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라기 부르기엔 조금 느슨한 희년의 여행기
2025년 10월 21일~ 11월 6일까지의 기록
2025년 10월 23일
친퀘테레와 피사를 지나, 로마로
간밤의 잠자리에 들기 전, 아들은 낮 동안 꺼내지 못했던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가방 이야기를 다시 꺼내며, 오늘 오전에 공항에 한 번 더 가서 확인해야 하지 않았느냐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번 여행을 위해 음식까지 챙기며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했었다는 말에는 단순한 아쉬움이 아닌, 하루 종일 쌓여온 서운함이 묻어 있었다.
나는 그 말에 잠시 말을 잃었다. 이미 지나간 판단이었고, 그 순간 최선이라 여겼던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 판단은 아들에게는 하루를 짓누르게 하는 무게가 되었음을, 그제야 실감했다. 나는 말없이 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우리는 각자의 생각을 조금 남긴 채 잠자리에 들었다. 답을 서둘러 내놓기보다, 하루를 다시 시작하는 쪽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의 일정이 아니라 마음의 속도를 가다듬어야 하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아침은 숙소 길 건너편의 자그마한 카페에서 해결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서 자리에 앉자, 실내 벽 한쪽에 걸린 지 오래된 사진이 눈에 띄었다. 19세기말 무렵, 카페 앞 삼거리를 담은 흑백 사진이었다. 놀랍게도 사진 속 풍경은 지금의 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로의 방향도, 건물의 윤곽도 그대로였다.
커피를 마시며 나는 잠시 그 사진 앞에 시선을 두었다. 우리가 여행이라 부르는 시간도, 어쩌면 이렇게 겹겹이 쌓인 일상의 한 층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떠나온 자리와 도착한 자리가 완전히 단절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 위에 겹쳐 있을 뿐이라는 생각 말이다.
조식 후 친퀘테레로 향하기 위해 역으로 갔다. 매표창구에서는 오렌지 경보로 인해 표를 팔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역 안 자동발권기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고, 플랫폼에는 이미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이 적지 않았다. 경보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묘했다. 우리는 완전한 일정은 어렵겠지만, 마나롤라 전망대까지만 다녀오기로 했다.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열차 안에는 제법 많은 승객이 타고 있었다. 그러나 관광객은 보이지 않았고, 대부분은 일상으로 이동하는 현지인처럼 보였다. 그 속에 섞여 앉아 있으니, 우리가 지금 가는 길이 여행인지, 아니면 일상의 연장선인지 잠시 분간이 흐려졌다.
마나롤라 전망대에 도착했을 때, 예상과 달리 관광객은 없었다. 우리뿐이었다. 경보 덕분이었다. 대신 풍경은 온전히 남아 있었다. 친퀘테레라는 이름이 왜 ‘다섯 개의 땅’이 아니라 ‘다섯 개의 풍경’으로 기억되는지 알 것 같았다. 절벽을 따라 층층이 붙어 있는 집들은 서로를 가리지 않으려는 듯 색을 낮추고 있었고, 바다는 그 아래에서 모든 색을 받아 안으며 깊은 푸름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빨강과 노랑, 연두와 흙빛이 섞인 집들의 파스텔 색조는 자연과 경쟁하지 않고, 오히려 배경이 되어 주는 듯했다. 파도는 폭풍전야처럼 거칠지 않았고, 바람도 억지로 말을 걸지 않았다. 오렌지 경보로 사람의 발길이 끊긴 덕분에, 이 풍경을 전세를 내어 만끽하였다. 관광지가 아니라, 오래 살아온 자리처럼 보였다. 잠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돈되는 풍경이었다.
우리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경보 발령이 본격화되기 전인 오전 아홉 시, 다시 열차를 타기 위해 역사의 승강장으로 이어진 터널을 지나 열차에 오르니 굵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이 풍경이 허락된 시간은 여기 까지라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다시 열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고, 체크아웃을 마친 뒤 다음 목적지인 피사를 향했다.
피사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흰 대리석으로 빛나는 광장에 입추의 여지없이 모여 있는 사람들이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기울어진 탑과 마주하고 있었고, 사진 속에서는 탑을 떠받치고, 밀고, 기대는 장면들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피사 대성당은 11세기부터 지어지기 시작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걸작으로, 해양 공화국 시절 피사의 부와 신앙을 동시에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그 옆의 세례당과 종탑, 즉 피사의 탑은 애초부터 기울어질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 연약한 지반 위에서 공사가 진행될수록 조금씩 고개를 숙였고, 그 불완전함이 오늘의 상징이 되었다.
대성당과 세례당 안으로 들어서자, 바깥의 소란은 한 겹 가라앉았다. 대리석 바닥 위에 울리는 발소리, 둥근 아치 아래의 공기, 낮게 흐르는 침묵 속에서 잠시 묵상했다. 수백 년 동안 기울어지면서도 무너지지 않은 탑처럼, 인간의 역사도 그렇게 버티며 이어져 왔을 것이다. 불가사의한 구조물보다 그 생각이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점심은 파스타와 피자로 간단히 해결했다. 음식은 무난했지만, 관광지라는 이름이 가격표에 먼저 붙어 있었다. 접시는 단정했으나 감동까지는 이르지 않았고, 맛보다 계산서가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여행지에서는 종종 이런 식사를 하게 된다. 배는 채웠지만, 마음까지 채워지지는 않는 식사였다.
이제 로마로 향할 차례였다. 피사에서 로마 외곽 치암피노(Ciampino) 공항 인근 숙소까지는 약 350킬로미터. 꽤 긴 거리였다. 숙소로 바로 가지 않고, 로마 외곽에 있는 카스텔 로마노 아웃렛(Castel Romano Outlet)에 들렀다. 한국의 아웃렛과 같은 구조로 낯이 익었다. 잃어버린 가방 대신, 아들에게 필요한 옷가지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어쩌면 물건보다도, 마음의 균형을 다시 맞추기 위한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로마 외곽의 숙소는 단독 세대를 빌린 에어비앤비로, 예상보다 훨씬 훌륭했다. 무엇보다 독립된 주차장이 있어 마음이 놓였다. 주변에는 대형 슈퍼마켓이 있었고, 도보 10분 거리에 로마 중앙역으로 향하는 간이역도 있었다. 호스트 내외는 친절하게 집과 주변 환경을 설명해 주었다. 하루 종일 이동하며 쌓였던 긴장이 그제야 풀렸다.
저녁은 호스트 내외가 추천한 지역 맛집(Macelleria Bisteccheria Ulivieri)에서 마무리했다. 이날도 티본스테이크와 와인이었다. 주인은 연신 이탈리아어로 말을 건넸고, 나는 맛이 어떠냐는 뜻으로 알아듣고 엄지 척으로 화답하였다.
두툼한 고기는 과하지 않게 익어 나왔고, 칼을 대자 육즙이 천천히 번졌다. 겉은 단단했지만 속은 부드러웠고, 씹을수록 고기의 결이 분명하게 살아났다. 토스카나 와인의 묵직한 타닌이 고기의 기름기를 잡아주며, 한 입 한 입이 분리되지 않고 이어졌다. 한국보다 가성비가 좋다는 말이 먼저 떠올랐지만, 그보다도 고기의 질과 맛이 인상 깊었다. 주변의 식객들은 대부분 육사시미를 연상케 하는 생고기를 즐기고 있었다. 굳이 묻지 않아도 고기의 신선함에 대한 주인의 자부심이 그 붉은 빛깔에서 오롯이 전해지는 듯했다.
니스에 도착해 로마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은, 애초에 로마의 성지를 향한 순례를 위한 경유로 계획된 길이었다. 니스와 에제, 모나코, 그리고 친퀘테레는 모두 그 과정에 놓인 이름들이었다.
그러나 하루하루 지나온 공간들은 단순한 경유지로 남기에는 충분히 깊고 넉넉했다. 그러나 니스의 아침 바다와 에제의 골목, 모나코의 항구, 경보 속에서도 온전히 드러났던 친퀘테레의 풍경은 스쳐 지나가기에는 아까운 자리들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품고 있는 장소들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더 머물지 않고 로마로 향했다. 이제부터는 풍경을 바라보는 여행이 아니라, 성지를 중심에 둔 순례가 시작될 차례였다. 이 며칠의 여정은, 본격적인 순례에 앞서 마음의 속도를 가다듬게 해 준 준비의 시간이었음을, 로마 외곽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