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사진 찍는 걸 좋아하던 너
열다섯 살에 너를 처음으로 만났다. 아직 이렇다 할 친구를 사귀지 못한 학기 초였다. 딱풀이 없어 난감해하고 있는 나에게 너는 말없이 딱풀을 건네주었고, 우리는 곧바로 친구가 되었다. 친구를 사귀기가 어려우면서도 참 쉬웠던 나이였다.
그 시절의 나는 세상을 향한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마음을 남들에게 일부러 티내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티가 나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매일 화가 나고 부끄러웠다. 오직 내 불행만이 크고 심각해 보였고 남의 불행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너는 내가 처음으로 만난, 나와 같은 한부모가정의 아이였다. 너에게는 아버지가 없었다. 그러나 든든한 오빠가 있었고, 다정한 어머니가 있었다. 너는 나처럼 의기소침해 있지 않았다. 항상 밝고 당당했다. 너는 어머니와 마치 친구처럼 친했고 남들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밝히는 걸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너를 보면서 생각했다.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 저렇게 살아도 되는 거였구나. 나는 너를 따라 함께 당당해졌다. 더는 꿈나무카드로 저녁을 사 먹는 게 부끄럽지 않았다. 나랏돈으로 김밥천국에서 라볶이와 김밥을 시켜 먹으며 우리는 즐겁고 행복했다.
너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그게 왜 부끄러워? 너는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내게 처음으로 알려준 사람이었다. 급식비를 지원받는 것도, 장학금을 받는 것도 네게는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없다는 것도 너에게는 불행이 아니었다.
너와 친하게 지내다 보니 열네 살 때의 단짝 A와 멀어졌다. A와 어울리는 동안에는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내 가정환경을 탓하며 늘 부정적인 생각만 했다. 그렇다고 해서 A가 나쁜 친구였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A와 멀어지고 너와 가까워졌을 때 내가 술담배를 일절 하지 않게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합창부 활동을 함께 했고 동네를 쏘다니며 놀았다. 할머니들이 가르쳐주는 무료 뜨개질 교실에 갔다. 문구점에서 십자수 세트를 사서 서로에게 열쇠고리를 만들어주었다. 아르바이트를 같이 하기도 했다. 공공자전거를 빌려 계속 넘어지면서 자전거를 배웠다. 똑같은 반지를 사서 끼고 다녔다. 디자인은 같고 색깔만 다른 휴대폰을 썼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자주 했던 놀이는 하늘 사진을 찍는 거였다. 네가 졸업한 초등학교는 우리 동네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우리는 방과후에 자주 그곳으로 가서 하늘 사진을 찍었다. 시야를 가로막는 것이 없는 높은 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너는 파란 하늘보다도 노을이 지고 있는 붉은 하늘을 특히 좋아했다. 너의 휴대폰 사진첩은 온통 노을 사진으로 가득했다.
해가 바뀌고 학년이 올라갔을 때 나는 다시 A의 단짝이 되었다. 끊었던 술과 담배를 다시 하게 됐고, 너를 만나기 전처럼 내 삶을 미워하고 부끄러워하게 됐다.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자는 너의 말을 무시하고 A와 같은 고등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언젠가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내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져 있지 않은 것을 보고 너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때 네 손가락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었고, 그 후로도 너는 줄곧 반지를 끼고 다녔다.
너와 멀어진 후 내게 남은 유일한 습관. 그건 하늘을 올려다보는 거였다. 매일 한 번씩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어른이 된 뒤에도 쭉 그러고 싶다고 너는 진지하게 이야기했었다. 담배를 피우다 말고 하늘 사진을 찍는 나를 A는 종종 비웃었지만, 모든 걸 다 부끄러워하는 인간이 되었을지라도 하늘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썼다.
네가 여전히 노을 수집을 하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