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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Jun 23. 2021

Prologue) 인사는 처음입니다만

이렇게 욕을 많이 먹는 부서일 줄이야

언제부턴가 일어나자마자 블라인드 앱을 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 빨간색의 앱이 쓱 커지면서 내 눈을 톡 쏘는 것 같다. 켜자마자 보이는 타임라인... 이성을 구한다며 자신의 스펙을 적어둔 흔한 홍보글을 옆으로 홱 돌리니 회사 라운지가 보인다. 오늘은 새로운 글이 있나.. 한 게시물을 탭 해본다. 'xx공장 누구는 봐라'로 시작하는 저격글을 보고 있노라면 저 밑에 어김없이 달리는 댓글 '인사는 좀 보고 고쳐봐라.' '인사는 도대체 뭐하냐?'


내가 처음 한 대형 종합병원 인사팀에서 처음 겪어본 '인사'라는 직무의 하는 일은 사실 행정업무에 가까웠다. 루틴(routine)한 업무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업무, 한 달에 한번 급여 잘 지급되고 끊임없이 신청하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처리 등... 누락 없이 처리되기만 하면 욕먹지 않을 부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병원 인사팀 퇴직 후 호기롭게 준비해서 겨우 입사한 지금의 회사 인사팀은 내가 생각한 것과 좀 달랐다. 일단 직원 수가 얼마 없었다. 병원은 1만 명쯤 되었으나 여기는 3~4백 명 정도의 회사였다. 그렇게 많은 행정업무 소요가 없었다. 그 대신 가장 중요한 업무가 있었으니 바로 '조직문화' 업무였다.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목표를 위해 즐겁게 일하는 곳, 이 공간을 만드는 일이 인사팀의 조직문화 담당자의 목표이다.

회사에 근무하는 모든 분들과 1년에 꼭 한 번은 술을 마셔야 했다. 지금은 코로나19에 따른 회식 금지로 잠시 휴식기에 들어갔지만 내가 신입사원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바로 이 '술'이었다. 회사의 모든 인원과 한 번씩 술잔을 부딪히기 위해서는 일주일에 최소 한 번은 꼭 고기를 굽고 술잔을 돌려야 했다. 거기다 직책/직급 별로 따로 가지는 간담회와 그 후에 이어지는 술자리 참여까지. 그리고 그 수많은 술자리에 참여하며 알게되었다. 회사에 있는 불만을 으레 '인사팀'에게 있는 불만처럼 토로하고, 결국 인사팀의 수많은 활동들은 회사(인사팀)가 욕먹기 전에 뭐가 불만인 건지 찾고 해결하기 위한 활동이라는 것을. 그렇구나, 나도 이 회사에 다 만족하지는 않는데 '회사=인사팀'으로 생각하니 결국 정말 잘하건 못하건 쓴소리 많이 듣는 부서겠구나, 그 시절에 정말 뼈저리게 느꼈다.


사실 모든 인사팀이 이렇지는 않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제조업인지, IT업인지, 유통업인지 등등 각 업계 특성에 따라 하는 일과 성격, 분위기가 조금씩 다르고 같은 제조업이라 해도 무엇을 만드는 회사인지에 따라 또 분위기가 다르다. (자동차 회사의 인사팀은 참 힘들 것 같다. 바로 이런 느낌?) 또, 본사 인사팀인지 공장 인사팀인지에 따라 다르고, 조직이 워낙 커서 채용, 교육, 노사(ER), 평가 등이 팀 단위로 따로 있으면 또 소속된 팀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나는 이제부터 내가 겪고 있는 인사팀, 그리고 내가 들었던 인사팀의 하는 일과 겪었던 에피소드를 풀어내려고 한다. 사실 인사팀이 어떤 일을 하는지는 유튜브나 오프라인 채용설명회를 통해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 것과 별개로 나는 좀 더 살아있는 이야기를 적어내려 한다. 많은 취준생과 현직자가 가고 싶어 하는 부서라는 것도 알고 있어 더욱 더 살아있는 이야기를 적고 싶고, 블라인드를 통해 또는 현업에서 들리는 불만, 시정사항 등 부정적인 이야기에 둘러쌓여 듣고, 해결하려 애쓰고 있는 같은 동지들에게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모든 인사팀이 이렇지는 않으니 섣불리 일반화하는 단어는 최대한 쓰지 않겠다는 것을 다시금 다짐하며..)

이 얽히고설킨 관계가 어떻게 하면 조화롭게 흘러갈까?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 블라인드 앱을 켜본다. '왁싱했는데 이게 이별 사유가 되냐?'라는 글. 글쎄, 왁싱이 문제였을까..? 근데 좋은 회사 다니네... 그 회사는 어떠니? 생각하며 홱 옆으로 손가락을 튕겨본다. 아까의 저격글은 그룹 라운지의 맨 위에서 HOT 게시글 타이틀로 위용을 뽐내고 있고 댓글은 난투극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는 원글이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 단 '인사팀도 직원일 뿐인데...'로 시작하는 댓글로 갑론을박하고 있다. 그래, 우리도 그냥 직원일 뿐이지... 뭐가 다르겠어? 다 위에서 시키니까 하는 건데. 근데 윗분들도 그냥 직원일 뿐이겠지. 그럼 그 윗분인 임원이 문제? 아냐, 임원도 계약직일 뿐인데.. 그럼 결국 창업주...


그만 생각하고 빨리 운동이나 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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