이 깊어지고 있었다. 멀리서 성당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하루의 끝을 알리는 것 같았다.


"아빠, 내일은 같이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들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의 표정에는 오늘의 미안함이 아직 남아 있었다. 나는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말했다. 사실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오늘 혼자 걸었던 로마는, 함께였다면 지나쳤을 풍경과 생각을 남겨 주었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스테이크를 나눠 먹었다. 연속 삼일째다. 그래도 질리지 않고 잘 먹는다. 고기는 완벽하게 익었고, 와인은 적당히 부드러웠다. 우리는 오늘 각자 겪은 일들을 조금씩 나눴다. 그의 업무 이야기, 나의 여정 이야기. 서로 다른 하루였지만, 이 식탁에서는 하나로 모아졌다.


와인 잔을 비우고 창밖을 다시 바라보았다. 로마의 밤은 고요했다. 이 도시는 2천 년을 견뎌온 만큼, 하루쯤 엇갈린 걸음도 너그럽게 품어주는 것 같았다.





이날은 오르지 못한 계단과 지나친 풍경, 그리고 결국 도착한 식탁으로 이루어진 하루였다. 혼자 걷는다는 것은 외로움이 아니라, 자신의 속도를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군중 속에서도, 성당의 침묵 속에서도, 나는 나만의 호흡으로 로마를 걸었다. 서두르지 않았고, 멈추고 싶을 때 멈췄으며, 지나치고 싶을 때 지나쳤다. 함께 걷지 않은 오늘의 길이, 함께 걸을 내일의 길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스무 해 만에 함께 나선 여행. 그 시간은 매 순간 함께해야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각자의 길을 걷다가, 저녁 식탁에서 다시 만나는 것. 그것도 함께하는 방식이었다.


로마의 넷째 날이 그렇게 저물었다. 내일은 또 다른 로마가, 우리 둘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