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연 Apr 10. 2021

내가 개를 키울 줄이야

12 감정 재능자


갑자기 땅이 솟아오르고 하늘이 내려앉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머릿속에는 말도 안 되는 버라이어티 판타지가 일어나고 있었다. 불안한 감정이 나를 압도하여 심장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심장 박동이 하루 종일 계속되었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나는 그저 자는 게 가장 편했다. 자다가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문밖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엄마 없는 아이들이 가장 불쌍하지.. 내가 미쳤구나 다시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어떻게 일어나야 할지 몰라 기도했다. 제발 쿵 떨어지는 심장박동이 멈춰달라고 기도했다. 분명 심장에 뭔가 문제가 있지 않고 하루 종일 쿵쾅거린다는 게 말이 안 되었다.


공황장애였다.


감정은 절제하고 내비치지 않는 것이 덕목이라 여기며 살던 때에는 감정을 억누르고 괜찮은 척 아닌척하며 표현하는데 인색했다.

감정은 부정적 감정이든 긍정적 감정이든 모두 소중하다. 어떤 감정이 나에게 일렁이는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데 불쾌하다고 여겨지는 감정을 감정 찌꺼기라며 없애고 잊으려 했다. 그럴수록 더 깊고 강해졌다.


공황장애가 시작된 그날부터 나의 감정들과 마주했다. 기쁨, 슬픔, 미움, 사랑, 분노, 욕망, 불안.

태초에 감정이 일어난 순간부터 살아온 날들을 되짚으며 왜 기쁨이 일어났는지, 불안한 이유가 무엇인지, 각각의 감정들을 소환해 옛 기억들과 연관된 무수한 사건들을 만나며 본연의 나를, 감정을 알아차렸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감정을 48가지로 나누고 규명했다. 강아지는 얼마나 많은 감정이 있을까.


바다도 감정이 있다.

나는 바다가 가진 감정의 깊이와 범주를 알지 못한다. 그저 온몸으로 표현하는 바다의 행동으로 감정을 이해할 뿐이다. 해맑은 순수성에 기쁨을, 자신의 음식을 지키기 위한 적의를, 집에 혼자 남겨짐에 슬픔을.

이런 바다의 감정은 나의 감정 카테고리를 이전보다 다양하고 깊게 만들어 주었다. 바다를 이해하고 공감해야만 바다를 위해 어떤 행동을 해 줄 수 있다.



이성은 감각들의 증거를 날조하도록 만드는 원인이다. 감각들이 생성, 소멸, 변화를 보여줄 때, 그것들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프이드리히 니체


공황장애가 나에게 발생한 사건이 나는 참으로 감사하다. 내 인생은 그 일을 겪고 나기 전과 후로 완전히 변화했다. 감정을 이해하고 나서 내가 비로소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알게 되었다.

  

처음 내가 바다를 본 순간도 똑같다. 그녀를 데려와야겠다는 선택을 다시 하겠냐고 한다면 무조건 그렇게 할 것이다. 바다와 매 순간 오묘하고 다양한 감정을 나누고 소통할 수 있다는 건 인생의 또 다른 경탄이므로.



















작가의 이전글 내가 개를 키울 줄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