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육아, 닥터피시

- 궁리는 어디에 있을까?

by 코코지

“그랬구나가 문제래”

“무슨 소리야?”

“이제 육아는 조선미 선생님이라던데?”


빨래를 개던 아내가 말했다. 아무래도 얼마 전에 한 학교 선생님의 글이 트리거가 되어서 대한민국 3대 한 사람인 오은영 선생님에 대한 사람들의 말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모양이다. 과연 오은영 선생님의 잘못인가?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했는데 왜 이 모양인 건가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주식이나 투자할 때도 종종 지인이 오른다고 해서 넣었던 종목에서 재미를 못 봐서 마음 상하는 경우랑 비슷해 보인다. 주변에서 그런 투자실패 이야기를 들으면 추천해 준 친구를 탓할까? 아니면 친구 말만 들은 투자자를 탓할까? 나는 후자일 것 같다. 친구에게 의도된 악의가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아무리 친구가 추천해 줬어도, 시장의 상황을 살펴봐야 하는 것 아닐까? 그리고 결국 투자에 대한 선택은 본인이 한 것 아닌가?


육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오은영 선생님이 “그랬구나”만 이야기한 적도 없지만 인제 와서 대한민국 모든 아이들의 문제가 오은영 선생님 때문인 것처럼 말하는 것도 그렇다. 아이를 키워보면 알겠지만 첫째는 첫째라서 실수가 많고, 둘째는 둘째라서 실수가 많고, 셋째는 셋째라서 실수가 많은 법이다. 아이들이 다르고 자라는 환경이 다른데 어떻게 정답이 있을 수 있을까?


물론, 시대의 필요는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이해가 필요한 시절이 있었다.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 아이와 청소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시절에는 “그랬구나”라는 마법의 단어가 필요했다. 지지와 공감을 위한 최소한의 단어였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의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나 원효대사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같은 거다. 좀 더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최소한의 방법 그걸 모든 상황에 적용이 되는 마법의 단어라고 여기고 맥락 없이 사용하다 보니 이제는 부모의 권위가 필요한 시절이 왔기 때문에 조선미 선생님을 찾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또 어느 순간 조선미 선생님도 비난받고 외면당하겠지.


좋은 학원이래! 좋은 선생이래! 명품이래! 맛집이래! 물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면 몰려드는 닥터피시와 같은 모습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야 있겠지만 주입식 교육의 폐해라고 말하고 싶긴 하다. 생각하지 않고 외우기만 했던 우리 부모 세대의 학습방식이 삶을 살아가는 데에도 스스로 고민하기보다 전문가를 찾아서 답을 달라고 외치는 것만 같다. 투자나 파이어 열풍이 불었을 때도 그렇다. 훌륭한 양질의 지식도 있긴 했지만, 흔히 지식노동자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수익자동화에 대한 수업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수익구조를 만들어 냈나? 수익자동화 콘텐츠를 갖고 있는 사람의 수익을 자동화시켜줬을 뿐이다. 떠먹여 주는 답에서 벗어나 보자. 요즘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그렇게 교육하지 않는다.


전문가도 아닌데 나 혼자 고민한다고 되나? 비효율 적이지 않나? 사전에서 찾아보면 적절한 단어가 있는데 바로 “궁리”이다. 그 뜻은 “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함 /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따져 깊이 생각함. 또는 그런 생각”이라고 한다. 검색에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궁리는 익숙하지 않지만 궁리를 통해 깊게 사고하는 힘이. 요즘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문제해결력이 아닐까 싶다.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고 있다면 어려운 수학 문제 앞에 있는 아이에게 어떻게 말하겠는가? “해설을 보고 풀어 그게 빨라” 아니면 “좀 더 고민해 봐” 어떤 선택이 정말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삶에서 우리는 있지도 않은 해답지를 들춰보려 하진 않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육아뿐 아니라 일 관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어떻게 궁리해야 하는지 검색하지 말자.

궁리의 시작은 내 머릿속의 뇌에 고민을 새기는 게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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