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도 없던 한여름 더위를 잊게 해 준 미숫가루
여름은 점점 더 길어지고 더워지는 것 같다.
그렇지만 견딜만하다.
냉장고를 열면 시원한 물, 얼음, 음료수, 과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더위를 쫓아내기에는 충분하다.
이걸로 부족하면 선풍기를 튼다.
선풍기로 부족하면 에어컨을 켠다.
어떤 더위도 현대 문명의 발명품으로 견딜 수 있는 세상이다.
내가 7살 때 미숫가루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선풍기도 없었던 더운 8월 초 여름날...
더위에 짜증이 났다. 그 짜증은 엄마를 향했다.
"엄마~ 나 더워서 죽을 것 같아"
엄마는 큰 양은그릇과 20원을 주셨다.
"얼음가게 가서 얼음 20원어치만 사와라"
그 더운 여름날 발걸음도 가볍게 얼음가게로 달려갔다.
돌아오는 길, 얼음이 녹을까 봐 집까지 단숨에 뛰어왔다.
"엄마, 얼음 사 왔어~"
엄마는 그 사이에 큰 양은그릇에 미숫가루 물을 만들어 놓았다.
아빠는 얼음을 망치와 송곳으로 먹기 좋은 크기로 쪼게셨다.
그 얼음을 엄마가 만들어 놓은 미숫가루 물에 넣었다.
엄마는 국자로 휘~휘~ 저었다.
나는 그 과정을 즐겁게 바라봤다.
"조금 있으면 시원하고 고소하고 달콤한 것을 먹을 수 있다"
입 안에는 이미 침이 한가득 고였다.
드디어 엄마가 밥그릇에 얼음이 동동 떠있는 미숫가루 물을 떠주셨다.
나의 작은 두 손으로 밥그릇에 잡았다.
손을 통해 시원함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밥그릇을 얼굴에 가져다 댔다. 시원했다.
그리고 드디어 얼음 한 덩이와 미숫가루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꿀맛이다.
이 맛을 더 오래 느끼고 싶어서 천천히 먹었다.
얼음이 다 녹을 때까지.
50년 전 그때의 맛과 시원함과 풍경이 생생하다.
20원짜리 동전으로 온 가족은 행복했던 그때가.
모든 것이 풍요로운 요즘.
가끔 불만이 많아지는 나를 발견한다.
작은 것으로도 행복했던 그 시절을 잊고 사는 나를 발견했다.
눈을 지그시 감아본다.
7살 때 그 더운 여름날로 돌아간다.
행복하다. 편안하다. 내 가슴이...
이 마지막 여름이 지나가기 전에 추억놀이를 해야지.
큰 얼음을 사서 아빠가 송곳으로 얼음을 쪼갠 것처럼 나도 쪼개 봐야지.
그리고 투박한 양은그릇에 미숫가루 물에 얼음 동동 뛰워야지.
생각만 해도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다.
10년 뒤, 지금의 추억을 소환해야지.
그때도 내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겠지.
행복은 만들어 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