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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중 Oct 12. 2020

나쁜 치매 증상으로서의 '환각'

친구야 내 이야기 좀 들어봐

할아버지는 과거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다. 할아버지는 본인이 그럴만한 존재라는 것을 처음 만나는 상대에게 '말'로 드러내려는 욕구가 컸다. 상대방에게 미소를 짓고 있지만, '나' 중심의 표현이 두드러지고 자신의 힘, 권위를 드러내는 상황은 강조한다. 상대방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다는 표현도 자주 활용한다. 결국 그런 태도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을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빈틈을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각인시켰다. 외로울지라도 할아버지 또한 그런 지위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할아버지에게 치매가 오면서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할아버지가 기억을 잘 못하고 사소한 실수를 많이 하거나 이로 인해 고집부리고 화내는 것은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집 밖에 나가 돌아오지 못하는 행동은 가족들이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느 날은 여기저기 넘어진 상처를 입고 경찰관과 같이 집에 돌아오는 초라한 모습에 가족들은 억장이 무너졌다. 어디서 굴렀는지 옷은 흙 범벅이 되어 있고 머리카락엔 낙엽과 나뭇가지가 엉켜있었다. 자신의 세계에선 그 권위와 지위를 쌓기 위해 누구로부터도 범접 못할 벽을 세웠던 사람의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초라한 모습이었다. 억장이 무너지는 가족들이 도대체 왜 나갔냐고 다그치는 질문에 할아버지는 ‘친구 만나러 갔다 왔어’라는 말만 남기고 본인이 더 놀란 듯 두 눈을 꿈벅였다.


가족들 손에 이끌려 병원에 온 할아버지는 가족들이 없는 곳에서 따로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처음에는 비밀 이야기를 하려나 생각했다. 보통 이런 경우 가족들이 재산을 빼돌리려고 데려왔다, 자신을 굶겨 죽이려 했다, 음식물에 독을 탔다며 주로 그들을 원망하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내 예상과 달랐다. 가족들에 대한 원망을 하며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미안한 표정이 역력하다.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내 말을 도대체 믿어야 말이지, 그래도 자네라면 내 말을 믿어줬을 텐데. 내가 이런데 올 사람인가? 다른 사람들 시선도 그렇고. 내가 여기 오느라 자네들이랑 약속 못 지키게 돼서 미안하네’

나는 할아버지와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지만 그때 알았다. 할아버지는 나와 시선이 마주치지 않았다. 내 뒤에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는 게 확실했다. 그 순간에 할아버지는 친구들 모습의 환시와 대화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루이소체 치매 환자였다. 치매 초기 뚜렷한 환시가 특징적인 치매 중 하나다. 일반적인 알츠하이머 치매보다 환각 증상이 자주, 선명하게 나타나고 이를 치료하기 위한 항정신병 약물 사용 시 약물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 의학적으로 보자면 치매 초기부터 나쁜 치매 증상이 나타나는 데다가 나쁜 치매를 조절하기 위한 약물 부작용도 심하게 나타나니 증상 조절이 어렵다. 또 앞으로 이 환각이 어떤 망상과 엮여 할아버지와 가족을 힘들게 할지 모른다.


상상(imagination)과 환각(hallucination)의 차이는 통제 가능성 여부에 있다. 상상은 우리 의식과 지각 내에서 벌어지는 현상으로 인식되는 반면, 환각은 상상과 똑같이 뇌에서 벌어지는 현상임에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현상으로 인식된다. 내가 진료한 섬망 환자는 갑자기 병실 문이 열리더니 입과 머리카락이 거꾸로 달린 사람이 네 발로 기어와 침대 아래에서 돌아다니는데 시야를 놓치면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도 깜빡 못하고 밤새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위에서 처럼 감정적 흥분 상태에서 일시적으로 경험한 환각이나 내과 질환의 악화나 수술 후 갑자기 발생하는 섬망에서의 환각은 이미지가 무섭고 생생하고 강렬하다. 우리가 평상시에 경험하지 못한 형상이나 소리 형태의 ‘감각적 이미지’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경험이기에 이런 환각은 단기간의 경험에 그치며 경험자의 현실 인식이 회복되면 사라진다. 마치 아주 무서운 악몽을 꾸고 잠에서 깨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치매의 환각은 좀 다르다. 알코올성 치매가 아닌 일반적인 퇴행성 치매의 환각은 대상자에게 강렬한 ‘이미지’로 드러나기보다 ‘과거의 현실’을 근거로 나타난다. 마치 치매로 빈 현실을 환각으로 채우 듯 당사자에게는 자연스러운 현실로 경험된다. 그렇기에 치매 환자는 환각에 두려움을 떨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평상시의 일반적인 반응을 보인다. 예를 들어 치매였던 내 고모는 40년 전 자기 집에 세를 살던 새색시가 자신을 부르는 환청으로 집 밖에 나갔다가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새색시가 본인 이름을 부르며 밀린 월세를 주겠다는 환청의 내용은 지극히 현실적이었지만 이를 40년이 지난 현재와 과거를 구분하지 못함으로써 집에 돌아오지 못할 뻔한 것이다. 치매의 환각은 뇌의 이상 작용으로만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즉, 치매의 환각에는 그 사람의 삶이 녹아 있는 경우가 많다.  




할아버지의 환시에는 어떤 삶이 녹아 있을까    

나중에 가족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로 환각에 나온 그들은 젊었을 때부터 만나온 세 명의 친구들이라 했다. 가족들이 보이기에도 고집 세고 경계심이 강하며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 했던 사람이 이 친구들은 오랜 기간 우정을 유지했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할아버지가 치매를 진단받고 난 이후였다. 이후에도 그들은 할아버지가 친구들과의 약속을 기억 못 해 어겨도 이를 책망하지 않았고, 대화 중 뜬금없는 이야기를 해도 웃으며 친구가 무안하지 않게 물 흐르듯 대화를 이어갔다고 한다. 비록 제수씨에게 걱정을 표현하기는 했으나 친구에게는 내색하지 않았다. 증상이 악화되면서 더 이상 만남을 지속하지 못했는데 그래도 전화로 안부를 물어온다고 한다. 그때만큼은 할아버지도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이가 된다.        


알랭 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에 나온 다음의 이야기는 할아버지의 환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한 인간의 일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제공하는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우정이라고 한다... 무엇을 먹고 마실지 생각하기보다는 누구와 먹고 마실 것인가를 조심스레 고려해보라. 친구 없이 식사하는 것은 사자나 늑대의 삶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지켜봐 줄 누군가가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말은 누군가가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지낸다는 것은 끊임없이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받는 것이다.”  

환각 증상은 할아버지가 자신을 잃는 상황에 와서야 역설적으로 무엇이 그의 삶에서 소중하고 중요한지, 마치 영사기를 통해 할아버지 삶의 빈 화면에 비춰주는 것 같았다.


나 또한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환각 증상이 나타났을 때 비슷한 경험을 했다. 당시 환각 증상도 그렇거니와 약물을 정맥 투입하기 위해 수액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데 밤만 되면 일어나 허공에 손을 휘젓는 바람에 자꾸 수액줄이 분리됐다. 무언가 움켜쥐듯 두 손을 허우적 대시는데 침대에서 떨어질 뻔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중에 환각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난 이후 아버지는 내 경험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셨다. 손자 손녀에게 멋진 선물 해주고 싶은데 마침 눈 앞에 영롱하게 반짝이는 여의주가 있더란다. 애들한테 가져다주면 너무 좋을 것 같아 필사적으로 아들한테 건네려는데 내가 받지 않으니 너무 답답하셨다. 그래도 어떻게든 건네주면 아들 또한 좋아하리라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팔 뻗어 여의주를 움켜쥐었단다. 의사로서는 단지 환각을 겪고 있는 아버지를 돌봤지만, 아들로서는 그 환각 또한 오로지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산 아버지 인생의 연장선임을 알았다. 나는 환각을 통해 아버지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정호승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중 ‘수선화에게’)  

  

외로움과 실존적 소외는 치매 환자만 겪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다. 이는 우리가 ‘사람’이기에 필연적으로 견뎌야 할 무게다. 하지만 그 외로움에 혼자 남겨졌다고 해서 내 옆에 아무도 없는 건 아니다. 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누군가 너무 ‘당연하게’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사라지자 ‘당연했던’ 사람들이 내 앞에 더 또렷하게 보이는 이 역설적인 상황을 치매는 환각을 통해 우리에게 깨달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환각은 미친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이 아니다. 모든 환각이 이런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환각에 드러난 그들의 삶의 조각의 단편을 맞추려는 시도가 중요하다. 마치 다른 사람의 죽음을 통해 나의 죽음을 직면하고 내 삶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도 그들도 외로움을 느끼는 똑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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