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여러 고통과 힘듦의 기간이 있어왔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했을 때, 아 그 기간이 정말 힘든 시간이었구나 라고 뒤늦게 느꼈던 그런 고마운(?) 시간을 제외하면 내가 생각하기에 그 기간 온전히 고통을 느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아마 지금이 그 여러 고통의 시간 가운데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대학을 갓 졸업했을 때 현실과 꿈 사이에서 방황했던 2~3년여의 시간이 그 첫번째였고, 힘들게 입사하고 정규직에 취업한 인사업무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 엄청나게 달랐을 때 (주2회 이상 술자리에 참석해야 하는 것이 '인사'담당자의 당연한 미덕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가 두번째였다. 그리고 작지만 인력운영에서 보상으로 업무가 바뀌었을 때의 그 혼란스러움이 세번째, 그리고 발령받고 맞이한 새로운 시스템 안에서 수없이 헤매고 놓치고 부딪히고 혼나고 다시 정신차리는 (+술마시는) 일의 연속인 지금이 네번째이다.
모든 것이 본사의 컨트롤 안에서 해결해야하는 것이 지금까지도 꽤나 낯설다. 100% 이해가 가지 않는 의사결정 사항들을 각 부서의 전달해야 할 때의 그 고통과 본사의 메일 한 줄을 놓쳐 납입 기한을 놓친 뒤 부랴부랴 의사결정 받고 자료를 만들어 넘겨야되는 고통. 그 메일 한 줄에 전체 팀 리더와 공장장님의 수많은 의사결정이 따라오는데, 놓친 죄를 온전히 내가 혼자 짊어져야 할 때의 그 고통. 법인에 있을 때는 내가 알아서 기한을 조정할 수 있었지만 사업장인 지금 전혀 그 사정을 봐줄 수 없는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든 끝내야 할 때의 고통 등등.
더해서 법인에 있을 때는 내가 혼자 잘하거나, 소수의 사람들끼리만 친해도 그럭저럭 일을 해나갈 수 있었지만 여기서 이렇게 했다가든 정상적인 업무를 절대로 해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역시도 고통이었다. 왜냐면 여기서는 본사의 도움과 여러 직무에서의 실무자와의 소통 없이는 업무의 과반 이상을 해결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관계가 내 인생 우선순위에서 단연 후순위라고 생각하는 내 입장에서는 더더욱 절실한 깨달음과 고통이었다. 퇴근이 전혀 즐겁지 않은 요즘은 영어나 독서 등 자기계발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어 집에 있어도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기 일쑤다.
하지만 내가 인생의 여러 고통을 느끼며 깨달은 또 하나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점이다. 그래도 난 그 고통에서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버텨냈다. 현실과 꿈 사이에서 방황했던,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의 시간이었던 그 시기에도 결국 포기하지 않고 음대 시험까지 치뤘고, 당연히 불합격한 후에는 파견직 1년과 취준 1년 6개월여의 취준생활을 거쳐 29살에 겨우겨우 첫 정규직으로 취업했다. 그 첫번째 고통을 극복한 시간이 지금의 시간을 어떻게든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다.
고통을 고통으로 보지않고 변화의 신호라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 고통은 곧 기쁨으로 바뀐다는 역설 (레이달리오 [원칙] p213 참고)을 이해하는 것. 지금 나와 같은 이유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자의반 타의반 결정에 따라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느라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고통이 내 인생 전체에서 봤을 때 건전한 힘든 길이라고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믿고싶고 같이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