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은솔 Oct 03. 2024

후회할 시간이 있으면 맛있는 거 먹고 공부나 하자!

이미 지나가버린 일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 편이다. '후회'라는 단어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후회한다고 해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지난 시간에 매여 있기보다는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게 원래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후회라는 걸 해보게 되었다. 수학 공부를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걸 왜 진작 안 했을까. 진작에 했더라면 내 삶이 많이 달라졌을 텐데.


아르바이트는 고등학교 때부터 했다. 최저시급만 겨우 챙겨 받던 그때의 월급으로도 학습지 정도는 결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때부터 수학 공부를 했다면 어땠을까. 정말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어쩌면 성인이 된 뒤 돈을 흥청망청 쓰다가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리는 일도 생기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 후회한다고 해서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언제나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그것에 충실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나중에 또다시 후회하게 될 테니.


20대 전체를 '어리석은 소비'를 하며 보냈다. 같은 돈이라도 헬스장을 끊거나 어학원에 등록하는 등 보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사용해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배움이 끝난 게 아니라는 것, 돈을 지불하고 무언가를 새롭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오랫동안 모르는 채로 살아왔다.


가정 환경은 그리 풍족한 편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아빠를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다른 집 아이들처럼 사교육을 받고 싶었다. 학원에 다니면 내 수학 성적도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그런 생각만 하면서 어린 시절을 다 보냈다. 스스로 무언가를 바꿔볼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청소년기에는 삶의 많은 부분에 제약이 있다. 그런 제약 속에서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보려고 시도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인간은 다르다. 성인이 된 인간은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 무엇이든 시도해볼 수 있다. 나는 이제 아빠가 학원에 보내주기만을 기대해야 하는 무력한 어린아이가 아니니, 내게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찾아 채워나가야 한다. 학습지를 결제해 시작하고, 서점에 가서 문제집을 구매한 것이 바로 변화의 첫걸음이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수학 공부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평생 모를 줄 알았던 사칙연산은 두 달이 채 가기 전에 모두 뗐다. 문제가 술술 풀리는 걸 느낄 때마다 자꾸만 후회하는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이걸 어렸을 때 했더라면.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시작했더라면.


그러나 가정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르바이트 급여로 학습지를 결제할 수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해도, 그때 나는 '학습지'라는 선택지가 있음을 알지 못했다. 학습지는 어린애들이나 하는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기에 고등학생인 내가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예전엔 몰랐고, 지금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들. 서른 살의 나는 성인들도 자기계발을 위해 학습지를 풀곤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시작할 수 있었다. 나의 학습지를.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친구가 내게 대단하다고 한 적이 있다. 매일 추심 전화를 받아야 하고, 빚쟁이들이 집으로 찾아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꾸준히 학습지를 풀고 그날그날 해야 할 일들을 해 나가는 내가 대단하다는 거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울고 있으면 그 빚이 다 사라져? 친구는 박수를 쳤다.


후회할 시간이 있으면 맛있는 거 먹고 공부나 하려 한다. 과거를 수정할 수는 없지만 다가올 미래는 얼마든지 내 손으로 만들어갈 수 있으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