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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은솔 Sep 30. 2024

늦게 시작한 수학 공부의 어려움

공부에도 다 때가 있다는 말, 그게 진짜였다니...

초등학교 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음을 주위에 알렸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이거였다.


"와, 힘들지 않아?"


초등학교 수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친구들이 놀리거나 비웃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러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자격증 공부든, 영어 공부든 각 잡고 공부해본 경험이 한 번씩은 있는 그들은 성인이 된 뒤 공부를 한다는 게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성인은 일반적으로 아이들보다 집중력이 더 좋다. 그러나 성인에게는 공부할 체력이, 학습에 쏟을 에너지가, 오랫동안 책상 앞에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 내 경우 뜻하지 않게 5월부터 일을 쉬고 있었으므로 공부에 쓸 수 있는 시간은 넘쳐났지만, 그럼에도 여러 고충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배운 것을 자꾸 잊어버렸다. 덧셈 진도를 한참 나가다가 뺄셈 진도를 또 한참 나가고 나면 덧셈을 까먹어버리는 식이었다. 63+□□=120이라는 빈칸 추론 문제를 풀던 나는 네모 안에 들어갈 값을 도출해내기 위해 120-63 세로식을 옆에 적었다. 그런데 한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0에서 3을 어떻게 빼지? 이거 하는 방법 있었는데, 어떻게 하더라?'


받아내림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까먹어버린 거였다. 그때 나는 선생님과 화상 수업 중이었고, 당황해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0에서 3을 어떻게 빼죠? 뺄셈 어떻게 하는 거였는지 기억이 안 나요."


선생님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원래 덧셈 100문제 풀면 뺄셈은 잊어버리고, 뺄셈 100문제 풀면 덧셈은 잊어버리는 거예요. 다들 그래요. 당황하지 마시고 차분하게 생각해보세요. 앞에서 다 배운 거예요."


그제야 받아내림을 하는 방법이 생각이 나서 일단 일의 자리에 십을 주었다. 10-3은 7. 십의 자리 계산으로 넘어가니 1에서 6을 빼야 했는데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쩔쩔맸다.


그래도 다행히 나는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내가 문제를 틀리거나 답을 찾지 못하고 헤맬 때 절대로 웃지 않으셨다. 대면 수업 중이던 어느 날 쉬운 문제를 연달아 틀려버린 뒤, 민망해진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쉬운 걸 자꾸 틀리니까 좀 한심하죠? 어른인데 초등학교 수학도 못해서 쩔쩔매고 있네요."


선생님은 역시 전혀 웃지 않고 진지한 얼굴로 대답하셨다. 아뇨, 한심하지 않아요. 공부한 걸 조금씩 잊어버리고 그걸 다시 생각해내는, 그 과정 자체가 공부입니다. 지금 아주 잘하고 계세요.


이토록 훌륭한 선생님이지만 한 번은 내게 실수를 하신 적도 있었다. 나눗셈을 처음으로 배우기 시작했을 때였다. 처음에는 곧잘 해냈지만, 숫자가 커질수록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빠르게 계산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스스로의 힘으로는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께 물어보기로 했다.


선생님은 내가 기본적인 나눗셈을 당연히 할 줄 안다는 전제 하에 설명을 하셨다. 학교 다닐 때 배웠으니까 할 줄은 아시죠? 그런데 약간 헷갈리시는 거죠? 이런 느낌이었다. 나는 선생님의 말을 끊고 정중히 말했다. 선생님, 제가 나눗셈부터는 전혀 할 줄 몰라요. 배웠는데 까먹은 게 아니고, 그냥 아예 몰라요. 그러니까 나눗셈에 대해 처음 배우는 어린 학생을 가르치듯이 설명해주세요. 그러자 선생님은 더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주셨고, 다행히 나는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고 해서 공부가 어렵지 않은 건 아니다. 가장 답답한 지점은 내가 뭘 모르는지 선생님께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연산은 점점 복잡해져 가고, 질문할 일도 많아지는데 내가 모르는 게 뭔지 나조차도 잘 알 수가 없다. 헷갈리는 부분이 정확히 어떤 부분이고, 무엇 때문에 헷갈리는 건지 구체적으로 언어화해서 선생님께 말씀드리기가 어렵다.


그리고 여전히 부끄러움도 조금은 남아 있다. 모르는 걸 선생님께 물어보려면 내 사고의 과정을 설명해야 하는데(그래야 어떤 부분에서 연산이 잘못되는 건지 알 수 있으니까) 그게 부끄럽다. 수학 문제를 대하는 수포자의 독창적인 사고방식을 선생님께 공유하는 게 아직은 쑥스럽다.


물론 선생님은 나를 판단하지 않는다. 그는 프로다. 내가 뺄셈을 틀려서 부끄러워하면 선생님은 '원래 뺄셈이 가장 어려워요, 전교 1등도 틀리는 게 뺄셈이에요'라며 곧바로 나를 위로해주신다. 선생님은 상냥하다기보다는 건조한 타입에 가까운데, 그게 오히려 나와 잘 맞아서 포기하지 않고 공부를 이어올 수 있었다.


수학에는 이해해야 하는 영역이 더 많긴 하지만, 암기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구구단이 그렇다. 구구단에도 일종의 규칙이 있으므로 그걸 활용하여 값을 도출해낼 수도 있겠으나 기본적으로는 외워야 한다. 외우는 게 쉽지만은 않았고 7단, 8단, 9단은 여전히 헷갈린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지금 7단, 8단, 9단이 잘 안 되시네요. 맞죠?"


"네, 그런 것 같아요."


"오늘 자기 전에 7단, 8단, 9단 외우고 주무세요. 다음에 시험 볼 거예요."


나는 웃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선생님은 웃지 않았다.


"농담 아니에요. 시험 볼 거예요."


다음 수업 때 선생님은 정말로 7단, 8단, 9단을 암송해보라고 시키셨다. 구구단의 그 멜로디는 사람을 왜 이리 부끄럽게 만드는 걸까. 다 큰 어른이(나는 아직도 이런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구구단을 입으로 외고 있자니 민망했지만, 어쨌든 시험은 무사히 통과했다. 선생님은 박수를 쳐주셨다. 처음에는 그런 반응이 면구스러웠는데 이제는 그 박수 소리를 듣고 싶어서 더 열심히 한다.


공부에도 때가 있다는 말을 별로 믿지 않았다. 스무 살 때 대학교를 자퇴하면서도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 다시 대학 공부를 재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른이 된 지금 생각하건대 공부에 때가 있다는 말은 어느 정도 진실이다. 해야 할 일이 공부밖에 없는 학창시절에 공부하는 게 당연히 더 쉽고 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부에도 때가 있다'는 말을 핑계로 쓰고 싶지는 않다. 공부에는 분명 때가 있지만, 그게 내가 공부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나의 '때'는 지금이다. 이미 늦었더라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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