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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May 08. 2021

내가 개를 키울 줄이야

15 사랑의 다양한 이름

외할머니는 94세이시다.

작년부터 초기 치매로 할머니는 가족과 주변인을 알아보실 수만 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최근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관해서는 알지 못하신다.


남아선호 사상이 사회에 팽배한 나의 어린 시절, 손자들 사이에서 태어난 첫 손녀로 나는 외갓집에서 모든 사랑을 한껏 받았다. 태어나서부터 할머니가 주신 무한 사랑은 할머니 댁에 다녀오는 날에 최대치였는데 사랑 어깨뽕이 가득 들어가 모든지 해 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초능력자가 되었다.


작년에 할머니를 뵈었을 때 할머니는 “너는 지연이야.” 라는 말씀이 전부셨다. 할머니가 내게 주신 사랑의 다양한 감정이나, 함께 할 때 나누었던 소통의 감정들은 이제 나만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이었다. 마음이 아프지만 할머니의 치매가 천천히 진행되어 생활하시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는 것에 감사했다.


바다는(우리집 강아지) 나만 바라보고 있다. 주방에 있으면 주방을 화장실에 있으면 화장실 , 침대에 있으면 침대 밑에 앉아 있다. 항상 바다는 나에게 무한한 사랑을 준다. 내가 어떤 사람이든지 중요하지 않다.

할머니의 사랑도 바다의 사랑도 그저 나의 존재만으로 충분하다.


얼마 전에 할머니를 뵈러 간 날, 할머니는 올해도 나를 알아보시고 “ 내가 오래 사니 너를 보는구나. 근데 내가 얘를 보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지?”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가 그렇게 내게 주신 사랑이 두문장으로 내 마음에 꽂혀 눈물이 흘렀다.


나도 내가 개를 키울 줄은 몰랐다. 마흔이 넘어 어떤 생명체에게 이렇게 큰 사랑을 받을지도 몰랐다. 감정을 나누고 언어를 이해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생겼다니 경이로운 일이다.


할머니의 사랑, 부모님의 사랑.

그 사랑은 한량없다.


 


글, 그림 이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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