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서의 신용불량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
신용불량자가 되었다는 것은 금융 시장에서의 신용을 잃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사랑해주던 주변인의 신뢰도 잃었다. 사실은 그게 더 중요하고 치명적인 문제였다.
신용불량자가 되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거쳐가는 과정이 있다. 바로 주위 사람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것이다. 특히 은행 대출에 비해 리스크가 높은 카드론을 이용하는 나 같은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카드사 대출만으로 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문제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은 카드론을 이용하지 않는다. 조금 거친 표현이지만 단정적으로 말하겠다.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카드론 따위를 이용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나는 인생에 문제도 많았고, 제정신도 아니었다. 어쩌면 제정신이 아니어서 인생에 문제가 많아진 것이거나…….
돈을 마구 써버리는 동안 나를 계속 도와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지출을 줄이는 법에 관한 조언을 해주었으며, 이자도 치지 않고 돈을 빌려주었다. 내가 그에게 빌리는 돈의 액수는 점점 커졌고, 빌리는 주기도 점점 짧아졌는데, 그는 한 번도 그 사실을 문제 삼지 않았다. 다만 그는 나를 끊임없이 걱정했다. 가족이라도 해주지 못할 법한 일들을 그는 내게 해주었다.
공식적으로 내가 가진 빚은 카드사 대출뿐이지만, 신용불량자가 되기 직전까지 그에게서 많은 돈을 빌렸다. 사실 '많은'이 아니라 '어마어마한'이라고 표현해야 할 수준의 금액이다. 직장에 다니던 시절에는 급여가 들어오는 대로 조금씩이라도 빌린 돈을 갚곤 했다. 하지만 실직을 하게 되면서 그마저도 어려워졌다.
결국 나는 그에게 빌린 대부분의 돈을 갚지 못했다. 물론 내 머릿속 장부에 그 금액을 계속 달아둘 것이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갚을 것이지만 이런 말들은 전부 의미가 없다. 어쩌면 이런 글을 쓰는 것조차 단지 내 마음이 편해지기 위한 가증스러운 행위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은 여전히 나를 깊이 생각해준다. 우리의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변한 것이 없거나 오히려 이전보다 더 돈독해졌다. 그럼에도 나는 뼈저리게 느낀다. 나는 서류 상의 신용만 잃은 것이 아니라 나를 믿어주고 사랑해준 사람의 신뢰도 잃었다는 사실을.
삶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내 주변에는 나를 도와주려는 사람이 늘 한 명씩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도움의 손길을 굳이 거부하지 않고 덥썩 붙잡곤 하는 사람이었다.
많은 이들이 나의 가능성을 믿어주었는데, 정작 내가 나를 믿은 적이 없었다.
언젠가 친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는 삶에 애착이 전혀 없는 것 같다고. 친구의 말대로 나는 내 삶을 소중하게 여긴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언제든 그것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 명의의 금융 거래를 할 수 없게 된 것보다 관계에서의 신용을 잃은 게 나는 더 무섭고 슬프다.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이 일이 있기 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신용불량자가 되기 전의 나와 신용불량자가 된 후의 나로 영원히 양분되었다. 이것은 흰 옷 위에 검은 잉크가 한 방울 떨어져 빠르게 번져나가듯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다.
그러나 자학하고 싶지는 않다. 돌이킬 수 없는 일임을 알기에 더더욱 자학은 하고 싶지 않다. 이제 더는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겠지만 나만은 나를 믿으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해야 할 일들을 하고, 매일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힘쓰면서 삶을 제대로 꾸려나가야 한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며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