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실패한 산책에 대해서 생각한다. 좀 돌아볼까, 하고 바깥으로 나왔는데 난데없이 비가 쏟아진다거나 예상치 못한 도로 공사 표지판을 맞닥뜨린다거나, 아니면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갑자기 들 때, 나는 산책에 실패한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실패가 있고, 누군가는 그것을 끊임없이 기록하지만 사실 '산책'이란 단어 앞에 '실패'를 쉽게 붙이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에겐 분명히 실패한 산책이 존재한다. 그것은 유원지에 대한 기억이다.
유원지는 2021년 7월부터 2022년 7월까지 내가 운영했던 비누공방 이름이다. 비누공방 유원지. 나는 이곳에서 온갖 비누를 만들고 포장을 하고 제품 사진을 찍고, 수강생에게 비누를 가르쳤다. 또 가만히 앉아있거나 켜둔 라디오를 들으며 멍을 때렸고, 주저앉아 울기도 했다. 실패란 갑작스럽게 다가오기 마련이지만, 나는 사실 이곳에서의 내가 결국 실패로 끝날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시작했고 버텼고 끝내 마침표를 찍었느냐고 묻는다면, 여러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다! 이것은 나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아주 강력한 원동력이 되는 문장이다. 실패를 직감했지만 나는 하고 싶었기 때문에 비누를 배운 직후부터 유원지에 대한 꿈을 꿨다. 싱그러운 풀과 나무가 가득한 곳. 누군가는 그곳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책을 읽고, 싸 온 점심을 먹고 하염없이 물속을 유영하는 물고기를 바라보는 곳. 그런 공방을 내 손으로 만들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여기서부터 실패했다. 유원지는 사람들이 원하는 곳보다는 내가 원하는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낮잠을 자고 싶었다. 줄넘기를 넘고 싶었고, 이곳을 꾸리면서 내가 사회 구성원으로 함께 어울려 잘 살고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초록이 넘실대던 지난여름, 유원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후배에게
"누난, 남들보다 실패를 많이 경험했잖아."라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었다. 이때 충격은 나쁜 의미의 충격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계속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충격이었다. 그래서 나는 실패한 유원지에 대한 기억을 써보려고 한다. 미싱에 이어 여전히 못하는 것 투성, 실패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그런 내가 궁금하다면 앞으로도 이어질 나의 실패에 주목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