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간부(리더급) 워크샵에서 나온 고충사항.
"퇴근 전에 업무 주지말기."
얼마 전 진행했던 스탭 워크샵에서 나온 회사생활 고충을 주제로 나눈 이야기 내용의 하나다. 아주 직관적으로 보면 당연히 사원, 대리급 구성원의 고충이라 생각했겠지만 놀랍게도 이 고충은 리더 워크샵에서 나왔던 내용이다.
영업이익, 매출이 최근 3년간 성장이 정체되고 대외환경이 갈수록 악화되어가자, 전사의 위기의식 속에 진행한 활동중 하나가 전 임원진의 워크샵이었다. 하루동안 진행된 워크샵에서, 정해진 주제 안에서 현재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직접적인 액션플랜을 제시하는 것. 이 워크샵이 끝난후의 각 임원진들의 미션은 소속으로 돌아가 해당 구성원에게 이 내용을 전파하라는 것이었다. 대표님은 워크샵 담당자에게 "1시간"짜리 교안을 전달받았지만 본인의 생각은 달랐다. 내가 받았던 8시간 워크샵 내용 그대로 구성원에게 전파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준비는 그대로 인사팀 몫이 되었다.
아마 내 입사 이래로 한 공간에 이렇게 많은 인원이 참석하여 진행한 워크샵은 없었다. 단순한 강의 정도는 있었지만 조를 짜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액션플랜을 도출하여 발표까지 하는, 이런 활동을 우리 회사에서 한 적이 있었나? 분명히 내 입사 이래로는 없었다.
공간의 제약과 계급차이로 인해 연차가 낮은 구성원의 의견이 묵살될 상황을 우려해 사원급과 간부급을 나눠서 2회로 진행하게 되었다. 간부급 워크샵을 먼저 진행했는데, 조별 토론을 통해 해당 의견을 포스트잇에 자유롭게 붙이는 과정에서 위의 "퇴근 전 업무 주지 말기."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었다.
참 신선했다. 사원급이었다면 사실 철없게 들렸을 수도 있는 이야기가 간부급에서 나온다니. 간부급에는 당연히 리더도 포함되어 있었고 실제로 이 이야기를 한 당사자는 리더였다. 하루동안의 워크샵에서 나온 모든 포스트잇을 공개된 공간에 붙였는데 계급이 높다고 사원과 다른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다. 누구보다 가정적이고 퇴근하고 싶고 상사 눈치보느라 스트레스 받는 건 똑같았다. 다만 사원급과 간부급의 고민의 방향이 달랐는데 사원급은 '어떻게하면 귀찮은 일을 하지 않고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면 간부급은 '어떻게하면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까?'가 주된 고민의 방향성이었다. 적어도 이 워크샵을 준비한 인사팀 구성원은 이렇게 생각했다.
처해진 상황은 계급이 높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고민하고 해결책을 마련할 것인지가 달라진다. '퇴근 전 업무 주지 말기'라는 의미에 대해 당사자에게 물어보니 '퇴근할 생각이 마음이 떠있는 상태에서 의사결정을 원하면 잘못된 지시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퇴근 직전에 했던 지시사항과 퇴근 후 차분히 생각해보고 다음날 다시 수정된 지시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반대로 사원급들은 '문제를 제시한 사람이 그 문제의 해결을 떠안는 경우가 많아 문제를 알고도 묵인하는 경우가 많다.'는 고민이 많았고, 이 문제의 해결책을 리더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담당자를 업무 프로세스 별로 지정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내용을 본 우리는 '귀찮은 업무를 어떻게 하면 최대한 안할 수 있을까?'의 다른 말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일리있는 해석이다.
사실 회사 생활하다보면 점점 신입사원들에게서 부족한 점이 보이고 안타깝거나 답답하거나 '왜 저런 말을 하지?'라는, 꼰대(?)의 시선이 점점 생겨나는 듯 하다. 아마 나도 나이를 먹고 있는 것이겠지. 나이를 먹고 연차가 늘어나도 퇴근을 하고 싶고 퇴근 전에 업무를 물어보는 후배가 짜증난다. 그렇지만 짜증나는 이유가 달라지는 것이겠지. 단순히 내 퇴근시간을 배려없이 잡아먹는 후배가 미워서거나, 아니면 대충 대답해서 잘못된 방향으로 가이드를 제시할까봐 두렵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